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흥의숙의 전신인 상월정고병하
을사늑약을 맺을 때가 11월 찬바람이 불 때여서 '을씨년스럽다'는 말이 생겼다고 한다. 바로 그 당시 왕자들에게 경전을 가르쳤던 춘강 고정주 선생은 규장각의 직각이라는 지금의 국립중앙도서관장직을 맡고 있었다. 국권을 잃자 낙심한 그는 고향 창평에 내려와 월봉산 상월정에서 지식인을 길러내기 위해 강의를 했다. 하지만 상월정은 산속에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접근이 어렵다는 생각에 지금의 학교 자리로 옮겨 창평영학숙과 창흥의숙을 세워 창평과 근방의 인재들을 모아서 신지식을 가르쳤다.
교정에 창흥의숙 기념비가 세워져 있어서 후배들에게 자랑스러운 학교임을 보여주고 있다. 많은 걸출한 인물들이 배출되었음을 자랑으로 여기고, 일제 강점기때 꼿꼿이 일본에 항거했고, 일본 상인들이 두손 두발 다 들고 발붙이지 못했다는 삼성(곡성, 장성, 보성) 삼평(창평, 남평, 함평)중의 한 지역이 아닌가?
우리민족은 1938년 중국의 한민족 이주정책에 의해서 먼 변방으로 쫓겨날 때도 처음 한 일이 바로 학교를 세우고 2세들의 교육에 치중 하는 일이었다. 바로 그런 정신이 아니었던가 싶다. 시대적으로 얼마나 어려운 때였겠는가? 하지만 춘강 고정주 선생은 수업료와 기타 모든 비용을 혼자 부담했다고 한다. 그런 정신이 한국의 근현대사를 이끌었던 지식인들을 배출하게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기념식에서 낭독되었던 50회 졸업생이신 장두조 님의 '학원의 성지'라는 시를 옮겨본다.
학원의 성지
아늑한 날에 처음으로 하늘에 태양이 뜰 때
월봉산 정기를 받아 태어난 학원
구국인재 심어온 그 세월 어느 덧 백년
심은 꽃들 활짝 피고 열매가 퍼져 금수강산 곳곳에서 꽃을 피우네
오! 자랑스런 학문의 전당 창평초등학교
휘영청 밝은 월봉산 달빛 아래
백설로 뒤덥힌 설원의 눈빛으로
불철주야 닦아온 형설지공이
금성천을 따라 흘러 바다를 이루고
월봉산을 따라 올라 천지를 울리네
오! 인재의 산실 창평초등학교
비 온 뒤에 솟아오른 청죽 같은 기상으로
불의에 항거하며 지켜온 동문들
청사에 빛나는 그 얼 받들어
곳곳에서 땀 흘리는 애국자의 산실
오! 억겁년을 꽃피울
학원의 성지 창평초등학교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