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스카우트 당했어요"

장애 극복하고 취업 성공한 한 여성 이야기

등록 2006.04.12 15:33수정 2006.04.12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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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내일 교육을 가야 돼서 그런데요. 김미영님을 좀 챙겨주세요. 방과 후 학습지도사 구인이 있는데 취업업무를 담당하시는 정금자 선생님께 말씀 좀 해주세요."


교육을 가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챙겨드릴 수 없다며 성취프로그램 파트너인 동료가 나에게 김미영씨를 부탁했다. 임신 육 개월인데도 취업을 해야 할 만큼 사정이 절박해 희망프로그램을 수료한 후 성취프로그램까지 연계가 된 주부 구직자였다.

"꼭 취업하셔야 할 분이거든요. 부탁드려요."

주부 취업을 담당하고 있는 정 선생에게 미영씨를 데리고 갔다.

"복지관의 방과 후 학습지도사 자리거든요. 어떠세요?"

미영씨는 한참 생각하더니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한번도 아이들을 가르쳐 본 적이 없어서요... 자신이 없어요."

순하디 순한 얼굴에 금방이라도 이슬이 맺힐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정 선생이 "걱정하지 마세요. 하실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알아봐드릴게요"라며 안심을 시켰다. 미영씨를 먼저 프로그램실로 보내고 뒤따라가려는데 정 선생 책상의 전화벨이 숨가쁘게 울렸다.


"아, 예, 잘 하셨어요. 너무 축하드려요. 예, 언제든지 오세요."

전화를 하도 반갑게 받기에 궁금해서 정 선생에게 물었다.

"누군데 그렇게 반갑게 전화를 받아요?"
"그 분 있잖아요. 월급 70만 원 받아서 친정어머니께 보약 지어드렸던 분."
"아, 그 분이요. 잘 알죠. 좋은 일이라도 생겼나요?"
"스카우트 당하셨대요. 월급도 30만 원이나 더 받고."
"잘 됐네요."

a 취업의 염원을 담아 주부구직자가 만들어준 장미공예

취업의 염원을 담아 주부구직자가 만들어준 장미공예 ⓒ 이명숙

정 선생하고 통화를 한 주인공은 오마이뉴스 2006년 1월 11일 '친정 엄마에게 보약 한 재 지어드렸어요'의 주인공이었다. 취업을 한 후로도 지속적으로 전화 통화를 했던 그녀는 이번에도 제일 먼저 기쁜 소식을 정 선생에게 알린 거였다.

외국인을 결혼 시키려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가서 소정의 절차까지 책임지고 해 줘야 하기에, 그곳을 거의 매일 방문하다시피했다. 그곳에서 다른 결혼정보회사를 운영하는 사장과 자연스럽게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4개월 가량 그녀의 일하는 모습을 눈여겨 보셨던 그 사장이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며 스카우트 제의를 해 온 거였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갈등을 하던 그녀는 정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곳에서 대인관계로 힘들어 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던 정 선생은 "최후 결정은 본인이 하셔야겠지만 만약에 퇴사를 하게 된다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하시지 말고 여유있게 말씀을 하세요. 그래야 다른 여직원도 구할 수 있고 업무에 차질이 없거든요"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리고 이직을 해도 좋을 만큼 믿을 수 있는 회사인지 알아보기 위해 정 선생은 그녀와 전화를 끊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회사 사장과 통화를 했다.

그곳 사장은 예의 바르고 정중했다. 일하는 모습을 지켜봤더니 참 잘 한다며 만약에 오게 되면 월급도 30만 원을 더 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 통화를 끝낸 정 선생은 일단 안심을 했다. 믿어도 될 듯싶었다. 정 선생은 전화를 해서 지금 근무하고 있는 곳보다 여건은 더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해 줬다. 그녀의 처지와 형편을 잘 아는지라, 30만 원은 큰 액수였다.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그녀는 사고로 장애인이 되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직장생활을 하던 중 출근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처음에는 한 쪽 팔이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울기도 많이 했고 삶의 의욕까지 상실하기도 했지만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남편도 장애인이라 힘든 일을 못하기 때문에 고정적인 수입이 거의 없었던 그녀에게 취업을 해서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고민하고 있는 그녀를 위해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알아보고 전화까지 해 주니, 그렇지 않아도 고마워하고 있는데 정 선생에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나 보다.

"정 선생님 말대로 미리 사장님한테 말했더니 다른 직원 구할 때까지 일을 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해 주고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어요. 한 달 쉬고 근무하기로 했다는 말씀드리려고 전화했어요."

한 팔이 없는 장애인에다 나이까지 마흔이 넘은 주부라 평생 취업을 못할 줄만 알았는데 이렇게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너무 좋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웃는다고 했다.

"이렇게 좋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니, 이것은 기적이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 선생님은 하나님이 나에게 기적을 보여주시기 위해 보내주신 분 같아요."

정 선생은 그녀에게 이미 구직자와 직업 상담원을 넘어 친구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달 뒤, 회사를 옮긴 그녀는 음료수 한 박스를 기어이 정 선생 책상 위에 놓고 갔다. 그녀는 그곳에서 여직원을 관리하는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장애까지 극복하고 취업에 성공한 그녀와 정금자 직업상담원의 아름다운 우정이 따사로운 햇살보다 더 포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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