쑥아, 쑥아, 어디 있니?

대안학교의 자연친화교육, 쑥 캐기 행사

등록 2006.03.31 15:44수정 2006.03.31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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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한결같은 것이 하나도 없는 달'이라고 하더니, 갑자기 다가온 꽃샘추위는 우리 모두를 당황하게 했습니다. 특별한 바람막이 하나 없이 너른 들판을 거침없이 달려온 바람이 학교와 운동장을 쓸어갈 때 경남 합천 적중의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 기거하는 선생님들과 학생들은 비명을 지르며 추위를 달래야 했습니다.

a 남학생들의 어설픈 쑥 캐기. 쑥은 관심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몸을 낮추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남학생들의 어설픈 쑥 캐기. 쑥은 관심 없는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내 몸을 낮추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 정일관


a 논두렁 아래 논 가까이 내려가 쑥을 캐고 있습니다. 논두렁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편안해 보입니다.

논두렁 아래 논 가까이 내려가 쑥을 캐고 있습니다. 논두렁이 바람을 막아주어서 편안해 보입니다. ⓒ 정일관

그나마 3월 30일 목요일에는 낮부터 날이 풀린다기에 자연친화교육의 하나인 전교생 쑥 캐기 행사를 준비하면서 적이 안심이 되었습니다. 날이 따사롭게 풀린 가운데 아이들과 함께 봄 들판을 비집고 나온 쑥을 캐는 공부는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30일의 날씨도 완전히 풀리지 않아 으슬으슬한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어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a 혼자 쑥을 캐고 있는 여학생의 표정이 진지하고 골똘합니다. 아이 뒤로 학교 기숙사가 보입니다.

혼자 쑥을 캐고 있는 여학생의 표정이 진지하고 골똘합니다. 아이 뒤로 학교 기숙사가 보입니다. ⓒ 정일관


a 옹기종기 모여 앉아 쑥을 캐고 있는데 아무래도 추운 모양입니다. 그래도 쑥을 캐려면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쑥을 캐고 있는데 아무래도 추운 모양입니다. 그래도 쑥을 캐려면 마음을 모아야 합니다. ⓒ 정일관

그러나 날이 좀 춥다고 중요한 교육을 안 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후에 아이들을 모아 안전 교육과 쑥 캐는 요령, 그리고 쑥 캐기 우수반 시상 계획까지 알려주고 각 반별로 바구니와 커트 칼을 나누어 주며, 정해진 자리로 이동을 하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춥다고 종종걸음을 치면서도 막상 논두렁으로 가서 쑥을 보자 모두 진지하게 쑥을 캐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반별 경쟁의식도 한 몫을 했겠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의 쑥 캐는 모습은 가관이었습니다. 도시에서만 살아서 쑥을 처음 본다는 아이도 있었고, 쑥을 어떻게 캐야 하는지 몰라, 칼로 이리저리 헤집기도 하면서 잎사귀만 끊어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특히 남학생들은 더 우스꽝스러웠습니다. 가히 도시 촌놈들이라 할만 하였죠.

a 여 선생님 한 분도 옛날을 떠올리며 쑥을 캐고 있습니다. 봄처녀 같습니다.

여 선생님 한 분도 옛날을 떠올리며 쑥을 캐고 있습니다. 봄처녀 같습니다. ⓒ 정일관

저는 그런 아이들과 함께 쑥을 캐면서 쑥을 처음 본다는 아이에게 쑥을 가르쳐주고, 쑥 잎사귀들을 온전하게 모아, 칼로 밑동을 똑 끊어내고 탈탈 털어서 바구니에 담는 쑥 캐기 요령까지 시범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오, 음, 아하' 같은 탄성을 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a 바람을 피해 이젠 논두렁 아래로 한 반의 아이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논두렁 아래 덤불 속에 쑥이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피해 이젠 논두렁 아래로 한 반의 아이들이 다 모여들었습니다. 그런데 논두렁 아래 덤불 속에 쑥이 쑥쑥 자라고 있었습니다. ⓒ 정일관


a 선생님과 아이들이 미리 쑥을 가려내며 손질하고 있습니다. 정겨워 보입니다.

선생님과 아이들이 미리 쑥을 가려내며 손질하고 있습니다. 정겨워 보입니다. ⓒ 정일관

쑥 캐기를 해 보면 아시겠지만, 쑥 캐기는 그 자체로 집중력을 길러주는 매우 좋은 공부입니다. 쑥 하나를 온전하게 캐기 위해서는 마음을 모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씽씽 불어도 아이들은 쑥을 캘 때는 추위도 잊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교생과 전 선생님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행사여서 그 열기로 인해 날씨의 변덕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a 열심히 쑥을 캐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제각각입니다.

열심히 쑥을 캐고 있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제각각입니다. ⓒ 정일관


a 쑥을 캐고 있는 여학생의 옷차림이 부조화스럽지만 진지한 모습이 재미 있습니다.

쑥을 캐고 있는 여학생의 옷차림이 부조화스럽지만 진지한 모습이 재미 있습니다. ⓒ 정일관

아이들은 쑥을 캐 담다가도 옆 친구들과 너른 논 위를 내달리며 장난을 쳤고, 까불고, 떠들며 에너지를 발산하였습니다. 바람만 가득하던 봄 들판에 아이들의 신바람도 함께 흘러다니는 것 같았습니다.

어떤 아이가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쑥 캐기는 왜 해요?" 저는 대답하였습니다. "쑥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야. 그 선물을 받으러 나온 거지. 자연과 친하게 사귀면서, 우리가 먹는 먹을거리가 어떻게 해서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지 알기 위해서야."


a 못 한다 해도 아이들의 손이 무섭습니다. 아이들이 캐 놓은 쑥을 보며 한 여 선생님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못 한다 해도 아이들의 손이 무섭습니다. 아이들이 캐 놓은 쑥을 보며 한 여 선생님이 놀라워하고 있습니다. ⓒ 정일관

못 한다, 못 한다 해도 아이들 손은 무서웠습니다. 1시간 남짓 아이들이 캔 쑥은 여덟 바구니나 되었습니다. 여학생들의 활약이 뛰어났던 2학년 1반이 쑥 캐기 우수 반으로 선정되어 쑥 꿀떡 한 상자를 상품으로 받았습니다. 아이들의 쑥은 약간의 손길을 거쳐 쑥 절편이나 쑥 꿀떡으로 만들어질 것입니다. 사월 들어 쑥 캐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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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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