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축제를 다녀오다

주읍산, 그리고 주읍리 산수유축제 현장에서

등록 2006.04.12 20:14수정 2006.04.13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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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006년 4월 9일 산수유 핀 주읍리 마을

2006년 4월 9일 산수유 핀 주읍리 마을 ⓒ 김선호

a 주읍산길에 핀 하얀제비꽃

주읍산길에 핀 하얀제비꽃 ⓒ 김선호

산수유꽃은 남도의 3월을 노랗게 물들이고 4월에 들어서야 중부지방에 도착했다. 이때 맞춰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에서 '산수유축제'가 열렸다. 올 들어 세 번째 축제가 열리고 있는 개군면 주읍리를 찾았다. 제1회 축제의 현장을 찾았던 우리가족에게 이번 산수유축제는 남다르게 느껴졌다.

하루전날 사상 최대의 황사가 한반도를 강타했다는 것을 확연하게 느낄 수 있을 만큼 시야는 흐려 있었지만 따갑게 쏟아지는 봄 햇살은 누가 뭐래도 완연한 봄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평평한 대지(平)에 봄 볕(陽)이 가득 내리는 양평 (陽平)을 향해 가다가 졸음에 겨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남편의 한마디에 눈이 번쩍 떠졌다. 그것은 마을 입구에 걸려 나부끼던 플래카드에 적힌 글 때문이었다.

''고음불가' 이수근 출연'이라는 플래카드가 '산수유축제'를 환영하는 플래카드와 나란히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는 이 개그맨이 바로 산수유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주읍리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산수유를 보러 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좋아하는 개그맨을 만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으니 이래저래 마을로 향하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울 수밖에.

산수유축제는 개군리에 인접한 주읍리와 내리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두 마을이 서로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두 군데 축제를 다 보아도 좋을 것이다.

a 산수유마을

산수유마을 ⓒ 김선호

a 진달래꽃잎을 먹어보는 아이

진달래꽃잎을 먹어보는 아이 ⓒ 김선호

두 마을을 넉넉하게 감싸듯 우뚝 솟아있는 주읍산(580m)을 등반하려면 내리와 주읍리 어디에서 시작해도 상관이 없을 것이지만 제대로 된 산수유를 보고자 하면 주읍리를 돌아보아야 한다. 물론 내리 마을에도 100년이 넘은 산수유가 7천여그루가 심어져 있다니 그곳에서도 산수유를 실컷 볼 수 있을 것이나, 산수유의 진짜 모습을 보기 위해선 주읍리가 훨씬 적격이다.

주읍리의 산수유는 200년에서 400년이 넘은 오래된 나무들이라 한 폭의 그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주읍리 마을은 고향에 다니러 온 듯한 착각이 들만큼 푸근한 인상을 준다. 한창 만개한 산수유가 가득 피어난 마을은 황금빛 햇살에 어울린 노란꽃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첫해에 비해 규모도 커지고 행사를 진행하시는 마을분들도 더 바빠 보였다. 마을 이장님이라는 분에게 '주읍산 등반대회' 소식을 물었다. 축제의 일환으로 주읍산 등반대회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차였는데 잘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마도 등반대회는 주읍리가 아닌 내리에서 시작하나 보다는 애매모호한 답변이었다.

a 개울가 옆에서 우연히 발견한 산현호색

개울가 옆에서 우연히 발견한 산현호색 ⓒ 김선호

a 산수유마을 건너 추읍산이 보인다

산수유마을 건너 추읍산이 보인다 ⓒ 김선호

한 등산하는 실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려고 시간을 맞춰 왔는데... 하지만 이장님 말씀처럼 등반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딸아이가 고대하는 개그맨아저씨의 등장이 오후에 있을 거라니 천천히 주읍산을 등반하기로 한다.


주읍산의 원래 명칭은 '칠읍산'이란다. 산 정상에 올라 보면 인근의 7개 읍을 한번에 다 볼 수 있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라는데 마을이름과 혼동을 피하기 위해 주읍산으로 최근에 통합되었다고 한다(지도에는 추읍산이라고 명기되어 있음). 비교적 낮은 주읍산은 전형적인 흙산으로 아이들을 포함한 가족등반객들이 많이 찾는 산이다.

농가 울타리와 파랗게 보리가 자란 밭두렁, 봄나물이 지천인 논두렁마다에 풍성하게 노란꽃을 피운 산수유나무가 마을을 아름답게 감싸고 있는 길을 지나 추읍산으로 향했다. 흙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봄풀들이 무성하게 올라오고 그 틈새로 쑥들이 지천으로 돋아나 이른 아침부터 밭둑에서 쑥을 뜯는 아낙들이 보인다.

주읍리쪽에서 추읍산을 오르는 이들이 거의 없어서 산길 양쪽으로 보라색, 하얀색 제비꽃이 가득 핀 길을 우리가족이 다 차지하고 걸었다. 조붓한 오솔길과 차 한 대는 너끈히 지나다닐 수 있는 큰길이 양쪽으로 놓여 있었는데 오솔길은 걸어서 산을 가고자 하는 이들이 지나다니는 길이요, 크게 뚫린 다른 길은 오프로드용 차를 타고 스피드를 즐기는 이들을 위한 길인 모양이었다.

