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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모처럼 산행을 한 탓인지 봄볕에 나온 병아리처럼 꾸벅꾸벅 졸음이 몰려왔다. 한참 낮잠에 빠져 있는데 현관문이 열리며 들리는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뭐해. 산에 가자 굉장한 것을 보았어."
"조금 전에 갔다 왔는데 무슨 산을 또 가."
눈을 감고 계속 잠을 청하는데 바람결에 들리는 한마디가 나를 벌떡 일어나게 했다.
"개구리들이 산둠벙에 백마리도 더 모여 있어."
"아니, 아침 나절에 한 마리도 없었는데 개구리들이 왜 모여 있는데?"
"나도 잘은 모르지만 아마 개구리가 회의를 하나봐."
"개구리가 회의를 한다고?"
도대체 개구리들이 얼마나 많이 모여 회의를 하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 잠결에 눈비비며 카메라 들고, 혹시 그 사이 회의가 끝나면 어떡하냐고 수다를 떨며 산둠벙을 다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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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멀리서본 산둠벙 ⓒ 권용숙
봄가뭄 탓인지 둠벙(웅덩이)물이 많이 줄었다. 바닥에 물이 깔려 있는 느낌이다.
둠벙 속에 초록색 파래 닮은 물풀들이 깔려 있는데, 멀리서 보니 정말 백마리는 될 것 같은 개구리들이 머리를 빼꼼히 내밀어 숨을 쉬며 봄햇살을 먹고 있었다.
성큼성큼 둠벙물로 다가간 게 실수다. 개구리들이 눈치가 얼마나 빠른지 작은 발자욱 소리만 듣고도 모두가 물 속으로 숨어들었다. 개구리가 다시 나올까 조용한 둠벙 앞에 쪼그리고 앉았지만, 다시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결국 그날은 개구리 보기를 포기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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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머리 내민 개구리들 보이나요? 더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바로 물 속으로 잠수해 버리기 때문. 정말 물 반 개구리 반이었다. ⓒ 권용숙
그리고 오늘 드디어 멀리서나마 일명 '개구리 회의'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개구리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리는 듯하다. 개구리들이 빼꼼히 눈을 껌뻑이며 머리만 내민 바로 그 옆에는 새까만 개구리알이 군데 군데 동그랗게 둥실 둥실 떠 있다.
"어떻게 하면 개구리알이 올챙이로 꼬물꼬물 자라고 뒷다리 앞다리가 나와 무사히 어른개구리가 될까 걱정하며 개굴개굴~"
"봄가뭄에 자꾸 줄어만가는 둠벙물이 봄비가 내려 불어났으면 좋겠다 개굴개굴~"
"이둠벙 주변엔 독사가 있다고 옆밭 아저씨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잡혀 먹히지 말자 개굴개굴~"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개구리를 보기는 처음이다. 개구리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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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머리만 빼꼼히들 내밀고 있다. 산 속에 있으니 산개구리라 생각한다. ⓒ 권용숙
산개구리들은 계곡 물 속 바위 밑이나 낙엽 쌓인 곳에서 겨울잠을 자다 이른 봄 깨어나 물이 고인 논 등으로 짝짓기를 하러 온다고 한다. 이곳은 논은 없지만 군데 군데 산밭이 있고 작은 둠벙들이 있어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 아닐까 싶다. 산 밑에 이런 작은 둠벙이 있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내가 만든 둠벙도 아닌데 자랑스럽다.
그래도 이렇게 많은 개구리가 한 곳에 모여 있을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그리고 내친 김에 주위에 있는 둠벙을 모조리 돌아봤다. 둠벙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적어도 지금 둠벙의 주인은 바로 개구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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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옆둠벙엔 개구리알이 무더기로 부화중이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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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둠벙에선 까만 개구리알에서 아주 작은 올챙이가 나오고 있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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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햇빛이 물에 얼비쳐 모자를 벗어 가려 보니 제법 큰 올챙이가 헤엄을 치고 있다. ⓒ 권용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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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챙이 잡고 싶은 아이들. 올챙이를 집에서 키우는 숙제도 가끔 내던데 벌써 숙제 냈을까? ⓒ 권용숙
산 속 작은 둠벙에서 한참 내려온 졸졸 흐르는 물줄기 앞엔 아이들이 병을 들고 나와 쪼그리고 앉았다. "올챙이 잡았니?" 물어보았더니 "아니요 한 마리도 없어요" 하는 아이들에게 저 산 속 둠벙에 개구리도 많고 올챙이도 많더라고 알려줄 수 없었다.
서울 근교에서 개구리들이 회의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지켜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오래도록 둠벙 속 개구리들의 회의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다.
이상, 서울 양천구 지양산 밑 둠벙물 속의 개구리와 올챙이 소식이었습니다.
덧붙이는 글 | 2006년 3월 25일 26일에 서울 양천구 지양산 주변에서 촬영했습니다.
개인홈피 그림그리고싶은날(http://hompy.dreamwiz.com/sonamu07) 에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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