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만 찍지 말고 나도 찍어줘"

황사가 지난 뒤 산에 올라 진달래 구경을 했습니다

등록 2006.04.11 09:55수정 2006.04.1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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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황사가 걷힌 거 같아."


베란다에서 새하얀 빨래를 널던 아내가 한 말입니다. 휴일 하늘을 온통 점령하고 봄의 정취를 느껴보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무겁게 하던 황사의 횡포가 못마땅했던 내게 아내의 말은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습니다.

"정말?"
"봐. 저 멀리 산이 꽤 선명하게 보이잖아."
"맞아. 산이 훨씬 또렷이 보여."

황사가 걷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카메라를 챙겨들고 산에 가서 봄기운을 느껴보자며 아내를 재촉했습니다. 겨울나기에 성공한 나무며 풀들이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알리는 봄이 왔습니다. 황사를 탓하며 집에만 머물러 있다보니 진달래가 피는지 새순이 돋는지 알지도 못하고 휴일을 보냈습니다.

일요일이 다가는 오후 아내를 도와 후딱 빨래를 널고 봉화산으로 갔습니다. 남녘에는 벚꽃이 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지만 강원도엔 이제 막 피어오를 준비를 하고 있을 뿐입니다. 산을 오르며 바라본 산의 모습도 겨울 산에서 크게 달라진 게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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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그래도 눈 크게 뜨고 자세히 보면 파란 새순이 돋는 나무도 보이고 산자락 여기저기 진달래가 피어 있습니다. 노란 산수유와 더불어 봄을 알려주는 전령처럼 갈색 숲 속에 선홍빛 눈부신 꽃잎이 바람에 흔들리며 탐스럽게 영글어 있습니다. 무어 그리 급한지 잎도 돋기 전에 꽃부터 피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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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다른 꽃보다 먼저 피어 선홍빛 꽃잎을 하늘거리는 진달래를 보면 문득 회색 빛깔의 유년의 추억이 떠오릅니다. 진달래 먹고 물장구치던 어린시절은 맹인 가수 이용복의 노래에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문득 돌아가고 싶은 옛 추억 속에는 선홍빛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있습니다. 가난했지만 그리웠던 시절 봄날의 추억 속에는 늘 진달래가 피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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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진달래만 찍지 말고 나도 찍어줘."


아내가 옆에서 팔을 잡아당기며 말했습니다. 알았다며 진달래 옆에 서보라 했더니 아내는 진달래처럼 환한 웃음을 머금고 진달래 옆에 섰습니다. 아내도 어느새 진달래처럼 환한 꽃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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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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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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