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구태'를 도려낼 수 없는 이유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공천권은 곧 당권 장악과 직결

등록 2006.04.13 09:58수정 2006.04.13 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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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을 어찌할꼬...'... 한나라당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의원총회 회의장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이 일을 어찌할꼬...'... 한나라당 서울지역 기초단체장 공천 비리 의혹과 관련해 정치적 파장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표와 이재오 원내대표가 13일 오전 국회 의원총회 회의장에서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연합뉴스 이상학

김형준 국민대 교수가 질타했었다. 한나라당에는 대선 필패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개혁하겠다고 하다가 대세론에 젖어 안주하고, 그러다가 수구보수로 돌아가 국민에게 버림받는다는 법칙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금 간 바가지에서 물이 줄줄 새는 모양새다.

김덕룡, 박성범 의원의 공천헌금 수수 의혹은 대표적 증좌다. 김 교수의 대선 필패법칙에 대입하면 '수구보수로의 회귀'에 해당하는 구태다. 구청장 공천을 바라는 사람 또는 그 인척에게 억대의 돈과 프랑스제 모피코트, 루이13세 고급양주를 받았다면 이는 '매관매직'에 해당한다.

한나라당은 5선 의원으로 당권 후보로 꼽히던 사람과 3선 의원으로 서울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는 사람, 간단히 말해 당 중진이 구태를 보였다는 데 충격을 받은 것 같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구태 주체가 그 두 사람에 한정됐다면 오히려 다행이다. 도려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런 인사가 적잖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곽성문, 이종구, 한선교 의원 등이 이런저런 이유로 공천비리 의혹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 구청장의 금품 수수 의혹도 불거져 있고, 출마예정자들의 줄서기와 헌금 사례도 '백태'로 칭할 만큼 다양하다.

문제는 구태가 구조화됐다는 점이고, 더 큰 문제는 구태의 구조화가 대세론에 기인했다는 점이다. 잘 나가는 한나라당에 줄 서야 지방의원이나 단체장을 할 수 있다는 인식과, 이를 제어 못한 당 지도부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구태를 구조화시켰다.


한나라당 '대선 필패법칙', 대세론 안주→수구보수로 회귀

이 지점에 오면 김 교수의 대선 필패법칙은 더욱 강화된다. 대세론 안주→수구보수로의 회귀 수순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면 관심사는 하나로 모아진다. 김 교수의 대선 필패법칙의 마지막 단계, 즉 '국민의 외면'이 언제 본격화하는가 하는 점이다.

유의해서 봐야 할 뉴스가 있다. <연합뉴스>의 어제 보도에 따르면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속락하고 있다고 한다. 여론조사기관인 한길리서치가 지난 7-8일 전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 한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도가 29.6%로 나왔다고 한다. 이 지지도는 3월의 33.1%에 비해 3.5%포인트 하락한 것이고, 1월의 38.4%에 비해 8.8%포인트 빠진 것이다.

한길리서치는 한나라당 지지도 속락의 이유로 공천 비리 외에 '황제 테니스' 의혹, 최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 허남식 부산시장 부인의 관용차 사용 등을 꼽았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수많은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기 때문에 특정 조사결과를 부각시킬 이유는 없다. 하지만 특정 여론조사기관이 동일한 방법과 문항으로 동일한 조사를 했다는 점에서 조사결과의 추이를 평가절하 할 이유도 없다. 더구나 조사결과의 이유로 제시한 것이 일반 국민의 통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의미성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점을 전제로 하고 보면 한나라당은 대선 필패법칙의 마지막 단계, 즉 '국민의 외면' 초입단계에 진입했다는 평가를 내릴 만하다. 석 달 사이에 지지율이 8.8%나 빠졌다면 '국민의 외면'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의 외면'이 초입단계라는 점이다. 아직까지는 한나라당 지지율이 열린우리당 지지율을 앞서고 있다. '국민의 외면'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까지는 이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공천비리'

한나라당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다. 구조화된 구태를 뿌리째 도려내는 일이다. 김덕룡, 박성범 의원 사례가 상징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근본이 될 수는 없다. 전체를 손대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공천심사권을 이미 시도당으로 넘긴 상황에서 중앙당이 나서는 데 한계가 있다. 비상상황을 선포하고 중앙당이 나선다 해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그 뿐인가. 중앙당이 나서서 공천 재심사와 비리 솎아내기에 나설 경우 상당한 규모의 반발을 감수해야 한다. 솎아내기가 무소속 출마 도미노 현상을 낳을 경우 선거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 자칫하다간 부부싸움 끝에 초가삼간 허무는 꼴을 연출할 수 있다.

더 있다. 솎아내기에 나서면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전략이 타격을 받는다.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슬로건은 '중앙정부 심판'이다. 참여정부의 무능을 집중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솎아내기를 해서 부패 사례가 공개되면 공개될수록 이 지방선거 슬로건은 약화된다. 오히려 한나라당 부패상이 부각되면서 열린우리당의 '지방권력 심판론'에 힘을 실어줄 공산이 크다.

이 사정 저 사정 다 재다간 만시지탄의 우를 범할 수 있기에 '알렉산더의 칼'을 뽑아들 수 있지 않겠느냐는 반론도 있지만 재반론의 새 근거도 있다.

지방선거 공천이 치열해진 이유를 지방선거 '당선증'에서만 찾는 건 단견이다. 또 하나의 요인이 있다. 바로 당내 역학구도다.

한나라당은 오는 7월 당 대표를 새로 뽑는다. 대권과 분리된 관리형 대표이지만 대선후보를 뽑는 당내 경선의 향배를 좌우할 조직 관리를 맡는다는 점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리다.

문제는 당 대표직이 당 기층조직의 장악 정도에 달려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바로 지방선거 공천과 직결돼 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손을 대려 해도 쉽게 댈 수 없는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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