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룡문외도 도설경기문화재단
성의 둘레는 5744m, 면적은 130ha로 중국과 일본 등에서 찾아볼 수 없는 평산성(平山城:평지와 산을 이어 쌓은 성의 형태)이다. 군사적 방어 기능과 상업적 기능을 함께 보유하고 있으며 시설의 기능이 가장 과학적이고 실용적인 구조로 되어 있는, 동양 성곽 중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고 한다.
화성은 군사적 목적보다는 정치·경제적 측면과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성을 지은 것이다. 성 자체가 '효' 사상이라는 동양 철학을 담고 있어 문화적 가치 외에 정신적, 철학적 가치를 가지는 성으로 이와 관련된 문화재가 잘 보존되어 있다. 수원화성은 사적 제3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소장 문화재로 팔달문(보물 제402호), 화서문(보물 제403호), 장안문, 공심돈 따위가 있다. 수원화성은 1997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화성을 지은 뒤인 1801년에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가 10권 8책으로 간행되었다. 이 책에는 축성계획, 제도, 법식뿐 아니라 동원된 인력의 인적사항, 재료의 출처 및 용도, 예산 및 임금계산, 시공기계, 재료가공법, 공사일지 등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성곽축성 등 건축사에 큰 발자취를 남기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기록으로서의 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경기도문화재단이 <화성성역의궤(華城城役儀軌)>를 현대인이 쉽게 볼 수 있도록 국역하여 3권의 책으로 펴냈다. 의궤란 무엇인가?
조선시대에는 나라의 큰 행사가 있으면 그 내용을 자세히 기록해서 책으로 펴냈는데 이를 의궤라 한다. 임금이나 왕세자가 결혼할 때 임시로 설치한 가례도감에서 가례 절차를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 임금과 왕비의 국장을 치른 내용을 적은 '국장도감의궤(國葬都監儀軌)', 임금이 직접 농사짓는 친경의식의 절차 및 소요 물품 등에 대한 '친경의궤(親耕儀軌)'와 '사직서의궤(社稷署儀軌)', '보인의궤(寶印儀軌)', '친잠의궤(親蠶儀軌)', '진찬의궤(進饌儀軌)' 따위가 있다.
▲거중기 전도경기문화재단
이번에 펴낸 <화성성역의궤> 첫째 권은 공사 일정, 공사에 종사한 감독관의 인적 사항, 그리고 그림을 곁들여 각 건물과 자재 운반용 기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9권은 공사 수행 중에 오간 공문서와 임금의 명령, 상량식이나 고유식 등 의식, 그리고 공사에 참여한 장인의 이름과 건물별로 들어간 자재 수량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전체 공사비용의 수입과 지출 내역도 꼼꼼히 적혀 있다.
화성성역의궤는 그 내용의 방대함에서 놀라움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자세하고 치밀한 기록 내용으로도 후대 사람들에게 많은 교훈을 남긴다. 의궤의 내용 중에는 건물별로 집 짓는데 들어간 못의 규격과 수량, 못의 단가까지 명시되어 있으며 한 건물을 짓는 데 몇 사람의 장인이 며칠을 일했는지까지 알 수 있도록 했다. 또 공사에 종사한 장인에 대해서도 직종별로 일일이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연 70여만 명의 인원이 동원되었는데 장인은 1800명, 그 중 석수(石手)는 642명, 목수는 335명이 일을 한 것으로 기록되었다. 더불어 공사비용이 80여만 냥, 쌀 1500석, 석재 20만1400덩이, 일반목재 2만6200주, 기와 53만장, 벽돌 69만 5000장이나 들어간 큰공사이다. 공사에는 서양과학 기술이 다양하게 적용되었음도 알 수 있다.
의궤의 작성은 공사 내용을 숨김없이 낱낱이 기록하여 공사 종사자들의 책임 의식을 높이는 일로, 일종의 공사 실명제와도 같은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조선시대의 중요한 건축 용어들이 정리될 수 있었고, 최근 성곽을 복원하는 과정에서도 이 기록은 절대적인 근거 자료가 되었다고 한다. 특히 화성성역의궤는 금속활자로 간행돼 여러 부가 제작되었기 때문에 지금도 국립중앙도서관 등 여러 곳에 인쇄 원본이 소장돼 있다.
이번에 나온 국역본은 세 번째 나온 것으로 1977년 수원시가 국역본을 처음 낸 이후 2001년 재단에서 수정국역본을 펴냈다 절판됨에 따라 이번에 다시 보완, 출판하게 된 증보판이다. 증보판에는 화성전도를 표지 디자인에 응용했고 한영우 서울대 명예교수와 김동욱 경기대교수가 각각 집필한 한국사와 건축사 관련 해제를 수록했으며 각주 및 용어해설, 색인부분 등을 추가해 일반인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구성했다.
