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정통무협 단장기 411회

등록 2006.04.17 08:11수정 2006.04.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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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6장 비원(秘苑)의 비영대주(秘影隊主)

두시진에 걸쳐 대주천(大周天)을 하자 그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았다. 창백하던 안색에 처음으로 핏기가 감돌고 있다. 눈을 떴다. 고요하게 가라앉은 깊고 맑은 눈빛이었다.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는 않았다 해도 진기가 제대로 도인(導引)되어 전신 세맥(細脈)까지 막힘이 없는 것을 보면 완전히 회복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 없다는 의미다.


깊은 외상 외에는 대부분 아물고 있었다. 왼쪽 어깨뼈의 이상도 조금 시큰거리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몸을 완벽하게 치유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었다.

"……!"

담천의는 갈인규와 남궁산산을 바라보았다. 이제 더 이상 고맙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다른 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다. 그러다가 옆에 곱게 개어 놓은 상의를 걸쳤다. 이미 밖의 기척이 있는 것을 보니 몇 사람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들어오시오."

담천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천막 입구가 열리며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구양휘를 선두로 광도 등 형제들이 들어왔고, 이어 구효기와 몽화가 모습을 보였다. 마지막으로 우교와 백렴이 조용히 들어와 담천의의 양 옆으로 다가들었다,


"이제야 사람 꼴처럼 보이는구나. 고생 많았다. 두 사람도…."

구양휘는 갈인규의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안도의 기색이 흐르고 있었다.


"별 말씀을… 소제야 편안히 누워있기밖에 더했소? 모두 고생하시었소. 자… 일단 앉으시오."

구양휘가 털썩 자리에 앉으며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은 거야?"

"갈제 솜씨를 몰라 하시는 말씀이오? 오히려 몸이 개운하오."

"그럼 다행이구…. 처음 들어왔을 때는 아예 썩은 고기 다져놓은 것 같더니만…."

담천의는 형제들의 걱정스런 시선을 느끼며 몽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떻소? 지금 상황이?"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공격이 뜸해진 것으로 보아 조만간 대규모 공격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우리와 비교해 상대의 전력은 어느 정도요?"

"확실하게 파악되지는 않았어요. 지금가지 그들은 전면전을 벌이지 않고 있어요. 기습을 하면서 우리의 전력만 약화시키고 있었던 것이죠."

알면서도 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차라리 천마곡에 들어오자마자 그 기세를 몰아 일전을 벌였다면 그 결과가 어찌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천마곡의 입구가 무너짐으로 인해 후발대와의 협조가 끊겼고, 외부와의 연락 역시 끊기는 바람에 당황했던 터라 수비에만 전념했던 것이다.

"지금 본 맹의 상황에서는 다행스러운 일 한 가지와 아주 걱정스런 일 두 가지가 있어요."

"다행스런 일부터 듣는 게 좋겠구려."

"다행스러운 점은 저들이 지금가지 전면에 내세웠던 시검사도와 실혼인들 같은 괴물들이 철혈대에 의해 소진되었다는 점이에요."

몽화의 말대로 그것은 확실히 다행스런 일이었다. 아무리 절정고수들이라 하나 시검사도와 같은 괴물들에게는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도검에 상처를 입기만 한다면 육신이 나무껍질처럼 변해 죽어 가는 부상자들을 본 터. 그것은 죽음보다 더 두려운 일이었다.

"걱정되는 일 두 가지는 무엇이오?"

"먼저 우리가 준비해 온 장비와 식량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에요. 얼마 전 있었던 대규모 혈전에서 화마로 인해 모두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지금도 불에 타다 만 식량으로 연명하는 정도니까요. 식수를 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구요. 이러다간 저들이 전면적으로 공격해 오지 않아도 굶어 죽을 판이에요."

정말 걱정되는 일이었다. 싸움에 있어, 특히 이런 대규모 인원이 움직이는 전투와 같은 싸움에 있어서는 보급이 승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터. 이렇게 갇혀 있다시피 한 그들로서는 절망적인 일이었다.

"두 번째는…?"

"이곳은 외부와 연락이 두절되었다가 겨우 연락이 되기 시작했어요. 헌데 현 중원에 이미 혈풍이 불기 시작했다는 소식이에요. 본 맹에 주력을 끌고 참여했던 크고 작은 문파가 내력을 알 수 없는 자들에 의해 공격을 받고 무너지고 있어요."

순간 담천의의 뇌리에는 천동에서 금색면구의 두 사내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칠로단이라 했고, 오행기가 움직였다고 했다. 그들이다.

"이곳에 있는 분들이 자파의 소식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어요. 천지회마저 그들과 연계해 중원을 접수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모용화천이로군. 천동이야…."

담천의가 나직하게 중얼거리자 몽화와 구효기가 눈빛을 빛냈다. 담천의는 무언가 알고 있다. 허나 그 두 사람은 담천의의 말이 완벽하게 이해되지 않았다. 모용화천이야 그렇다 해도 천동이라니… 비밀에 싸인 천동은 왜 거론하는 것일까? 허나 담천의는 더 이상의 설명 없이 물었다.

"절대구마의 후인들이 직접 공격해 온 적이 있었소?"

"분명하게 그들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최근 들어 감당하기 어려운 고수들이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일 가능성이 농후해요."

"어느 정도요?"

막연한 질문이다. 이 자리에서 이런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일대일로 승부를 결해 보았다면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담천의는 자신의 실태를 깨닫고 계면쩍게 웃었다.

"감당할 수 없는 고수들이 많은 것 같소?"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저들이 피해를 감수하고 전면전을 생각하고 있다면 냉정하게 절망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어요."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말은 무슨 의미요?"

"뭔가 저들에게도 약점이 있어요. 지금까지 저들의 공격은 짧은 시각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어요. 저들 역시 대규모 공격이 더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말이에요. 그것은 저들 역시 뭔가 전면적인 공격을 하면 문제가 발생할 것이란 생각이 들게 했어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니 답답한 일이지만…."

그들 내부에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알리 없다. 정철궁을 제거하고 일거에 휩쓸어버리려던 방백린의 계획이 목에 걸린 가시와 같이 은밀하게 움직이는 섭장천 일행에 의해 저지되고 있음을 몽화가 어찌 알랴!

허나 담천의는 어느 정도 감이 잡혔다. 백결로부터 들은 정보는 이런 때 매우 유익했다. 그는 남궁산산에게 급히 물었다.

"내가 부탁했던 일은 해 놓았는지 모르겠다."

"검은색 천에 흰색으로 하(霞) 자를 써서 걸어놓으라는 것이요?"

"그래…."

그러자 남궁산산보다 몽화가 먼저 대답했다.

"지시하신 대로 망루 꼭대기에 걸어 놓았어요. 헌데 그게 무슨 의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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