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이 심상치가 않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지금 한반도에 미묘한 정세 변화가 있다"고 했다. 그런데 이 뿐만이 아닌 것 같다.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에도 미묘한 변화가 있는 것 같다.
<경향신문>이 오늘 보도했다. 우리 정부가 미국에 6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송민순 청와대 안보정책실장이 2월말 미국을 방문해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해 북한에 적어도 6개월의 시간을 줄 것을 요청했고, 북한이 이 기간 동안 열리는 6자회담에서 신뢰할 만한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우리 정부는 향후 미국의 대북 압박조치에 동참할 수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눈에 띄는 건 시한이다. 왜 6개월이란 시한을 정하려 했을까? 만약 그 기간 동안 상황 진전이 없다면 우리도 대북 압박에 나서는 건가?
위태로워 보인다. 도박 느낌마저 든다. 북한 문제는 한반도 안위와 직결된다. 그래서 '만약'은 성립해서도 안되고 성립할 수도 없다. 좀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무조건'이어야 한다. '무조건'이 지향하는 가치는 '평화'다.
물론 이런 추상적 가치가 현실에서 얼마나 무력한지는 모두 다 안다. 아무리 외쳐봤자 실효가 없고, 오직 힘만이 큰 작용을 한다는 것도 안다.
이 점을 고려한 것 같다. <경향신문>은 평가를 내리는 데 신중했다. 정부의 제안을 "최후의 노력"임과 동시에 우리의 입지를 위축시킬 수 있는 "양날의 칼"로 봤다.
이런 사실도 함께 전했다. 북한이 계속 6자회담에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해 미국이 '방어적 조치'를 강화할 계획이며, '방어적 조치'는 북한의 불법거래뿐 아니라 통상적인 무역에 대한 감시·감독을 강화해 북한으로의 자금 유입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내용이다.
<경향신문>은 이런 사정을 충분히 이해한 듯하다. "정부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시간적 여유를 확보한 뒤 북한의 조속한 6자회담 복귀를 설득하는 '승부수'를 택했다"고 평했다. 또 한번 내용 없는 6자회담이 된다면 그것으로 '상황 끝'이 되는데 시한을 정하면 최소한 이런 상황을 미룰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설명이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합리적이다. 불가피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한정 범위 내에서만 내릴 수 있다.
이런 사례들도 있다. 이종석 장관이 납북자와 국군포로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 데 이어 정부는 지난달 중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열어 국군포로나 납북자 문제를 "당연히 적극적으로 해야 할 일"로 설정하고 앞으로 남북간 의제로 적극 다루기로 했다. 인도주의 문제인 만큼 당연히 적극 추진할 일이지만 어떻게 풀 것인가는 별개 차원이다.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놓기도 전에 정부는 방침을 공개했다.
정부, 한반도 긴장 높이는 방안 잇달아 추진... 우연의 일치?
또 있다. 전략적 유연성 합의는 논외로 하자. 정부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PSI가 뭔가? 대량살상무기 관련 제품이 실렸을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을 강제로 정선시켜 검색·나포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이 강구하고 있다는 '방어적 조치'는 결국 PSI로 구현될 수밖에 없다. 북한의 통상적인 무역을 감시·감독하는 두 축은 금융제재와 PSI다.
북한을 자극하고 한반도의 긴장을 높이는 방안이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하나 둘 추진되고 있다. 이를 별개의 사안으로, 우연의 일치로 볼 수 있을까?
정부의 시한 제안을 미국의 기세를 누그러뜨리기 위한 지연전술로 보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에 하나'의 가능성을 버릴 수도 없다. 지난 연말 이후 취해지는 일련의 정부 조치를 보면 6개월 시한이 대북 정책기조 변경을 위한 사전 조치로, 6개월 시한은 대북 정책기조 변경을 위한 통과의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도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는 자신들이 주최한 '선진대안포럼'에서 쏟아진 말들을 오늘 이렇게 정리했다. "참여정부 대북정책 점점 보수로."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포럼에 참석한 사람들이 평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렇다. "원칙의 상실과 전략의 부재", "신뢰 구축과 국민적 합의의 실패", "원칙은 이상주의, 실천은 편의주의"….
박한 평가라고 볼 수도 없다. 지난해 2월의 일이다.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정동영 당시 통일부 장관에게 "대북정책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선회가 필요하다"며 이종석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 사무차장의 사표를 요구했다.
이는 정동영 현 열린우리당 의장이 직접 밝힌 일화다. 그래서 우려스럽다. 지금은 당시에 비해 상황이 더 악화돼 있다. 당시엔 핵보유 선언만 있었지만 지금은 핵보유 상황에 위조지폐 제조문제가 얹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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