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변호인의 판사실 출입 봉쇄... 한국과 달라"

[인터뷰 전문] 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

등록 2006.04.25 12:51수정 2006.04.26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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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권오곤 유고 전범재판소 재판관은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 to be done)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오곤 유고 전범재판소 재판관은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 to be done)는 것"이라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권오곤 유고 국제전범재판소 재판관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재판의 중요한 내용이 밀실에서, 로비 또는 청탁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면서 "1920년대 영국의 판례에서처럼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 to be done)"고 밝혔다.

부활절 휴가를 맞이해 일시 귀국한 권오곤 재판관은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법정이 아닌 공개되지 않은 자리에서 일방 당사자와 얘기하는 것은 그것이 예우했건 안 했건 간에 '전관예우'를 한 것으로 비치게 한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권 재판관은 또 "유고 전범재판소 건물은 재판부, 검찰, 사무국 직원 및 변호인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자 칩이 내장된 각자의 출입증이 있어 검찰 및 변호인은 판사실에 출입이 아예 봉쇄되어 있다"면서 "우리는 법관 면담절차라는 이름으로 종종 변호사가 판사실에 와서 사건 이야기를 하고 설명하고 사건 기록을 잘 봐달라고 하는데 꼭 만나야 될 사유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 재판관은 특히 18일 이용훈 대법원장을 면담한 데 이어 이날 오후 대법원 4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대법원 사법제도비교연구회(위원장 이규홍 대법관) 회의에 참석해 '국제형사재판과 우리나라 형사재판의 비교법적 고찰'이란 주제 발표를 했다. 5년간 국제형사재판에서 쌓은 그의 경험과 지식이 일부나마 사법개혁에 반영될 수 있을 것으로 보여 주목된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밀로셰비치 체포 이후 유고 전범재판소에 국제적 관심 집중

a 권오곤 재판관과 다른 재판관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 제7장의 규정에 따라 비상 권한에 근거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1993년에 한시적인 국제재판소를 창설한 것이다.

권오곤 재판관과 다른 재판관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 제7장의 규정에 따라 비상 권한에 근거해 전쟁범죄와 반인도적 범죄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1993년에 한시적인 국제재판소를 창설한 것이다.

- 구 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Tribunal for the Former Yugoslavia. ICTY)는 언제, 어떤 배경에서 생긴 것인가.
"'유럽의 화약고'라고 불리던 발칸반도를 유고슬로비아라는 하나의 연방으로 묶어 강력하게 통치하던 티토(Tito)가 1981년 사망하고, 1990년 이후 연방이 해체되는 길을 겪으면서 인종 내지 종교 세력 간에 무력 충돌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소위 인종청소(ethnic cleansing) 내지 집단학살(genocide) 같은 심각한 인권침해 상황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유엔 헌장 제7장의 규정에 따라 세계평화와 안전이 위협받을 때 이를 지키거나 복구하기 위하여 필요한 적절한 조치를 할 수 있는 비상 권한에 근거해 그러한 만행에 책임이 있는 개인을 처벌하기 위해 1993년에 한시적인 국제재판소를 창설한 것이다."

- 그러나 유고 전범재판소가 일반인들에게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전 유고 대통령이 체포된 때문인 것 같다.
"그 뒷배경을 얘기하면, 당시는 아버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난 직후였기 때문에 발칸반도에서 더 이상 무력 개입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전범재판소를 유엔에서 만든 것이다. 그러니 다들 전시(展示)용이고 실효성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었다. 기소된 사람 대부분이 세르비아 등 발칸 반도 내에서는 영웅 대접 받는 사람들이고 잡아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밀로셰비치가 축출되고 그를 잡아오면서 세계의 관심이 쏠리고 재판이 활발하게 진행된 것이다."


- 그런 과정이 영화로 만들어져 소개되기도 했는데.
"영화 두어편이 있었다. 전범재판소라고 하면 흔히 전쟁을 일으킨 범죄를 다루는 걸로 아는데, 전쟁을 일으킨 범죄가 아니라 전쟁을 하면서 지켜야 될 법을 안 지킨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다. 인류가 지금까지 전쟁을 하도 많이 치러서 20세기만 해도 전쟁으로 죽은 사람이 2억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도록 조약 맺어도 소용이 없다. 국제형사재판소(International Criminal Court. ICC)에서 '침략전쟁'에 대해 정의하려고 해도 당사국끼리 그 정의와 관할권 행사 요건이 합의가 안돼 시행을 못하는 형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차선책'으로 생각한 것이, 아주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전쟁을 인간답게 하자고 해서 만든 국제인도법인데, 그 효시가 <손자병법>에 있다고 한다."

