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23년만에 만난 미국인 동서 형님

생김새도 언어도 다르지만, 우리 가족 맞지요?

등록 2006.04.04 14:27수정 2006.04.04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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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미국에 사는 처형 가족이 한국을 방문하였다. 난 결혼 23년만에 미국인 윗 동서를 처음 만나는 것이었고, 형님은 결혼 25년만에 처음 한국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름은 Quinton Robinson이다.


경주박물관에서 형님
경주박물관에서 형님전병윤
그동안 전화와 카드 사진 등으로만 소식을 전하였고 처형만 아니면 조카 아이들이 대학에 한국어를 배우러 왔었다. 그리고 아내와 아이들이 미국을 방문하여 그 가족들을 보기는 하였지만 이렇게 형님 내외와 아이들이 한국을 방문하기는 처음이었다.

아내와 난 인천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입국장으로 들어오는 형님을 보는 순간 난 깜짝 놀랐다. 그의 덩치가 나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아서였다. 한국에서 나의 키와 몸무게도 큰편에 속하는데 그의 모습은 정말 산처럼 보였다.

형님 가족의 즐거운 모습
형님 가족의 즐거운 모습전병윤
우리는 첫 인사를 나누었다. 난 "How are you", 형님은 "만나서 반갑습니다" 했다. "아유 형부 한국말 잘하시네예" 하는 아내의 말 속에 우린 아무 말 없이 서로 웃으며 공항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형님은 한글 회화책을 꺼내서 나에게 계속 질문을 하였다. 난 영어로 대답을 하면 발음이 다른지 아니면 정확한 뜻을 알고 싶어서인지 처형에게 계속 되묻곤하였다. 형님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하였다.

석남사 입구에서 소원을 빌면서
석남사 입구에서 소원을 빌면서전병윤
미안하다고 한국에 빨리 오고 싶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이 있었서 못왔다고. 그래서 용서를 구한다고 하였다. 형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난 이 사람이 미국 사람이 아닌 한국사람으로 착각할 정도록 그가 하는 말이 동양적 사고에서 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미국에서 형님 직업은 경찰이다. 가끔 영화에서 보면 덩치 큰 경찰을 보는데 정말 이런 몸으로 어떻게 경찰 생활을 하느냐고 묻자, 자신의 큰 알통을 보여 주며 이게 다 운동으로 불은 근육이라며 자랑을 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조카아이가 아빠는 배가 나와서 안된다고 해 아이의 머리통을 가볍게 때리자 모두들 웃었다.

경주 연좌방아에서 처형과 조카
경주 연좌방아에서 처형과 조카전병윤
형님이 올 때가 한여름 성수기인데다 갑자기 오는 바람에 미국에서 비행기 편이 없어 캐나다로 가서 한국 오는 오는 비행기를 타야 했다. 한국에서도 다시 울산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고 와야 했기에 장장 스무 시간이 넘는 여정이었는데도, 형님과 난 집으로 돌아와서도 밤 새도록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난 경주로 구경을 시켜주러 갔다. 그는 한국의 문화 고적을 보더니만 감탄을 하였고 처형이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 사람인 것을 존중한다고 하였다. 몇 년 전 'Ciji'라는 조카가 서울의 대학에서 한글을 배우러 왔다고 하였을 때에도 "야 대단한 처형"이라 생각하였고, 태권도를 가르치기 위하여 보스톤에서 뉴욕 근교까지 몇시간 차를 타고 다닌다고 할 때에도 역시 한국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가르침은 이곳이나 먼 미국이나 똑같다고 생각을 하였다.

민속 연극을 보고 배우와 함께 한 조카
민속 연극을 보고 배우와 함께 한 조카전병윤
그러나 알고 보니 그게 처형의 생각이 아니고 형님이 아이들에게 엄마의 고국에 대해서 좀 더 알라고 한글을 가르치고 태권도를 배우게 한 것이었단다.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식당에 가서도 젓가락질을 못하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에게 포크를 청하자, 괜찮다며 젓가락으로 식사를 계속하여 밥과 고기를 전혀 먹지 못하였다.

나중에 처형이 배 안고프냐고 묻자, 한국사람에게 장가를 들었으면 한국 풍습으로 해야 되는 게 맞지 않느냐며 배가 고파도 참아야지 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어른들 앞에 가서도 다리가 불편한데도 꼭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어쩌면 한국 사람보다도 더 한국인 같은 미국 사위였다.

처형과 물레방아 앞에서
처형과 물레방아 앞에서전병윤
며칠 안 되는 형님과의 한국에서 시간이었지만 그가 한국인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태어난 한국이라는 나라를 좋아한다는 것을 돌아간 뒤에 처형의 전화를 받고 알았다. 미국에 가서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벽면에 모두 붙이고 형님이 근무하는 경찰서 동료들에게도 자랑을 한 것도 모자라, 처형이 간호사로 근무하는 병원까지 가서 사진을 보여 주면서 하나 하나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미국으로 간 지 6개월이 지났지만 형님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를 연발하며 아내의 조국인 대한민국을 사랑하던 그의 모습과 한국에 왔으면 한국 풍습을 따라야 한다던 그의 말이.

박물관에서 설명을 자세히 보고 있는 형님
박물관에서 설명을 자세히 보고 있는 형님전병윤

에밀레 종 앞에서 형님과 함께
에밀레 종 앞에서 형님과 함께전병윤

형님 내외
형님 내외전병윤

석남사 입구에서
석남사 입구에서전병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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