김재록 의혹, 제2의 최규선게이트?

[분석] 검찰, 현대차 그룹 압수수색 배경과 전망

등록 2006.03.26 18:44수정 2006.03.2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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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인 김재록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로비의혹과 관련,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
지난 24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인베스투스 글로벌 전 대표인 김재록씨가 김대중 정부 시절 부실기업 인수 및 대출 로비의혹과 관련,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구속되고 있다.연합뉴스 김상희
전격적이었다. 26일 일요일 아침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현대·기아차 그룹 본사 17층. 수십여명의 검찰 수사관이 들이닥쳤다. 이곳에는 그룹의 핵심부서인 재무와 회계부서가 위치하고 있다. 검찰은 이곳에서 100여 박스에 달하는 그룹 회계장부 등 자료를 압수해 나왔다.

검찰이 5대 재벌그룹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벌인 것은 지난 2003년 SK그룹 이후 처음이다. 특히 이번 압수수색이 김재록 전 인베스투스글로벌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과 연관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재계와 정치권 등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일부에선 김 전 회장의 로비의혹이 '제2의 최규선 게이트'로 번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하지 않고 있다. 대신 검찰 주변에선 지난 1998년 현대차그룹이 기아차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기아차 인수 과정에서 김씨를 통해 정관계 쪽에 로비를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97년 기아경제연구소 홍보기획이사로 재직... 대선 앞두고 DJ 캠프로

실제로 김씨는 97년 기아경제연구소의 홍보기획 담당 이사를 지냈고, '기아회생경영혁신단' 전략기획이사를 역임했다. 경제연구소는 기아차의 싱크탱크 역할을 해왔던 곳이다. 또 경영혁신단은 '기아차 매각설'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회사의 주요 전략업무를 담당해왔던 핵심 조직이었다.

기아차 핵심조직에서 일했던 김씨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 전략기획특보로 전격 발탁됐다. 이후 DJ 정부에서 추진됐던 각종 기업과 금융 구조조정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정치권을 비롯해, 경제부처와 금융권 고위 인사들과 안면을 익혔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김씨가 대표로 있던 아더앤더슨 한국지사의 경우 현대자동차의 전략기획 컨설팅을 맡아 하기도 했었다. 또 대우자동차를 비롯해 은행 등 당시 국내 기업구조조정과 매각 작업에도 관여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검찰의 압수수색이 김재록씨와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면서 "98년 기아차 인수당시 김씨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현재로선 어떤 것도 파악된 바 없으며 검찰 수사를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서초동서 김을 겨냥한다"...지난 1월 검찰 극비리에 김씨 소환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사옥.
서울 서초구 양재동 현대·기아차그룹 본사 사옥.오마이뉴스 이성규
김 전 회장은 그동안 경제계에선 '금융계 미다스의 손', '기업 인수합병(M&A)의 달인' 등으로 불렸다. 그럴만도 한 것이 DJ정부시절 그가 대표로 있던 아더앤더슨 한국지사는 국내 금융시장의 구조조정은 도맡다시피 했다. 국내 기업 구조조정에 대한 컨설팅도 마찬가지였다.

경제계에선 '거물'(?)로 알려진 그가 지난 1월 17일 검찰로부터 극비리에 조사를 받아왔다. 다음날인 18일에는 김씨의 집과 사무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금융시장에선 김씨에 대한 검찰소환을 두고, 온갖 추측과 루머가 나돌았다.

A은행의 한 고위 임원은 "언젠가 시장에서는 서초동(검찰)에서 김 대표를 겨냥하고 있다는 설(說)이 돌았다"면서 "1월에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사실이구나'라는 생각은 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하지만 검찰 조사 이후에도 김씨는 최근 외환은행 매각 등 금융권 구조조정에 관여해 왔다.

금융계의 한 인사는 "김 회장이 최근까지도 외환은행 매각을 앞두고 국민은행 등 매각 당사자들과도 접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하지만 그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잘 모른다"고 밝혔다.

검찰은 지난 24일 저녁 김씨를 구속했다. 김씨는 지난해 서울 신촌 민자역사와 부천 쇼핑몰 건설 과정에서 자금 대출 청탁을 받고, 이를 성사시켜준 대가로 13억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례적으로 '사안이 중하다', '여죄가 많다'는 표현까지 써 가며 강도 높은 후속 수사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제2의 최규선 게이트로 번지나?

특히 검찰은 향후 수사방향을 두고, 부실기업 인수 과정에서의 정관계 로비 여부를 밝히는데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외환위기 이후 국내 기업과 금융구조조정에서의 김씨 역할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국내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힘을 가졌던 이유는 DJ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큰 그림을 제시했고, 이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받기 때문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정부 고위관료와 재계, 금융계 인사들과의 관계도 돈독해졌다.

S그룹 한 관계자는 "그는 전체적인 판을 잘 짰던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때였다"면서 "칼자루를 쥐고 있는 정부와 최대한 밀접한 연결고리를 가지는 것이 중요했고, (김씨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재계 일부에선 이번 사건이 자칫 '제2의 최규선 게이트'로 확산되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재계 한 관계자는 "재계순위 2위이자, 세계적인 기업인 현대차에 대해 압수수색까지 벌인 것을 보면 검찰이 상당히 큰 것을 잡은 모양"이라며 "예전에 희대의 로비스트로 나라를 들썩였던 '최규선 게이트'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검찰은 김씨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직 경제고위 관료인 L씨를 비롯해, 청와대 비서관 출신인 L씨, 정부산하 기관장인 O씨, 전 국회의원인 K씨 등과의 관계에 대해 집중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정관계 로비 의혹이라는 것이 쉽게 입증되기 어려워 '찻잔속의 태풍'으로 끝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검찰 관계자도 "김씨의 청탁 대상자들이 모두 금융전문가"라면서 "상식적인 계좌추적에 걸려들 정도로 허술했겠는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금융시장 등에선 김재록 리스트가 나돌면서 대형 스캔들로 번질 조짐이 일고 있다. 검찰의 칼끝이 어디로 향할지 경제계와 정치권은 숨을 죽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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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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