- 유고 전범재판소가 2차대전 전범을 다룬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이나 도쿄 군사재판 등 과거의 전범재판소와 다른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가.
"아무래도 유엔에 의해 창설된 첫 전범재판소라는 점이다. 뉘른베르크 재판이나 도쿄 재판의 경우, 승전국의 재판관만이 참여했기 때문에 '승자들의 정의'라고 불렀다. 그런데 유고전범재판소는 유엔총회에서 선발된 재판관이 참여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 그러나 '개인'을 처벌할 뿐 '집단'이나 '국가'에 대한 형벌권이 있는 건 아니죠?
"그렇다. 전통적인 국제법 재판소는 국제사법재판소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 ICJ)이다.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는 기본적으로 국가의 책임을 다룰 뿐이지 강제 관할권이 없다. 예를 들어 독도 영유권을 둘러싸고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재판을 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가 응하지 않으면 강제관할권이 없다.

반면 유고 전범재판소는 책임 있는 개인을 체포해서 무기징역까지 선고하고 징역형 보내고 처벌하니 훨씬 더 실효성과 강제성 있다. 그 때문에 사람들에 따라서는 국제법이 형사화되고 있고, 형사절차에 더 중심이 쏠리고 있다는 얘기를 하기도 한다."

유고 전범재판소의 관할범죄 네 가지

a 권오곤 재판관은 유엔총회에서의 재판관 선출 과정에서 이런 게 바로 국력이란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권오곤 재판관은 유엔총회에서의 재판관 선출 과정에서 이런 게 바로 국력이란 것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 유고 전범재판소의 관할범죄는 어떤 것인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의결한 규정에 의해 관할하는 범죄는 ▲1949년 제네바 협약들의 중대한 위반 ▲전쟁의 법 및 관습 위반 ▲집단 살해(Genocide) ▲인도(人道)에 반하는 죄(Crimes against humanity)의 네 가지이다. 그리고 재판소 명칭대로 91년 이후에 구 유고 슬라비아 영토에서 일어난 전범만 다루는데 그 시한은 종기(終期)가 없었지만 과다한 인력(1200명)과 예산(유엔 예산의 10%) 소요 등으로 유엔이 2010년까지는 모든 재판을 끝낼 수 있도록 하라는 완료계획(completion strategy)을 수립해 시행중이다."

- 개인의 형사책임은 어떤 방식으로 지우는가.
"개인이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범죄에 대한 형사 책임과 이른바 지휘 책임(command responsibility)이라는 게 있는데, 국제형사재판에서 독특하게 중요한 지휘 책임은 뉘른베르크 군사재판에서 처음 생긴 것으로 상급자가 자기 지휘 감독하에 있는 하급자가 범죄를 저지르려는 것을 알면서도 막지 않거나 알면서도 처벌하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람도 처벌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는 국제 형사법에서 굉장히 큰 진전으로 전쟁 책임자, 정치 지도자도 이것에 의해서 처벌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 우리나라도 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때에 수많은 민간인이 당시 신군부에 의해 희생되었는데, 광주민주화운동은 국제재판소에 갈 수 있는 요건이 안되었나.
"당시에는 관할 재판소가 없었다. 상설 국제재판소가 있다든지, 이걸 위한 특별재판소가 생기든지 해야 하는데 관할 재판소가 없었던 것이다. 그밖에 전제 조건이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무력 충돌'이 있어야 하는데, 당시 공수부대가 '민간인'에 대하여, '광범위하거나 조직적인 공격'으로서 살해, 고문, 강간 같은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고 그 지휘 책임자가 알면서도 막지 않았다면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이다."

- 지난 2001년에 처음 재판관에 선출되고 지난해에 다시 재선되었는데 당락의 결정요인이 무엇이었다고 보는가.
"돌이켜보면 아주 운이 좋았다. 업무의 연속성이라는 면에서 유엔 회원국이 투표할 때는 계속 근무한 사람에게 투표하는 게 일반적 관례이고, 나는 늦게 입후보해서 선거운동 기간도 짧았다. 그런데 아시아 쪽에서 후보가 많이 안 나왔다. 우리나라와 중국, 그리고 말레이시아에서 후보가 나왔는데 말레이시아 재판관 후보가 떨어지고 저와 중국 후보가 됐다. 그리고 유엔 주재 한국 외교관들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해준 덕분이다. 그 과정에서 이런 게 바로 국력이란 것을 실감했다."

-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형사재판과 다른 국제형사재판의 특징은 무엇인가.
"예전의 뉘른베르그 군사재판이 '승자의 정의'였다는 반성에서 '공정한 재판'과 절차를 강조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 아닌가 싶다. 공정한 재판의 이념은 유고 전범재판소의 가장 중요한 초석으로서 '재판부는 재판이 공정하도록 보장하여야 한다'는 재판소 규정 제20조는 모든 절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고 있다.

