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꾸미와 삼겹살이 만나면 정이 샘 솟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더 끈끈해지는 형제간의 정(情)

등록 2006.04.03 22:20수정 2006.04.03 22:21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토요일 저녁에 부천 사는 시동생과 동서가 놀러 왔어요. 금요일이 우리 남편 생일이었는데 시동생네가 생일 축하 케이크를 들고 찾아온 거예요.


비가 부슬부슬 오는 토요일 낮에 전화가 왔어요.
"형수님, 뭐 좀 사 가지고 갈까요? 필요한 거 뭐 없어요?"
"아이고 아지뱀, 그냥 오이소오. 사오기는 뭘 사온다 캅니꺼? 그냥 오이소."
"그래도 형수님, 뭐 삼겹살 좀 사 가지고 갈까요?"

우리는 시동생네가 오면 항상 나물 반찬을 준비합니다. 된장찌개에다가 풋나물 겉절이만 있으면 밥을 두 그릇 세 그릇 비웁니다. 토요일에도 우리는 온상에서 이제 막 나오기 시작한 미나리와 정구지(부추)를 준비했답니다.

그런데 우리 신랑은 동생에게 뭐 더 좋은 거 먹이고 싶었나 봅니다. 그래서 부르르 차 끌고나가더니 주꾸미를 사왔어요. 지금이 주꾸미 철이라네요. 1kg에 보통 15,000원에서 17,000원 정도 한다고 그러더군요.

봄에 나오는 첫 물 정구지(부추)는 약이라고 그러더군요
봄에 나오는 첫 물 정구지(부추)는 약이라고 그러더군요이승숙
"여보, 주꾸미랑 삼겹살이랑 같이 두루치기 한번 해 볼래?"
"아이 여보, 그거 자신 없는데…. 당신이 좀 하면 안 되나?"
"그래요 아주버님, 아주버님이 해주시는 음식이 제일 맛있어요. 해주세요."

나랑 동서가 애교 섞어서 부탁하니 우리 신랑 팔 걷어붙이고 나섭니다. 일류 요리사는 다 남자라잖아요. 우리 집만 봐도 그래요. 남편이 한 번씩 대충 뚝딱 요리해 주는데 맛이 진짜 좋습니다. 대충대충 하는 거 같은데 먹어보면 입에 짝짝 붙습니다.

삼겹살 주꾸미 두루치기 하는 걸 보니까 이렇게 하더군요. 먼저 삼겹살을 속 깊은 프라이팬에 넣고 마늘을 듬뿍 넣어서 같이 볶습니다. 그러면서 주꾸미를 다리만 숭덩숭덩 잘라서 넣고 같이 들들 볶습니다. 그러고 또 보니까 고추장 좀 넣고 된장을 반 숟갈 정도 살짝 넣더군요. 그리고 간은 조개젓을 넣는 거 같았어요.


붉은 고추랑 푸른 고추를 숭숭 잘라서 넣고 양파랑 파도 툭툭 대충 잘라서 넣고 그리고 들들들 볶아서 주는데 우리는 밥숟가락이 안 보이도록 퍼먹었습니다. 배불리 밥 먹고 또 주꾸미 대가리를 푹 데쳐서 술안주로 먹었어요. 속에 알이 꽉꽉 차있더군요.

'봄미나리  살찐 맛을 님에게 보이고져...' 라는 옛 시조가 있었지요
'봄미나리 살찐 맛을 님에게 보이고져...' 라는 옛 시조가 있었지요이승숙
우리 시집은 아들 형제가 많은데 다들 공부하느라 일찍들 집을 떠나 각자 생활해서 형제간에 끈끈한 정이 붙을 새가 없었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서 우리 남편이 저더러 그러더군요.

"여보, 당신이 힘들겠지만 동생들이랑 같이 살자. 그래야 동생들이랑 정을 만들지."


그래서 시동생들 3명 다 데리고 몇 년 같이 살았어요. 맨 막내 시동생은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우리랑 같이 살았어요. 그러다가 군대 갔다 오고 졸업하고 취직해서 지방으로 발령나서 솔가했지요. 막내 시동생 떠나 보낼 때 참 많이 서운하더군요. 그리고 위에 두 시동생은 결혼과 함께 차례로 우리를 떠났고요. 그렇게 여러 해 동안 같이 살아서 그런지 나이들을 먹으니까 다들 정을 많이 씁니다.

한 번씩 옛날을 생각해 볼 때가 있어요. 지금 다시 그렇게 살라면 과연 내가 살 수 있을까 싶어요. 그때는 어려서 뭘 모르니까 같이 살았지 지금 같으면 아마 꾀를 내서 안 살았겠지요. 하지만 부대끼며 살던 그 세월이 있어서 지금의 우리 형제가 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못난 형수지만 그래도 형수를 아껴주고 챙겨주는 그 밑바탕엔 그날들이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큰아들 생일이라고 시댁에서 어머님이 떡을 해서 보내주시고 일본에 주재원으로 나가있는 시동생도 전화해 주었답니다. 그리고 가까이 사는 시동생은 고기랑 술이랑 케이크를 사들고 찾아와서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고 그랬어요. 뿌린 만큼 거둔다더니 우리는 뿌린 거 이상으로 거두고 있습니다. 참 고마운 하루였습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경상도 마구썰기 은배떡입니다
어머님이 보내주신 경상도 마구썰기 은배떡입니다이승숙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모든 일을 '놀이'처럼 합니다. 신명나게 살다보면 내 삶의 키도 따라서 클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뭐 재미있는 일이 없나 살핍니다. 이웃과 함께 재미있게 사는 게 목표입니다. 아침이 반갑고 저녁은 평온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콩나물밥 이렇게 먹으면 정말 맛있습니다
  2. 2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손님 이렇게 없을 줄은 몰랐다"는 사장, 그럼에도 17년차
  3. 3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유인촌의 문체부, 청소년은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다
  4. 4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한강 노벨문학상 수상에 '조선일보' 왜 이럴까
  5. 5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윤 대통령 측근에 이런 사람이... 대한민국의 불행입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