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엄마에게 보약 한 재 지어드렸어요"

장애인 채용장려금 대상자인 중증 장애인의 눈물겨운 월급 70만원

등록 2006.01.11 18:26수정 2006.01.12 11:26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선생님, 가슴을 따듯하게 하는 사연이 하나 있는데요."


취업희망을 진행하고 있는 정 선생이 출장에서 돌아온 나를 보자 말을 한다.

"어떤 내용인데요?"

따스한 사례라는 말에 귀가 번쩍 뜨인다.

"정금자 선생님이 상담한 내용이거든요."

내가 구직자들에 대한 사례에 유독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 동료들은 상담을 하다가 특별히 마음에 남는 미담이 있으면 알려주곤 한다. 수첩과 볼펜을 챙겨들고 정 선생에게로 간다.


"어떤 사연인지 들려주세요."

정 선생의 상담창구에 자리를 잡는다.


"대면 상담이 아니라 전화로만 상담을 한 케이스인데요. 이 아무개님은 현재 44세로 왼쪽 팔이 없는 중증장애인이에요."

정 선생은 이 아무개와 인연을 맺게 된 과정을 풀어놓는다. 2005년 5월 모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상담원 1명을 모집한다는 구인이 들어왔다. 구인조건은 장애인 채용장려금대상이었고 특히 중증장애인을 요구했다. 구인표에 기재된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 업체에 전화를 해서 자세한 사항을 알아본 후, 정 선생은 구직자를 찾기 시작했다.

a 금주의 일자리 정보

금주의 일자리 정보 ⓒ 이명숙

고용정보전산망상에서 구직상태가 유효한 장애인 구직자 60명 이상을 추려내, 그 중에서 장애 2급 이상인 중증장애를 가지고 있는 구직자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결혼정보회사에서 전화상담이 가능한 구직자를 찾고 있다는 정보를 제공하자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그녀는 적극적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으니 내일 제가 동행면접을 해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업체측에서 상관 없다면 지금이라도 찾아갈 수 있습니다."

늦은 오후에 업체를 찾아가 면접을 본 그녀는 바로 채용이 되었다며 다음 날 전화를 걸어왔다.

"한번도 뵌 적이 없는데 저에게 이렇게 일자리를 구해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려요. 시간이 나면 꼭 찾아뵐게요."

중증 장애를 가지고 있는 구직자가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은 다른 어떤 것보다 반가운 일이었다. 특히 대면상담이 아닌 전화상담을 통해서 취업이 된 경우라 더 가슴에 남았다. 그녀가 취업을 하고 한 달 정도 지났을 무렵 뜻밖의 전화가 왔다. 정 선생님 덕분에 시어머니에게 덜 미안하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이 아무개는 장애인인 남편,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 자식 넷과 함께 두 칸짜리 상하 방에서 살고 있었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은 영원히 풀지 못할 숙제라고 하는데, 치매기가 있는 시어머니와 한 집에 살기란, 말로 표현하지 못할 고통이었다. 눈감고 귀 막고 마음에 갑옷을 입고 살아야지 아무리 다짐을 해도, 시어머니와 막상 부딪치면 이내 한계점에 도달해 버렸다. 심장이 벌렁거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한 손으로 시어머니 대소변을 받아내기를 삼 년, 이대로는 더 이상 못 살겠다는 최악의 순간에, 고용안정센터에서 전화가 온 것이다.

a 새해에도 고용안정센터가 함께 하겠습니다.

새해에도 고용안정센터가 함께 하겠습니다. ⓒ 이명숙

그녀는 무조건 집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좋았다. 정 선생의 전화를 받고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일까지 기다릴 것도 없었다. 바로 사업체를 찾아가 면접을 보았다. 사업주는 전화만 잘 받을 수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녀에게 근로조건은 두 번째였다. 취업이 된 후로 시어머니와 관계가 많이 좋아졌다. 하루 종일 부딪치지 않아도 되었고,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그러워질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는데,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것이다. 만약에 취업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돌아가셨다면 시어머니에게 못해 드린 자책감에 시달렸을 텐데, 정 선생 덕분에 관계가 좋아진 후 보내드릴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 놓은 이 아무개는 힘든 일이 있을 때나 의논할 일이 있으면 정 선생에게 전화를 해서 조언을 구하곤 했다.

