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철
보리밭 하면 꼭 생각나는 게 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다. 그땐 대부분 농가에서 보리를 심어 4-5월이면 들녘이 온통 푸른 물결로 넘실거렸다. 쉬는 날이면 우리 꼬맹이들은 그 보리밭 속으로 들어가 무언가를 찾곤 했다. 종달새 알과 달롱개(달래)였다. 보리밭 속에서 고개를 삐죽 내밀고 있는 달롱개를 꼬맹이들은 눈을 부릅뜨고 찾아다녔다. 그렇게 보리밭을 뒤지다 우연히 마주한 게 있다. 종달새다.
갑자기 종달새(노고지리) 한 마리가 하늘 높이 솟아오르며 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그 부근에 분명 종달새 알이나 새끼가 있다는 징표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어미종달새는 두려움에 가득 찬 소리로 울부짖으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그런데 종달새의 날갯짓과 이동은 일반 새들과 달리 좀 특이했다.
다른 새들은 요리조리 움직이며 나는데 종달새는 하늘과 땅을 수직으로 오가며 날갯짓을 해댔다. 우리는 종달새의 그런 움직임에 더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고 새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어린 나이에도 어미새의 안타까운 소리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드센 개구쟁이 녀석이 알이나 새끼를 찾으려 하면 못 가게 팔을 잡아끌기도 했다.
'야! 저 종다리가 너그 엄마라면 어떡허것냐? 자 봐라. 지 새끼 우리가 건드릴까봐 저렇게 소리 지르고 있잖아. 그니까 그냥 가자.'
'아까분디. 알이라면 깨서 먹으면 그 맛 참말로 고소헌디. 아깝다 아까워.'
'임마 아깝기는 머시 아까워. 잔말 말고 달롱개나 캐러 가자고.'
그러면 그 친구는 입맛을 쩝쩝 다시며 자꾸 종달새가 오르내리는 보리밭 근처를 돌아보곤 했다. 그렇게 달롱개를 한 주먹씩 캐어 그냥 물에 씻어 씹어 먹기도 하다 피곤하면 보리밭에 벌렁 누워 하늘을 쳐다보기도 했다. 하늘은 뭉게구름과 조각구름이 푸른 하늘 사이를 춤추듯 노닐고 있었다. 그렇게 하늘을 바라보다 나도 모르게 슬며시 눈꺼풀이 내려앉으면 가는 코를 골며 잠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