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을 맞이하여 다짐해 봅니다

관용이 넘치는 신앙생활, 이해관계를 벗어난 선거, 자기성찰이 필요한 학교가 되어야

등록 2006.04.13 15:25수정 2006.04.13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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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과 더불어 다시 태어나는 삶의 기쁨을 맛보아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우리들의 삶을 되돌아보면서 바람직한 삶의 자세가 진정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만 옳다고 부득부득 우기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아니면 나에게는 무딘 비판의 칼을 들이대고 다른 사람에게는 날이 선 비판의 칼을 들이대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나의 기쁨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다주지는 않았는지 역시 우리는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 필요해
부활절을 맞이하여 자기성찰과 자기반성이 필요해노태영
살아가면서 우리는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실수를 깨닫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꿈을 꾸고 소망을 키워도 그 꿈이 그 소망이 잘못된 생각이나 의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면 그 꿈이 이루어진들 그 소망이 이루어진들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단지 자기만족밖에는 없습니다.

부활절의 의미는 바로 올바른 것의 승리를 의미합니다. 바른 생각과 정직한 의식의 승리를 말합니다. 바로 진리의 승리입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합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진실을 통해 모든 일은 이뤄집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도 진실하기 때문입니다. 진실하지 못한 생각이나 행위는 단지 승리하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다 결국 진실과 진리에게 승리의 자리를 넘겨줄 뿐입니다.

요즈음 영화 <다빈치 코드>가 사회적 논쟁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런 논쟁거리가 사회적 문제가 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배타성과 경직성입니다. 배타적인 종교나 신앙은 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종교의 일차적인 의미는 포용성과 관용이 아닌가 합니다. 종교가 포용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지 않는다면 그 무엇도 관용과 포용을 베풀 수가 없습니다.

부활절을 맞아 예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인간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인간을 포용하지 않고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면 어떻게 자기희생을 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예수님 자체가 사랑이고 관용입니다. 이런 관용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베풀지 않는다면 자기모순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용이나 사랑을 구하지 말고 먼저 실천을 해야 합니다. 이런 자세가 없는 종교나 신앙은 사회적 통합의 걸림돌일 뿐입니다.

종교에 대한 비판이나 부정적인 판단도 역시 종교발전을 위해 필요합니다. 이런 비판이 종교를 강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무조건적으로 반대자들을 적대시하기보다는 논리와 이론으로 그런 비판을 극복해야 합니다. 맹목적인 종교적 추종보다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종교적 이해가 필요합니다. 맹목적인 반대와 무조건적인 무시는 갈등과 대립을 야기합니다. 이런 것들은 사회에도 종교에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도 하느님도 원하는 바가 결코 아닐 것입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면서 예수님 사랑의 진정성과 하느님의 자비심에 대한 각성이 진실로 필요한 때입니다.


생활 속에서 우리들은 나를 항상 가운데에 놓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에 무관심하거나, 그런 것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살아온 날들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적게 남은 나의 삶을 돌이켜 보면 이 말이 참으로 맞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나를 위한 삶만이 존재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삶은 나에게 의미가 있을지는 몰라도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아니 다른 사람에게 아픔과 고통만을 주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인생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라도 바꿔나가야 합니다. '나'가 중심이 아니라 '너'가 중심이 되고 '우리'가 중심이 되는 생활로 말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다짐해 봅니다. 내 것을 조금이라도 양보하고 포기하는 삶을 살아가겠다고 말입니다.


노태영
5·31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방선거에서 누구를 뽑느냐는 분명 개인적인 선택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이 우리 모두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예전처럼 지역적인 정서나 혈연적인 인연이나 학벌의 인간관계에 의해 투표하면 우리 사회의 발전은 앞으로도 요원합니다. 이런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떠나 후보자를 선택하는 지혜가 필요한 때입니다.

후보자의 정책 실현가능성이나 정책 적절성을 유권자들이 검토해 보아야 합니다.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세금이나 지방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는 바로 선거에 의해 결정됩니다. 아무 생각없이 찍은 붓 뚜껑이 우리의 지갑을 가볍게 만들 수도 있고 우리 지갑을 꽉꽉 채우도록 만들 수도 있습니다.

후보자의 생각이나 과거의 행적들도 중요합니다. 올바른 생각과 건전한 의식을 갖고 있는 후보자는 공직생활도 그런 생각과 의식으로 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그릇된 생각이나 불온한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은 그런 생각과 의식으로 공직생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후보자의 생각이나 의식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후보자의 과거 행적도 꼼꼼히 따져보아야 합니다. 과거의 행적이 올바르지 못한 사람이 당선되었다고 해서 갑자기 올바른 생활을 할 수는 없습니다. 더 자기이익만 챙기고 자신을 위해 공직을 이용할 가능성이 더 많아질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어떻게 믿고 국가의 금고를 맡기겠습니까? 고양이한테 생선을 맡기는 격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솔직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왔습니다. 그 생선이 제대로 지켜졌습니까? 지금 생선가시도 남아 있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누구 탓입니까? 바로 우리들 탓입니다. 유권자 탓입니다.

5·31 지방선거를 맞이하여 그동안의 투표에 대해 진지한 자기성찰이 필요할 때입니다. 조용히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때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자기고백도 필요하고 자기비판도 필요합니다. 물론 후보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교가 몸살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로 살아남기 위한 몸살인지 발전적인 변신을 위한 몸살인지는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것입니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몸살이라면 이런 몸살은 반복적으로 계속될 것입니다. 몸살을 겪고 난 후 새로운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학교만의 몸살로 끝날 것입니다. 자기혁신이 필요하고 자기성찰이 필요합니다. 학교라는 조직도 그렇고 학교구성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자기성찰과 자기혁신을 통해 학교교육의 이념도 목적도 목표도 다시 세워야 합니다.

지금의 학교교육이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인식은 일치합니다. 단지 해결방법과 수단이 다를 뿐입니다. 생각과 의식이 다르니까 얼마든지 해결방법과 해결수단이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로 무엇을 위한 학교이고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라는 점입니다. 바로 교육을 위한 학교이고 학생을 위한 교육입니다. 학생과 교육을 벗어난 어떤 해결방법이나 해결수단도 정당성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자율학습도 특기적성 계발활동(보충수업)도 입시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학생과 교육 그 자체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해결책을 분명히 찾을 수 있습니다. 바로 그곳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합니다. 예수님이 달을 가리키며 우리 길을 인도하실 때에 달은 보지 못하고 우리는 예수님의 손가락만 보지는 않았는지 말입니다.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달은 보지 못하고 손가락만 열심히 보면서 살아왔습니다. 한 아메리칸 인디언이 말하였던 것처럼 진정한 지혜는 인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외로움 속에 존재할지도 모릅니다. 그 외로움은 고치 속에 있는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 견디어내야 하는 외로움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나비가 되기 위해 우리 스스로 좀더 외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자기를 성찰하고 자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바쁘게만 살아온 생활 속에서 우리가 우리의 의식과 우리 자신의 울타리를 벗어난 사고와 희생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 자신부터 깨어지고 부서지는 고통의 과정이 우리에게 진정 필요합니다. 나 자신부터 말입니다.

덧붙이는 글 | 노태영기자는 남성고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노태영기자는 남성고교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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