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러시아 '인종주의' 물러나라"

[현장] 상트페테르부르크 평화시위에 3천명 참가...한국 유학생도 피해 입어

등록 2006.04.12 11:53수정 2006.04.24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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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흑·백인은 하나를 상징하는 화장을 한 시위대들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흑·백인은 하나를 상징하는 화장을 한 시위대들 ⓒ 신재명

a 희생자의 사진들을 들고 추모하는 시위대

희생자의 사진들을 들고 추모하는 시위대 ⓒ 신재명

지난 수년간 러시아 극우 인종주의자(스킨헤드)에 의해 죽어간 친구와 형제들을 추모하는 행렬의 물결들…. 학생들 사이에서 문자메시지와 입소문을 타고 삽시간에 번져 어느샌가 수십 명에서 수백 명, 수천 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수업을 듣다가 친구들과 이동하다가 시위 물결을 보고 합류하였고, 수백만 명의 농노를 해방한 알렉산드르 2세를 기린 '피의 궁전' 앞에 모여 친구들을 추모하며 넋을 기렸다.

11일 오후 (현지시각) 3000여 명이 참여한 가운데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가장 번화한 도로 넵스키에서 추모시위가 열렸다. 수백 명의 경찰병력이 동원된 가운데 진행된 이번 행렬은 평화와 인종 간의 화합을 표방한 러시아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시위였다.

a 희생자 사진과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

희생자 사진과 피켓을 들고 시위하는 학생들 ⓒ 신재명

a 피의 사원 뒤편으로 모여드는 시위대와 언론

피의 사원 뒤편으로 모여드는 시위대와 언론 ⓒ 신재명

지난 6개월간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매달 1명 이상의 아프리카 학생들이 죽어갔다. 이러한 일련의 사태와 관련하여 안티 파시즘을 외치던 여러 명의 안티 파시즘 연합 당원들도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특히 지난 2004년 2월 9일 아버지와 사촌오빠의 손을 잡고 귀가하던 중 살해당한 타지키스탄 9살 소녀 쿨테다 슐타노바 이후, 2005년 11월 13일 백주대야에 안티 파시즘 전단을 돌리다 무자비하게 난자당한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학생 티무르 카차라바, 지난 4월 8일 귀가 길에 총격을 받고 죽은 세네갈 유학생 삼바 람프사르는 이 지역의 인종문제가 더 이상 외국인들 뿐만 아니라 러시아인들의 안전 역시 위협하고 있음을, 이러한 사태를 방치하고 평화 수호를 더 미루다가는 러시아 전체가 광기에 휩싸인 무리에 장악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a 지난 4월 8일 졸업을 2개월 앞두고 고인이 된 세네갈의 살 삼바 람프사르

지난 4월 8일 졸업을 2개월 앞두고 고인이 된 세네갈의 살 삼바 람프사르 ⓒ 신재명

a 피의 사원 앞에서 연설하는 아프리카 연합 대표

피의 사원 앞에서 연설하는 아프리카 연합 대표 ⓒ 신재명

이날 시위대에는 러시아 학생들의 수가 약 80%로 압도적으로 많았고 백여 명의 아프리카 학생들과 수십 명의 유럽,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계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경찰은 대규모 시위대를 향한 만일의 공격에 대비하여 대규모 기동대를 비롯한 경찰 병력을 시내 중심가 및 시위대가 귀가하는 전철역 구석구석에 배치하였다.

시위대는 국가가 현재의 문제를 좌시하고 있으며 언론을 통제하면서 사태의 심각성을 제대로 알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고 하였다. 특히, 러시아 정부가 인종주의를 표방하는 무리의 행동을 일정 부분 묵인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러한 미미한 대응들이 결국 또 다른 희생자를 낳을 것이라면서 러시아 국민과 외국인이 함께 힘을 모아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러시아에 인종주의가 설 땅은 없음을 알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a 사촌을 잃은 학생을 위로하는 아프리카 학생

사촌을 잃은 학생을 위로하는 아프리카 학생 ⓒ 신재명

a '파시즘 물러나라!'는 표어를 들고 행진하는 여러 인종 학생들

'파시즘 물러나라!'는 표어를 들고 행진하는 여러 인종 학생들 ⓒ 신재명

러시아 사법부는 지난 3월 23일, 2004년 무참히 살해당한 쿨테다 슐타노바의 용의자 12명 중 8명을 난동죄(hooliganism)로, 나머지 4명은 무혐의로 처벌하였다. 이에 따라 로만 카자코프 등 슐타노바를 직접 칼로 살해한 주범 3명 중 2명은 이미 복역을 마치고 풀려난 상태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언론은 국민들이 재판 결과에 낙담하였고 지난 3월 25일에는 이에 반하여 여러 정당 및 학생들 주관으로 안티 파시즘을 주창하는 시위를 벌였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올해에만 38명의 타지키스탄 출신 이민 노동자들이 모스크바에서 살해당하였으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지난 2004년 23명, 2005년 34명이 인종문제와 관련해 희생당했다. 희생자의 신분은 외국인, 러시아인, 소수민족 등으로 다양하였고 실제 인종관련 살인사건 수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a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아프리카 학생들

희생자의 사진을 들고 시위하는 아프리카 학생들 ⓒ 신재명

a 언론을 통해 인종주의자들에게 강하게 경고하는 아프리카 학생

언론을 통해 인종주의자들에게 강하게 경고하는 아프리카 학생 ⓒ 신재명

러시아의 인종 관련 범죄들은 최근 몇 년 사이에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중심으로 지능화, 대범화되고 있다. 이들은 상대에 비해 인원수가 적을 때는 절대 공격하지 않고, 조용히 매복하거나 지나가는 척 접근했다가 방심하는 순간 흉기로 급소를 가격한 뒤 현장을 빠져나간다. 경찰에 체포되면 사고였다고 주장한다.

지난 5년간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는 주먹, 각목에서 칼과 벽돌 등으로 빠르게 바뀌었다. 지난 8일 새벽 세네갈 학생 삼바를 살해할 때 쓴 무기는 총이었다. 외국인들에게 겁을 주던 무리의 범죄가 경험이 쌓이면서 지능화, 대범화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3월 당시 16세의 한국 유학생 역시 귀가길에 20여명의 스킨헤드 무리에게 가슴, 복부, 등, 옆구리 등 20여 군데를 난자당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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