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태어난 셋째, 물병 젖꼭지를 물리니...

첫째, 둘째와는 다른 느낌... "내가 엄마가 됐나"

등록 2006.04.18 17:43수정 2006.04.18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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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여태껏 기다려왔던 셋째 아이가 태어났다. 정확히 오늘(18일) 새벽 2시 5분 경에 녀석이 태어난 것이다. 무척이나 예쁘고 귀엽고, 또 사랑스러웠다. 태어날 때는 둘째도 그랬지만 이번에 태어난 셋째 녀석도 꼭 첫째를 빼닮은 것 같았다.


사실 셋째 아이여서 쉽게 태어날 줄 알았다. 첫째보다는 둘째가, 둘째보다는 셋째가 더 쉽게 나온다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기대와는 달리 녀석은 그리 쉽게 나오질 않았다. 무척이나 힘들게 세상에 나왔다.

아내가 분만대기실에서 간호사의 진찰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초음파로 태아의 진통 간격을 재고 있습니다. 평안한 듯하지만 차츰 고통이 길어지는 것을 보자니, 나도 무척이나 초조했습니다. 엄마의 산통과 아빠의 초조는 아이가 태어나는 따뜻한 격려요, 보람이 아닐까 싶네요.
아내가 분만대기실에서 간호사의 진찰을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초음파로 태아의 진통 간격을 재고 있습니다. 평안한 듯하지만 차츰 고통이 길어지는 것을 보자니, 나도 무척이나 초조했습니다. 엄마의 산통과 아빠의 초조는 아이가 태어나는 따뜻한 격려요, 보람이 아닐까 싶네요.권성권
어제(17일) 저녁 9시에 10분 간격으로 진통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9시 30분 경에는 5분 간격으로 진통을 연이어 갔다. 그런데 10시가 돼도, 11시가 돼도 녀석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자궁 문이 활짝 열리지 않아서 그런지 아내도 힘들었고, 곁에서 지켜보던 나도 무척이나 초조했다.

그렇지만 그 기다림 끝에 자궁은 조금씩 넓게 열려갔다. 처음 3cm에서 시작하여 5cm로, 그리고 7cm까지 더욱더 넓게 열렸다. 그리고 12시가 넘고, 새벽 1시가 넘었다. 그 긴 기다림 끝인 새벽 2시 5분 경에 드디어 녀석은 세상에 태어났다. 머리부터 발끝 순서로 자궁에서 쑤욱 빠져 나왔다.

“아드님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여보, 수고했어.”
“아빠, 여기 탯줄을 자르세요,”
“어디요?”
“여기, 이 부분이요.”


탯줄을 자르고 얼마 되지 않아 모든 정리를 마친 후, 곧바로 나와 아내는 녀석을 데리고 아늑한 방으로 갔다. 셋만이 쉴 수 있는 아담한 방이었다. 나는 녀석을 비스듬히 눕히고 아내는 링거를 꽂은 상태로 편하게 쉬도록 했다. 녀석과 아내를 위한 정성어린 불침번이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불안한 게 있었다. 왜 간호사는 녀석의 고개가 아래로 향하게 하고, 발끝이 위로 가게 해서 비스듬히 눕게 하는지, 그것이 염려스러웠다. 잘못하면 한 바퀴 굴러 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셋째 아이의 모습이지요. 이 사진은 180도로 한 바퀴 돌려 놓은 것인데요, 본래는 머리 쪽이 아래로 발쪽이 위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진이지요. 그래서 내 딴엔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던 것이지요. 저렇게 있다가 한 바퀴라도 굴러 버리면 어떨까 하구요.
셋째 아이의 모습이지요. 이 사진은 180도로 한 바퀴 돌려 놓은 것인데요, 본래는 머리 쪽이 아래로 발쪽이 위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사진이지요. 그래서 내 딴엔 무척이나 걱정스러웠던 것이지요. 저렇게 있다가 한 바퀴라도 굴러 버리면 어떨까 하구요.권성권
“왜 이렇게 비스듬히 누워 있도록 하나요?”
“아, 이거요.”
“예. 저렇게 놓다가 굴러버리는 것 아니에요.”
“괜찮아요. 이렇게 두면 속에 있는 이물질이 나올 수 있거든요.”
“아, 그런가요.”



2시간이 지났을 때, 나는 녀석에게 처음으로 물병을 물렸다. 찬물과 따뜻한 물을 섞은 미지근한 물을 녀석의 입에 물렸다. 녀석은 마치 기다려왔다는 듯이, 어찌나 세차게 빨던지 하마터면 공기까지 잔뜩 먹일 뻔했다. 다행히도 녀석이 물을 다 빨고 난 직후에 곧바로 물병 젖꼭지를 빼낼 수 있었다.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말은 아마 이럴 때를 두고 하는 말 같았다.

셋째 녀석이 태어났을 때, 내게 잊히지 않는 일이 있다면 그건 물병 젖꼭지를 빨린 일일 것이다. 내가 물린 젖꼭지를 녀석이 힘차게 빨아줬으니 무엇보다도 그게 감격스러웠던 것이다. 뭐랄까? 엄마 품에서 엄마의 젖꼭지를 입에 물고 평화롭게 젖을 빠는 그런 모습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내 딴엔 녀석이 혹시 내 젖꼭지를 빠는 것은 아닌지 착각할 정도였다.

물론 비몽사몽간에 느낀 착각이었다. 저녁 9시부터 2시 5분까지, 그리고 새벽 4시까지 한숨도 쉬지 못 하고 지켜보며 물린 물병의 젖꼭지였으니 그도 그럴 법했다. 20리터에 불과한 적은 양의 물이었지만, 녀석이 그것을 내 품에서 빠는 동안은 흡사 내가 엄마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첫째 때도 그리고 둘째 때도 느껴보지 못한 셋째 때만 느낀 기분이었다. 그 기분 그대로, 그 마음 그대로 간직하고 첫째와 둘째에게 쏟았던 사랑처럼 앞으로도 꾸준히 그 사랑을 쏟아 부으리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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