주읍산행은 넉넉잡고 1시간 30분이면 마칠 수 있으나 물을 공급하는 곳이 없다. 약수터를 만났으나 식수로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축제의 일환일까, 약수터 바로 위쪽에 나무를 배어내고 땅을 고르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건축물이 들어서는가 싶었고, 그런 탓인지 흐르는 약수는 없고 고여 있어 먹을 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어렵지 않게 7부 능선까지 올랐으나 거기서부터 급경사가 시작되었다. 등반객들이 적은 탓인지 그 흔한 밧줄도 없고 외길인 등산로는 막 부풀어 오른 부드러운 흙덩이들이 제 맘대로 흩어져 내리고 있었다. 애초에 계획한 대로 원점회귀 코스를 수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경사가 급했다.

a 개그맨 이수근 아저씨와 사진을 찍다.

개그맨 이수근 아저씨와 사진을 찍다. ⓒ 김선호

a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부르는 해바라기

'내 마음의 보석상자'를 부르는 해바라기 ⓒ 김선호

정상에 도착해 '칠읍'을 살펴보아야 했는데 여전히 미세한 황사먼지가 사방을 떠돌고 있어 그것도 여의치 않았다. 집에서 가져온 따뜻한 물로 차를 한잔씩 우려마시고 내리쪽으로 하산하기로 했다.

의외로 내리쪽은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었다. 오히려 주읍리쪽 코스보다 경사가 완만한데도 말이다. 나무계단이며 밧줄이 작은 경사면에도 너무 잘 정비되었고, 무던한 산길로 계속되어 올라온 코스에 비해 숲의 표정도 다양해 보였다.

숲의 표정은 숲을 이루는 나무의 다양성에 크게 좌우되는 것 같다. 특히, 하산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길고 넓게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너덜지대였다. 너덜지대에 누군가 높이 쌓아놓은 돌탑도 주변과 잘 어울렸고, 진달래의 화사함도 숲의 표정을 한결 돋보이게 해주었다.

마을은 노란산수유꽃 세상이고 숲은 연분홍진달래 꽃터널이니 어디 한군데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던 4월의 추읍산. 아이들에게 진달래 꽃잎을 따 먹던 어린시절을 들려주며 진달래꽃잎을 먹어보라 건넸다. 씁쓸한 꽃잎이 뭐가 맛있냐며 아이들은 금방 뱉어내고 말았지만, 내게 있어 진달래꽃은 그때 그 맛과 같았으며 어린시절 추억 한 자락 떠오르게 만들었다.

아랫마을이 가까워지는 동안 산을 오르는 등산객들을 자주 만날 수 있었다. 마을이 가까워 졌다는 신호가 확성기를 통해 품바타령에 실려 오고 희미하게 북적이는 장터의 소음도 함께 들려오기 시작한다.

마을과 한참 떨어져 진행되는 내리마을 축제는 등산로 바로 아래 산비탈에서 벌어졌다. 먹거리장터 뿐만 아니라 떡메치기, 장작패기, 고구마 구워먹기 등 어떤 축제에서나 볼 수 있을 만한 풍경들 속에 무대한가운데서는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같은 산수유축제 건만 주읍리 풍경과 여러모로 차이가 나는 내리의 축제현장을 빠져나와 주읍리로 향했다. 차로 가면 10분이라는 내리와 주읍리 사이를 이번엔 산을 가로질러 갔다. 주읍리 가는 산길은 포장이 잘 된 임도가 놓여 있었는데 그 길을 만들기 위해 저렇게 산을 깎아야 했을까 싶을 만큼 지나치게 길이 넓다. 임도 양쪽엔 빽빽한 소나무 숲이 형성되어 있다. 소나무재선충으로 토종소나무들이 죽어간다는데 한편에선 멀쩡한 소나무를 이렇게 잘라내기도 하는구나 싶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오후로 넘어가는 햇살은 그늘도 없는 숲길을 걷기에 너무 따가웠다. 양옆으로 숲이 펼쳐져 있으나 임도를 따라가는 길엔 나무그늘 한 점 없는 땡볕이었다. 50분 남짓 임도를 따라 산길을 걸었는데 몇 시간은 족히 걸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고 멀리 주읍리 마을이 보일 땐 이미 지쳐 있었다.

노란 산수유꽃에 둘러싸인 주읍리 마을이 새삼 반가웠다. 주읍리에서 주읍산을 올라 내리로 들어섰다가 내리에서 다시 걸어 주읍리로 돌아왔으니 개군리를 한바퀴 다 돌아본 것 같은 뿌듯함도 없잖아 있었다.

오래되어 검은빛이 뚜렷한 주읍리마을의 산수유는 검은나무등걸 때문에 노란꽃빛이 더욱 돋보인다. 그런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보리밭의 초록색은 또 얼마나 원색적이던지.

한창 만개한 산수유꽃잎에 홀린 듯 걷다가 눈에 띄면 쑥도 한 웅큼 뜯는 사이 아이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개그맨이 출연하는 시간이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마을 중앙에 작은 무대가 마련되었고 관람객을 위해 준비한 의자에 앉아 기다리며 개그맨이 언제 등장하냐 싶었는데 내 의자 바로 옆에서 환호성이 터진다.

일요일 밤마다 우리가족에게 웃음을 전해주던 바로 그 개그맨이 눈앞에 있었다. 제일 좋아할 것 같던 딸아이는 아빠 뒤에 숨어 버리고 용감하게 나서는 아들녀석을 옆에 세워 사진을 찍고 사인도 받았다. 그리고 '해바라기' 공연도 볼 수 있었다. 산수유는 아름다웠고 축제는 더 없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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