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고한 학풍(學風) 서려 있는 옛 배움터

[양산 문화공간의 재발견 4] 양산향교(梁山鄕校)

등록 2006.04.11 21:34수정 2006.04.11 2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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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양산, 이곳에 뿌리를 내려 살고 있는 사람들치고 양산에 향교(鄕校)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이 어디 있으랴만, 그러나 대다수의 시민은 '향교'는 단지 지난 시대의 유물일 뿐,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향교'가 성균관과 더불어 우리나라의 중추적인 교육기관으로 존재했던 지난날의 관립학교로서의 역할은 하고 있지 않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지역의 청소년들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각종 강좌와 프로그램으로 '인성교육과 교화사업'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전통문화의 전당이라는 점에서 한번쯤 관심의 눈길을 보내볼 만하다.


조선시대 창건-경남도 지방문화제 제205호

a 봄눈으로 말갛게 단장한 양산향교(2006년 2월 7일 촬영)

봄눈으로 말갛게 단장한 양산향교(2006년 2월 7일 촬영) ⓒ 양산시민신문

양산향교는 양산시 교동 198번지에 자리 잡고 있다. 향교 뒤쪽에서 동으로 뻗은 작은 등성인 마요등(馬腰嶝)은 인근 춘추원을 감싸고 있고 아래로는 유산, 어곡으로 가는 도로가 남북으로 통과하며, 낙동강으로 흘러들어가는 양산천 위에는 영대교(永大橋)가 걸려있다.

남으로는 황새 등이 동서로 뻗어 내려 양산천과 맞닿아 있다. 서쪽으로는 삼양화학공장 위에 화제고개가 있어 원동면 화제리와 만난다.

조선 태종 6년(1406년)에 창건된 양산향교(전교 김진규)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1610년 무렵 다시 지었다. 이를 1626년 중건하였고 1700년 읍의 서쪽으로, 1744년 읍의 동쪽 옛터 부근으로 다시 옮겼다가 1828년(순조28년) 지금의 자리로 이건(移建)하였다.

1931년 풍영루(風詠樓)를 중건하였고, 1936년에는 청원재(淸源齋)를 중건하였으며, 1955년에는 명륜당(明倫堂)을 중수하였다. 1970∼1971년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하여 풍영루 등의 부속건물을 대대적으로 보수하였으며, 1986년에 대성전과 명륜당 등을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지난해 5월에는 향교 인접 부지에 5억 5천만 원의 사업비를 들여 사무실과 회의실, 교육장 등을 갖춘 건평 1백79㎡(1층) 규모의 유림회관을 건립했다. 양산향교는 1982년 8월 2일 경상남도 지방유형문화재 제205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의 건물배치는 배향공간(配享空間)과 강학공간(講學空間)의 배치에 따라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향교가 자리 잡은 터가 평지인 경우는 전면에 대성전(大成殿)이 있고 뒷면에 명륜당이 있는 전묘후학(前廟後學)의 배치를 이루며, 대지가 구릉을 끼고 있는 경사진 터는 높은 뒤쪽에 대성전을 두고 앞면의 낮은 곳에 명륜당(明倫堂)을 두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룬다.

a 높지막한 언덕에 앉아있는 대성전

높지막한 언덕에 앉아있는 대성전 ⓒ 양산시민신문

평지가 아닌 양산향교는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동재(東齋), 서재(西齋)를 앞쪽에 두고 대성전 등의 제사 공간을 뒤쪽 경사지에 둔 전형적인 '전학후묘'의 형식을 취하였다.


문루인 풍영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중층누각(重層樓閣)으로 팔작지붕이고,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집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누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식(翼工式) 단층 맞배지붕집이다.

a 문루인 풍영루(왼쪽)를 들어서면 마당 오른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다.

문루인 풍영루(왼쪽)를 들어서면 마당 오른쪽에 강학공간인 명륜당이 있다. ⓒ 양산시민신문

유림이 모여들던 학동(學洞)
양산교육의 요람-교리마을


조선 초의 기록인<경상도속찬지리지>(1469년, 예종 원년)중 <도진(渡津)>에는 교리지역을 구읍포(仇邑浦)라 했고, 대천교(大川橋)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이 지역은 신라시대부터 양산읍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포구로 양산읍민의 생활필수품 교환 장소로 이용되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또 조선 초 향교가 현 위치에 건립되고 이곳에 유림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교리는 본격적인 학동(學洞)이 되었음직하다.

