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고랑 만들다가 도라지 심봤다이승숙
우리 집 도라지는 그냥 도라지가 아니다. 그 도라지들은 장장 6년씩 묵은 도라지들이다. 그러니 심봤다를 외칠 수밖에.
강화로 이사 온 그 해 봄에 도라지 씨를 뿌렸다. 도라지 씨는 까맣고 아주 잘았다. 나는 도라지 먹을 셈으로 도라지 씨를 뿌린 게 아니라 꽃 볼 욕심에 씨를 뿌렸다. 그때 시골로 이사 간 딸네를 도와주기 위해서 늙으신 친정아버지께서 보름 정도 우리 집에 와 계셨는데 친정아버지는 도라지를 심겠다는 딸이 걱정스러우셨는지 은근하게 이러셨다.
"야야, 돌개 그거는 가꾸기가 에러븐데. 싹 나마 풀 뽑기가 예사 일이 아이다."
그때만 해도 천방지축 모르고 설치던 나는 아버지 충고를 귓등으로 들으면서 이렇게 대꾸했다.
"아부지요. 그까짓 잡초 그거는 뽑아 주마 되지 뭐요. 그거 뽑는 기 뭐 일이겠심니꺼."
그런데 내 호언장담은 몇 달 못 가서 장탄식으로 바뀌고 말았다.
"아구야. 이 풀을 우에 다 뽑으꼬? 어는 기 도라지고 어는 기 풀인지 모르겠네."
도라지 어린 싹은 참말로 어리고 연약했다. 풀 뽑다가 도라지 뽑기가 예사였다. 그리고 얼마나 촘촘하게 씨를 뿌렸는지 도라지밭 풀 뽑기는 그 해 내 풀 뽑기의 알파요 오메가였다.
그렇게 가꾼 도라지 밭이었다. 도라지는 해마다 때 되면 꽃을 피워주었다. 나는 내 꿈대로 도라지꽃을 실컷 보는 낭만에 빠져 살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