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를 기다릴 것인가, 찾아 떠날 것인가?

[책과 삶]사무엘 베케트 탄생 100주년에 부쳐

등록 2006.04.15 14:39수정 2006.04.18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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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신문에서 우연히 지난 12일이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가 탄생한 지 꼭 100주년이 되는 날임을 알았다. 그가 누군지 잘 알지 못하는 독자들도 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는 한 번쯤 들어본 바 있을 것이다.

물론 들어만 봤지 그 작품을 읽어본 사람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 작품을 무대에서 만나본 독자들은 꽤 있을 것이다.


그만큼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 <고도를 기다리며>는 최초 무대에 올려진지 반세기가 넘도록 아직도 많은 무대에서 공연되는 흔치 않은 문제작이다. 기자가 위 작품과 첫 대면을 한지도 20여년의 시간이 흘렀다. 서가에 꽂힌 책은 그 세월의 연륜을 보여주듯 누렇게 변색되어 있고 활자는 깨알 같다.

책값을 아끼기 위해 복사하여 제본한 원서가 그 옆에 함께 끼어 있다. 복사지의 흐린 활자는 내 기억 속에서 흐려진 작가의 언어만큼이나 낯설다. 낯설음을 떨쳐내기 위해 희곡을 다시 읽는다.

무대에 올려진 부조리한 세상

작가가 희곡을 썼던 1950년대는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의 여파로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이 와해되고 참혹한 전쟁으로 당대를 살던 사람들에게 회의와 혼란만을 가져다준 시기였다. 인간 존재와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르트르나 카뮈 같은 실존주의 작가들에 의해 점차 영향력 있는 문예운동으로 확산되어 갔고 극작가들은 전쟁 전에 유행하였던 쉬르레알리즘(초현실주의)의 수법을 빌려 '부조리극'이라는 새로운 극의 형식을 무대에 올린다.

그 부조리극의 대표작이 곧 <고도를 기다리며>이고 대표작가가 사무엘 베케트, 해롤드 핀터 등이다. 앙티 테아트르(Anti-Théâtre:反演劇)이라고도 지칭되는 부조리극은 인간조건의 무의미성과 부조리성을 드러내기 위해 비논리적이고 비인과적인 형식을 채택한다.


삶의 원칙이나 도덕적 행동규범을 상실하고 선택이나 판단의 기준마저 잃어버린 인간의 상황 자체는 사실적 묘사나 심리적 표출을 쓸데없는 것으로 배제시킨다.

등장인물들이나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는 분절되고 기계적으로 반복되어 무의미하게 지껄여진다. 정상적인 의사소통이란 불가능하고 그러므로 인물들 간의 대화는 연결성 없는 독백으로 무대 위에서 공명한다. 희곡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대화에서 상식적인 의사의 소통과 대화의 구체적 완결성을 기대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그들이 기다리는 '고도'가 누구인지 언제 오는지 알 수도 없다. 마른나무 아래서 왜 기다려야 하는지를 밝히지도 않은 채 무작정 기다릴 뿐이다. 부랑자인 두 사람은 (기자가 보기에)고도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무 얘기나 지껄이면서 스스로의 불안을 감추려는 듯이 보인다.

카뮈가 <이방인>에서 찬란한 햇빛 때문에 살인을 하듯이 부조리극의 주인공들 또한 행위에 대한 구체적 의사능력과 목적을 박탈당한다. 이는 아무 의미없이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절망적인 인간의 조건을 상정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고도는 누구이며 왜 오지 않는 것인가

많은 문학연구자들에 의해 '고도'가 누구인지 무엇을 비유하고 상징하는지에 대한 길고 깊은 연구들이 행해져 왔고 지금에도 고도를 찾고 기다리기 위한 작업들은 계속되고 있다. 어떤 이는 '신'을 은유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하고(물론 작가는 희곡 어디에도 신은 없다고 단정하였지만) 절망적인 인간의 삶 혹은 그 조건을 극복해줄 구원 또는 구원의 존재나 여건 등이라 말하기도 한다. '대중 속의 고독'이란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줄 막연한 희망 같은 것이지도 모른다.

a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공연 장면

극단 산울림의 <고도를 기다리며>공연 장면 ⓒ 극단 산울림

분명한 것은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누구나 부조리한 세상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동댕이쳐진 존재라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던져진 것은 결코 우리의 의지로 행해진 행위가 아니다. 문제의식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간의 허무와 살아내야 하는 존재(실존)로서의 숙명은 우리의 행위능력 밖에 있는 것이다. 부조리한 세상 또한 우리가 만들어 놓았다기보다는 우리도 어쩔 수 없는 존재 이전의 영역이다.