▲화성전도 도설경기문화재단
<화성성역의궤>는 발간된 지 100년도 채 안 되어 나라밖에서도 관심을 보였는데 1895년 네델란드에서 프랑스어로 'Ceremonial de L'achevement des Travaux de Hoa Syeng (COREE, 1800)'란 책이 발간되었다. 이것은 14쪽과 작은 도판 39쪽으로 된 작은 책으로 글쓴이는 Henri Chevalier이며, 출판사는 Librairie et
Imprimerie,Leide, Netherland이다.
대부분의 국역서나 해제가 전공자가 아니면 읽기가 어려운 낱말과 문장으로 되어 발간의 의도가 무색해지는 경우를 자주 접한다. 하지만, 이 책은 어려운 전문용어를 친절하게 일상어로 바꾸어 누구든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하여 국역 사업의 전형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부가 사업을 하면서 조선시대처럼 의궤를 작성한다면 나중에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임은 물론 공무원들이나 시공사들의 부정이 개입할 수 없을 것이기에 본받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의 <화성성역의궤> 국역본의 발간은 큰 의의가 있을 것이다.
| | 화성의궤는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책 | | | [인터뷰] 기전문화재연구원 윤한택 전통문화실장 | | | |
| | ▲ 기전문화재연구원 윤한택 전통문화실장. | ⓒ김영조 | | - 어떻게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일을 하게 되었나?
"대학 때는 경제학을 공부했고, 경제사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대학원 진학 때 국사학과를 선택했고, 중세봉건사회의 뿌리까지 캐보자는 생각을 했다. 박사학위는 고려토지제도사로 받았다. 그 뒤 태동고전연구소에서 임창순 선생님께 3년 동안 한문을 공부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자연스럽게 국역하는 데 관심을 가지게 됐다. 나는 20세기까지 서양과학의 중독자였는데 이제 우리 전통문화의 한 복판에 있다는 게 무척 고마울 뿐이다."
- 화성성역의궤를 국역하면서 힘들었거나 기억에 남는 일은?
"기전문화재연구원에 전통문화실이 생긴 뒤 첫 사업이어서 전 구성원들이 온 힘을 쏟았다. 워낙 방대한 책이라 여러 사람이 나눠서 국역을 했는데 절과 목 따위의 편제를 통일하는 것과 용어와 도량형의 국역 등이 가장 어려운 일이었다. 또 이두가 많이 등장하는 책이라 적절한 해석을 하는 것도 어려웠다. 하지만, 끝내고 보니 힘들었다는 생각보다 큰 보람으로 다가온다."
- 조선왕조의 의궤 발간의 의미를 무엇으로 보는가?
"정조임금 때는 임진, 병자 양란 이후 나라를 다시 세우는 시기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것이 중요했고, 그를 위해 중요한 기록은 남겨두어야 했을 것으로 본다. 또 이런 식의 건축보고서는 유례없는 것으로 기록에 쏟은 조선왕조의 정성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 의궤에서 보는 정조의 생각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정조임금 때는 새로운 근대적 움직임이 나타나던 시대였으며, 정조임금의 개혁의지가 강했다. 상대적으로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만만치 않았던 때였다. 이를 실사구시의 관점으로 돌파하려는 정조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나는 정조가 개혁군주이지만 성리학으로 굳어있는 사회분위기를 깨기 위해 적당히 보수세력을 아우르는 슬기로운 정책을 편 임금으로 본다."
- 의궤에서 당대 백성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까?
"의궤는 동원된 무수히 많은 노동력, 물자의 기록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또 성을 지으면서 성터에 있던 집을 철거하는데 그 집 중에는 양반이 살거나 가게인 기와집은 5% 정도뿐이었고, 서민의 집인 초가는 65% 정도, 빈민들의 집이랄 수 있는 흙집(토방)이 30% 가량 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철거할 때 시가보다 더 많이 보상했다는 것이다.
또 수용한 집이나 땅의 소유자 이름을 보면 성과 이름 사이에 노비 '노(奴)'가 들어간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소유자가 원래 노비였는지, 양반이 노비가 된 경우인지, 한양의 부재지주가 마름이름으로 등록했는지 앞으로의 연구 과제로 생각된다." / 김영조 | | | | |
덧붙이는 글 | 시골아이 고향(www.sigoli.com)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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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장>으로 우리문화를 쉽고 재미있게 알리는 글쓰기와 강연을 한다. 전 참교육학부모회 서울동북부지회장, 한겨레신문독자주주모임 서울공동대표, 서울동대문중랑시민회의 공동대표를 지냈다. 전통한복을 올바로 계승한 소량, 고품격의 생활한복을 생산판매하는 '솔아솔아푸르른솔아'의 대표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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