1983년 물금면이 양산읍에 편입되기 이전 물금면의 중심지였던 교리 또는 교동(校洞)은 구한말 상서면 시대에는 향교 안 명륜당에 면사무소가 설치되기도(1896년)했었다.

1909년에는 신교육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유림대표들에 의해 명륜당에 사립 원명학교(元明學校)가 들어섰는데, 이는 양산 최초의 근대적 교육기관이었다. 그 후 1911년 양산공립보통학교가 인가되어 잠시 향교를 사용하기도 했고 광복 후에는 양산고등공민학교 및 기술학교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렇듯 향교가 자리 잡고 있는 이곳 교동은 양산지역 교육의 요람이었고, 옛 물금행정의 발상지였다. 교동이라는 마을 이름도 향교가 위치한 곳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1921년 7월 상서면사무소가 물금리 화학동 390-3번지로 이전되고 학교 또한 양산읍소재지로 옮겨간 이후 옛 위상이 다소 떨어지기는 하였으나, 1990년부터 창조, 협성 등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1983년 2월 15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교리, 유산, 어곡은 물금면에서 양산읍으로 이속되었고 신주동은 물금면 범어리로 편입되었다. 현재는 강서동으로 행정마을은 교동ㆍ회현ㆍ강변 등 3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전통의 맥을 잇는 양산향교

향교는 지역 지식인들의 구심처였으므로 지방 단위의 문화행사, 특히 유교문화이념에 따른 행사가 여기에서 이루어졌다. 봄 가을의 석전례(釋奠禮)와 삭망의 분향이 향교의 문묘에서 이루어지고, 사직제ㆍ성황제ㆍ기우제ㆍ여제 등도 향교를 중심으로 거행되었기 때문에 지역민의 기원이 이곳에서 규합되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향교가 향약의 운영도 주관했으며, 향사례(鄕射禮)ㆍ향음례(鄕飮禮)ㆍ양로례(養老禮)도 여기에서 중심이 되어 집행되었다. 양산향교에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각종 의미 있는 전래행사들을 살펴본다.

a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래행사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석전대제’ ‘기로연’ ‘전통혼례식’ ‘한문학당’

전통의 맥을 잇고 있는 전래행사들.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석전대제’ ‘기로연’ ‘전통혼례식’ ‘한문학당’ ⓒ 양산시민신문

■ 문묘석전(文廟釋奠)
석전이란 향교에서 공자를 비롯한 선현들께 봄 가을 두 차례, 즉 음력 2월과 8월의 첫째 정일(丁日)을 택해 엄숙하고 경건하게 전계를 봉행하는 행사로 신라 진덕여왕 때부터 행해져 왔다. 현재 양산향교 대성전에 모시고 있는 5성(五聖)ㆍ공문10철(孔門十哲)ㆍ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나라 18현(十八賢)에 대해 제례를 올린다. 석전대제는 1986년 11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5호로 지정되었다. 음력 매월 초하루와 보름 오전 10시에는 문묘삭망분향(文廟朔望焚香)을 한다.

■ 옛 경로잔치, 기로연(耆老宴) 재현
양산향교에서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사라져 가는 경로효친사상을 일깨우기 위해 매년 봄 가을에 정기적으로 기로연을 재현하고 있다. 기로연은 1395년(태조 4년) 태조가 환갑이 돼 자신이 기로소(耆老所)에 들어가 원로 신하들에게 처음으로 기로연(耆老宴)을 베푼 후 연례적으로 시행된 행사로 오늘날의 노인위안경로잔치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옛 풍속이다.

■ 원사단향사(院祠壇享祀)
양산출신 공신(功臣) 및 선생들에게 모시는 제사를 '원사단향사'라 일컫는다. 향교에서 원사단별로 원장과 유사를 선임지명하여 매년 제사를 올린다.