취업을 한 지 두 달이 다 되어갈 무렵, 걸려온 전화는 평소와 다르게 말투에 근심이 묻어 있었다.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도 월급을 주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이 일은 꼭 하고 싶은데요."

육체적인 노동이 힘든 그녀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해 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월급을 받아내는 것이 문제였다.

"이 아무개님은 중증장애인 채용장려금대상자세요. 한 달에 60만원씩 1년 간 지급이 되니까, 지원금을 받으려면 근로자에게 급여를 먼저 지급하고 신청을 해야 되거든요. 혹시 통장을 만들라고 하던가요?"
"통장을 만들라고 해서 줬어요."
"그렇다면 장려금을 신청했다는 소리거든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을 해 보세요. 고용안정센터 담당자가 그러는데 내가 한 달에 60만원씩 지원받는 장애인 채용장려금 대상자니까 지원금을 받으려면 먼저 임금을 지급해야 된다고 하더라. 그래도 안 주면 힘들겠지만 각서를 받아놓으세요. 다음에 임금체불로 고발할 때 근거가 되거든요."

정 선생은 그녀에게 임금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자세히 안내를 해 주었다.

며칠이 지난 후 다시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장려금을 지급하는 담당자가 지도 점검을 왔는데 일을 하고 있는 저를 보고 평생 근무할 수 있으면 하라며 좋은 말들을 해 주고 갔어요. 정 선생님 말대로 했더니 한 달 치 월급도 줬고요. 밀린 한 달 치 월급은 퇴직 시 즉시 주겠다는 각서도 써줬어요."
"아휴, 다행이네요. 그런데 그 식구가 먹고 살기에는 월급이 너무 적은데 괜찮으세요?"

"적기는요. 그 돈이 얼마나 요긴하게 쓰이는데요. 아이들 학용품도 사 주고, 가사비용으로도 쓰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친정어머니한테 보약도 지어드렸어요. 선생님 정말 감사해요. 누구한테 이야기 할 사람도 없고 말도 못했는데 정 선생님 얼굴 꼭 한번 뵙고 싶어요. 제 은인이세요."
"저는 지금까지 친정어머니한테 보약 한번 지어드린 적 없는데, 이 아무개님한테 제가 배우네요. 언제든지 전화하세요. 힘들어도 하시고 좋은 일이 있어도 하시고요."

그녀에게 정 선생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녀가 근무하고 있는 결혼정보센터는 외국인과 우리나라 사람들을 맺어주는 결혼상담소다. 장애인을 채용하면 장려금이 지급된다는 것을 알게 된 사업주가 장애인 채용장려금 대상자를 요구한 것이었다. 특히 중증인 경우는 한 달에 60만원씩 1년간 지급이 되기 때문에 1년간 45만원씩 지급되는 경증장애인에 비해 지원금이 많다. 사업주는 60만원을 받아서 거기다 10만원만 더해 월 70만원씩 임금을 준다.

하지만 그녀는 그것마저도 행복해 한다. 일을 하게 해 주어서 고맙고 적으나마 월급을 받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한다. 남편도 장애인이라 생계수단이 거의 없는 그녀의 가족에게 70만원은 평생, 걱정만 끼쳐드린 친정어머니에게 보약 한재까지 지어줄 수 있는 돈인 것이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난리도 아닙니다" 농민들이 올해 벼 빨리 베는 이유
  2. 2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이러다가 대한민국이 세계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3. 3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자기들 돈이라면 매년 수억 원 강물에 처박았을까"
  4. 4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지금도 소름... 설악산에 밤새 머문 그가 목격한 것
  5. 5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X은 저거가 싸고 거제 보고 치우라?" 쓰레기 천지 앞 주민들 울분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