아무리 발버둥 치며 산들, 우리의 의사능력 행위능력으로 가능한 것들은 인간존재의 거대한 터전 위에서는 먼지처럼 사소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입신양명 부귀영화가 육체의 죽음과 정신의 쇠약이라는 우리의 운명을 바꾸지 못한다. 죽음 또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하지 못하는 존재의 조건 하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것은 희곡의 주인공들처럼 부랑자이거나 많이 배운 지식인이거나 심지어는 신의 대리인인 사제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기다릴 수밖에. 고도를 기다리는 희곡의 두 주인공은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산다.다만 기다리는 것만이 의미심장하다. 기다리는 그들도 고도가 누구인지 모른다. 하물며 그 당사자가 아닌 우리가 어떻게 고도를 알까. 알 필요도 없다. 그들은 고도를 만나기 위해 왔고 (그들이 기다리는 장소에) 우리도 내동댕이쳐졌으니 기다릴 뿐이다. 자신만의 고도를 기다리는 것이 그나마 이 지옥을 견딜 수 있는 무엇이다.

그렇지 않다면 떠날 수밖에. 어디로? 갈 데라고는 존재를 포기하는 길밖에는 없는 상황에서 도대체 어디로 간다는 말인가. 오지 않는 고도를, 오지 않기에 기다려야 하는 것이 존재에게 내려진 형벌인 것이다. 그래서 영악한 사람들은 기다린다. 신의강림을 믿어 의심치 않기에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믿어 의심치 않는 것 외에는 별 뾰족한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기다릴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찾아 떠날 것인가?

고도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고도 같은 존재는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다. 말했듯이 억지 믿음이라도 가지고 기다려야 지옥 같은 세상이든 무미건조한 일상이든 부대끼는 관계 사이에서 제 할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부조리한 세상의 불우한 별을 타고났다 낙담하여 포기하면 너무 졸렬한 인생이 되고 만다. 이제 우리 스스로 고도를 찾을 차례이다. 기다리기 지루하면 기왕지사 찾아 나서면 되는 것이다.

a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배우의 모습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으로 분한 배우의 모습 ⓒ 극단 산울림

<젊은 날의 초상>(이문열) 중의 '나'가 선 대진의 바닷가며 그 여정 중에 보게 된 찬란한 눈꽃의 향연이, 그리하여 예술의 길로 들어서려는 화자의 결심이 고도가 아니면 무엇이고 <삼포 가는 길>(황석영)의 영달이나 백화가 찾아 떠나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그 '삼포'가 고도가 아니면 무엇일까.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공'을 고도라 말해서 시비 걸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방기(放棄)와 나태의 수렁에서 자살을 결심한 주인공이 대진의 바닷가에 이르러 갈매기의 비상을 보고 죽지 않기로 결심한 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에게 갈매기의 비상은 고도였음이 분명하다. 겨울 눈보라를 헤치고 삼포를 가는 영달과 정씨와 백화는 서로 힐난하고 으르렁대지만 그들의 동행은 아픈 상처를 여며주며 아름다운 화해에 이른다.

고향에서 쫓겨나 떠돌이로 작부로 살아야하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산업화를 내세운 자본주의 사회의 총구가 그들을 삶의 진창으로 밀어 넣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건강하다. 고도를 기다리지 않고 찾아 떠나는 그들에게 고도는 오지 않는 누구가 아니라 가면 만날 수 있는 바로 그 누구다. 가족 간의 사랑으로 그 안에서 고도와 함께 사는 난쟁이 가족은 슬플지언정 아프지 않다. 아프고 병든 것은 물질에 목숨 건 자본의 노예들이다. 고도를 찾은 사람들은 말한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 절망은 존재의 끝이 아니라 그 진정한 출발이다"(<젊은 날의 초상> 중에서)

그런 그가 왜 지금은 고도를 잃고 비틀거리는지 안타깝기만 하다. 민음사에서 새로운 번역 오늘의 문체로 <고도를 기다리며>(세계문학전집 43)를 내놓은 것으로 안다. 작가의 탄생 100주기를 맞아 고도를 기다리거나 찾아 떠나거나 독자들의 몫이다. 고도는 오지 않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오고 있는 중이다.

연극 <유령을 기다리며> 소개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과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절묘하게 결합시킨 작품 <유령을 기다리며>가 4월 15일부터 23일까지 국립극장 별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2005년 거창국제연극제 대상 및 연출가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의 햄릿은 극중에서 복수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복종을 하지도 못하는 인물이다.

동시대의 불투명한 전망 속에 자신의 길에 나설 용기를 내지 못하고 주저앉는 젊은이의 초상이다. 재치 있는 언어적 유희와 합창, 마술, 자이브 댄스 등이 구성되어 새로운 부조리극을 연출한다.

유일한 무대 세트인 기하학적인 나무의 전환과 이색적인 의상은 또 하나의 볼거리다.

/ 임흥재

덧붙이는 글 | *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오증자 역/민음사/6000원

* 삼포 가는 길/황석영/창비/8500원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이성과 힘/9000원

* 젊은 날의 초상/이문열/민음사/9000원

덧붙이는 글 * 고도를 기다리며/사무엘 베케트/오증자 역/민음사/6000원

* 삼포 가는 길/황석영/창비/8500원

*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조세희/이성과 힘/9000원

* 젊은 날의 초상/이문열/민음사/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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