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가 악마 등장시켜 교인 통제하나?

[서평] 제프리 버튼 러셀의 '악의 역사' 제3권 〈루시퍼>

등록 2006.04.21 18:41수정 2006.04.22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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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겉표지.
<루시퍼> 겉표지.르네상스
중세 기독교는 그야말로 혼란의 시기였다. 유대교와 이슬람교의 틈바구니 속에서 나름대로 발돋움하는 시기였다. 그 속에서 정통과 이단의 구별도 모호했고, 그 흐름도 겉잡을 수 없이 다양했다. 성서와 전통이라는 양대 산맥에서 이제는 철학이라는 이성까지 끼어들게 되었다. 그야말로 몸통 하나에 온갖 것들이 달라붙은 형국이었다.

그렇다면 그 당시 '악마'개념은 어땠을까? 보통 '사탄' 이나 '악령'이라고 이름 했던 그 악마를 당시엔 어떻게 규정했을까? 나름대로 신학 사조나 변증 교부들 그리고 성서와 전통에 한 획을 그으며 끼어든 이성까지 가세한 상황임을 감안한다면, '악마'에 대한 개념도 그리 만만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제프리 버튼 러셀이 쓴 '악의 역사' 제3권 〈루시퍼〉(김영범 옮김․르네상스․2006)는 바로 중세 시대에 만연했던 악마에 관한 여러 가지 것들을 이야기해 준다. 그러니까 이 책은 1권인〈데블〉과 2권의〈사탄〉에 이어, 악마의 개념사를 다루는 세 번째 책에 해당하는 것이다.

중세에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가 나름대로 큰 축을 형성하며 발전하는 시기였다. 악마에 대한 견해 차이도 셋 다 분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셋 다 전지전능한 신을 주장하기에, 은연중에 보면 악마에 대한 비슷한 면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이슬람교에서는 알라가 절대적인 신이기에, 악마는 언제나 알라의 허락을 받아야 세상에서 활동할 수 있는 존재로 묘사됐다.

그런데 이슬람보다는 기독교에서의 악마 개념 논의가 좀더 광범위하고 정교했음을 알 수 있다. 기독교에서는 계층이나 조직 면에서 볼 때, 위로부터 뿐만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논의 등이 다양하고 활발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같은 기독교 내에 있는 서방교회와 동방교회를 두고 볼 때에도, 동방교회보다는 서방교회가 훨씬 악마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동방정교회가 악마에 대한 관심을 덜 두었던 까닭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악마에 대한 '무념적인 관념' 때문이다. 이른바 금욕생활을 통한 신비주의를 강조했기 때문에 신학이나 악마에 대한 생각 자체를 거의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른바 '부정의 방법'으로서, 신에 대해 알 수 없음을 강조했던 것이다. 그만큼 이성이나 합리적인 변증이 아닌 묵상과 기도만을 중시했던 것을 엿볼 수 있다.

"스콜라 철학이 출현하기 전에, 기독교 신앙의 양대 기둥은 성서와 전통이었다. 스콜라 철학은 여기에 제3의 기둥인 이성을 더했다. 성서와 전통, 그리고 관찰의 분석적 해석이 그것이다. 그러한 이성에 대한 새로운 강조는 중세 초기 대부분의 특성을 나타내는 전통에 대한 맹목적인 의존으로부터 신학을 자유롭게 함으로써 악마론의 진보를 가능하게 했다." (208쪽)


악마론의 진보, 그것은 서방교회에서 더 급진적으로 일어났던 일들이다. 이슬람교나 동방교회 보다는 서방교회에서 그만큼 악마에 대한 논의와 논쟁이 활발했던 것이다. 그러한 요인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무엇보다도 그것은 이성의 힘으로 일컬어지는 '스콜라 철학'이 가장 큰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그 유명한 안셀무스와 토마스 아퀴나스 등이 대표적인 신학자로 우뚝 서 있다. 철학에 밑바탕을 둔 신학자들이야말로 악마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들을 도출할 수 있었고, 이단 시비에 휘둘릴망정 정말로 자유로운 논쟁의 중심에까지 끌어 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 당시의 예술도 무시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였다. 중세의 연극에서는 항상 '루시퍼'가 지옥의 우두머리에 서 있는 존재로 등장했고, 사탄은 그 하수인 역으로 등장했다. 그 밖에도 초서의〈켄터베리 이야기〉라든지, 단테의〈신곡〉, 그리고 17세기에 영국에서 가장 찬란한 기념비적인 작품을 남겼던 밀턴의〈실락원〉같은 문학작품 속에서도 악마는 빼 놓을 수 없는 단골손님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악마의 개념과 악마의 유형이 여러 갈래로 변형되고 널리 유포될 수 있었던 것은 신부나 목사의 설교를 통한 외침에 있었다. 그 당시 신부나 목사들은 성과 속의 엄격한 구분을 강조했고, 그 때문에 '마녀의 광란'이란 표현 같이 악마의 모습에 여러 가지 살을 붙인 이야기들을 많이 퍼뜨리곤 했다. 그리고 그것은 교우들이나 일반 시민들 사이에 급속도로 빠르게 전해졌던 것이다.

"설교자들은 이처럼 다채롭고 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도덕적인 본보기를 끝도 없이 찾아내었고, 지옥불과 같은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은 죄를 억제하는 데 효과적임을 알게 되었다. 신학자들과는 달리, 설교자들은 극적이고 교훈적인 목적을 위해서 루시퍼의 역할을 크게 과장하였다."(279쪽)

"대중적 설교를 통해 악마에 대한 믿음이 계속적으로 강요되었으며, 초기의 전통들이 사라진 종교에서 악마학이 얼마나 강력한 요소로 남게 되었는가를 대다수의 개신교 설교에서 발견할 수 있다."(358쪽)


오늘날도 악마는 교회에서 화제꺼리 중의 하나이다. 그게 중세의 영향도 없지 않겠지만, 설교자가 악마를 곧잘 등장시켜 교인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 쓰고 있는 게 문제이다. 그래서 설교를 듣는 청중이나 교인들을 좀더 적극적이고, 좀더 신비롭고, 좀더 열성적인 교인들로 만들려고 기를 쓴다.

그러나 그것이 이성을 마비시키는 지경에까지 갈 때가 많아 종종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기도 한다. 신비적이고 광적인 신자로 몰아세우는 게 그것이다. 그 때문에 자칫 이성적인 교인들을 악마의 하수인으로 취급해 버리는 설교자도 적지 않아 크나큰 실수를 저지른다.

그렇기에 중세 때 온갖 흘러넘쳤던 악마 개념을 거울삼는 게 중요할 것이다. 괜히 있지도 않는 악마들의 유형들을 자꾸자꾸 빚어내고 유포시켜, 그것들로 교인들을 통제하고 협박할 게 아니라 그 근원에 무엇이 서 있는지 그 중심을 잡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는 설교자 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청중들의 판단력도 무시 못할 일이다.

루시퍼 - 악의 역사 3, 중세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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