■ 관ㆍ계례 재현행사
조선시대에 행해졌던 성년례(成年禮)인 관례(남자의 성년례)와 계례(여자의 성년례)행사를 재현하고 있다. 성년례는 965년(광종 16) 임금이 세자에게 원복(元服)을 입힌 데서 비롯되었다. 양산향교에서는 해마다 성년의 날인 5월 셋째 월요일에 그 해 성년이 되는 청소년 중 각 읍면동을 대표하는 남녀 각 1명씩 모두 18명을 참석시켜 관·계례 재현행사를 행하고 있다.

■ 전통혼례식
향교에서는 전통혼례식도 치르고 있다. 그동안은 주로 양산 관내에 거주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여건 탓으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부부들을 위해 합동전통혼례식을 올려왔으나, 혼례식을 전통의식으로 치르기를 원하는 젊은 신랑 신부들의 혼례식도 거행하고 있다.

향교의 교화사업
△홍문학당(弘文學堂) : 유림과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서(四書 : 대학·논어·중용·맹자) 강좌
△청소년인성교육 : 여름방학 기간 동안 관내 초등학생 및 중학생을 대상으로 청소년인성교육을 펼치고 있다. 향교 명륜당과 유림회관에서 사자소학을 중심으로 '천륜도인 효', '인륜도인 예', '사회공동체도인 충'에 대한 실천교육을 한다.

오지 및 향교와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웅상읍·원동면·하북면)의 학교를 대상으로 한 순회교육도 연중 실시하고 있다.

"과거없는 현재는 없는 법이죠"
양산향교 김진규 전교

▲ 김진규 전교
향교의 임원은 전교(典校) 밑에 장의(掌議) 및 감사(監事)로 구성되어 있고, 이들이 향교를 움직이고 있다. 1,000여 명의 유림을 거느리고 있는 양산향교는 김진규(金振圭) 전교의 관리 하에 의전ㆍ총무ㆍ재무ㆍ교화ㆍ조직ㆍ섭외 등의 부서를 두고 있다. 자문기구로 전교 및 유도회 지부장을 역임한 인사로 구성된 원로회(元老會)를 두고 있다. 원로회는 향약계도 겸직하고 있다.

내부조직으로는 모성계, 삼조의열보존회(三朝義烈保存會), 성균관진사반동문회(成均館進士班同門會), 고등공민학교운영위원회가 있다.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우리의 전통사상을 너무 모르고 있거나 이를 아예 무시하는 것 같아 걱정입니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없는 법인데, 과거에 대한 부정은 곧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원동면이 안태고향인 올해 76세의 김진규 전교는 한 때 공직에도 있었으나, 이후 농사를 지으며 줄곧 유림관계 일을 보아오다 유도회 양산지부장을 거쳐 지난 2003년 향교의 전교를 맡았다.

"유교는 극락이나 천당 등의 내세관을 제시하는 타 종교와는 달리 철저하게 현실에 바탕을 둔 생활철학이라는 측면이 강합니다. 따라서 유교의 철학과 사상은 인간 삶의 기본방향과 가치관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우리 민족의 얼과 정신을 지탱해온 정신적 자산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한말의 어지러운 정치사와 일제의 전통말살정책, 그리고 해방 후에 물밀듯이 밀려들어 온 서양문물로 인해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이 심각하게 훼손되었습니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우리 고유의 전통과 정신을 복원하고 이를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향교도 팔을 걷어붙이고 더욱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제가 세계 10위권에 진입했다고 하지만, 정신문화는 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아 몹시 안타깝다는 김 전교는 올해부터는 상설교육장을 개설하는 등 향교를 시민들에게 완전 개방할 계획이었는데 예산이 따라주지 않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다.

향교의 관리 말고도 우리의 전통문화계승에도 남다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김 전교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19호 '가야진용신제'의 기능보유자이기도 하다. / 전영준

덧붙이는 글 | 도움말과 관련 자료를 제공해 주신 양산향교 박세일 총무님께 감사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도움말과 관련 자료를 제공해 주신 양산향교 박세일 총무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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