재판절차는 영미법계와 대륙법계의 재판절차를 혼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지만, 주로 영미법계의 대립 당사자주의(adversarial system)를 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피고인의 권리 보호에는 영미법계의 대립 당사자주의가 더 낫다는 이유에서라고 설명되고 있다. 그것이 우리 형사재판과 다른데 그러나 배심원제도는 채택하지 않고 전문 법관에 의하여 사실인정을 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모든 증인은 판사 앞에 나와서 직접 말로 증언해야 하고, 검찰의 신문조서는 예외적으로만 증거로 받아들이고, 검사가 가진 증거는 재판 시작 전에 피고측에 다 보여줘야 한다."

법정은 발칸국가들에 생중계되는 가운데 3개 국어 동시통역

a 유고 전범재판소의 재판정 구조는 방청석, 재판 당사자 사이에는 방탄 유리로 막혀 있다.

유고 전범재판소의 재판정 구조는 방청석, 재판 당사자 사이에는 방탄 유리로 막혀 있다.

- 대륙법 계통인 한국의 형사재판과는 다르고 특히 통·번역에 따른 언어의 한계가 클 것 같은데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재판소의 공식 언어는 영어와 불어이다. 그러나 피고인들은 보스니아·크로아티아·세르비아어(B·C·S)를 사용하기 때문에 법정에서는 최소한 이들 3개 국어가 동시통역되고 있다. 아무래도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니니까 남들보다 말하는 것도 그렇고, 읽는 것도 양이 방대하니 속도가 느리고 그렇다.

처음에 어색했던 것은 재판 도중에 쟁점이 있을 때마다 '히어링'(변론청문)을 하는데, 다른 판사들이 초기인데도 청문에 자주 개입하고 속내를 드러내는 질문도 하는 것이 생경했다. 나는 처음이어서 가만히 있었는데 다음날 <뉴욕타임스>에 재판 기사가 났는데 A재판관과 B재판관은 뭐라고 얘기했는데 한국에서 온 재판관은 아무말도 안했다는 게 기사가 되더라.

그래서 다음날 동료판사에게 물어봤다. 내가 받은 교육에 따르면 영미의 판사는 판결로만 말하고 자기 속을 드러내 보이면 안되는 건데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니, 동료판사가 자기 속을 다 보이면 저 사람들이 결론에 놀라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사람 대답에 따라 생각을 바꾸고 잘못된 것을 고칠 수도 있지 않느냐고 하더라. 그래서 지금은 내가 이해 안되거나 하는 것은 시기 여하를 불문하고 물어보고 있다."

- 재판하는 모습이 생중계된다고 들었다.
"그렇다. 발칸 반도 국가들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예컨대 제1법정에는 7대의 카메라가 설치가 되어 생중계된다. 웹사이트에서도 방송되어 한국에서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다만, 방송은 실제보다 30분 지연 방송을 한다. 증인을 보호하기 위해서이다. 증인을 가명으로 한다든지 이름 안나오도록 조심하는데 잘못해서 이름이 노출되면 삭제해서 방영한다.

재판정 구조는 방청석, 재판 당사자 사이에는 방탄 유리로 막혀 있다. 방청석에서도 직접은 못 듣고 헤드폰을 통해 채널을 맞춰 듣는다. 공식언어가 영어와 불어이고 피고인들이 보스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어를 하고 밀로셰비치 사건에서는 알바니아어까지 4개국어가 통용되었다."

- 국내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대량학살로 재판에 회부된 국가원수에 대한 최초의 재판이라는 점에서 '밀로셰비치 사건'이 가장 유명했는데, 권 재판관이 직접 심리를 맡은 이 사건은 어떻게 종결되었는지.
"지적한 대로 그 사건은 정식으로 재판에 회부된 국가원수에 대한 최초의 재판인데 '유감'스럽게도 피고인이 죽은 바람에 '공소 기각'되었다. 피고인이 죽어 형사재판의 목적이 없어졌으니까. 유고 전범재판소의 재판절차가 사건 개요를 다 파악한 뒤에 검찰 증거와 피고인 반박 증거 다 듣고 나서 서로 반박을 한 번씩 하고 끝나는데 당시는 증인 300명을 다 끝냈고, 피고인측 증인도 100여명을 들었다. 재판부의 예상으로는 2~3달 증거 조사를 더하면 결심을 할 수 있고 판결문은 5, 6개월 걸려서 금년 말에는 쓸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대통령 등 주변국 국가원수도 증인 참석

a 전범재판은 발칸 반도 국가들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제1법정에는 7대의 카메라가 설치가 되어 생중계되고 웹사이트에서도 방송되어 한국에서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전범재판은 발칸 반도 국가들의 관심이 크기 때문에 제1법정에는 7대의 카메라가 설치가 되어 생중계되고 웹사이트에서도 방송되어 한국에서도 인터넷으로 볼 수 있다.


- 주변국 국가원수들도 증인으로 법정에 참석한 것으로 아는데.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 대통령도 증인으로 나왔고, 보스니아·코소보의 총리도 나왔다. 또 클라크 나토(NATO) 총사령관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밖에 피고인 측은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등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요건이 충족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기각했다."

- 밀로셰비치가 그들을 증인 신청한 것은 재판의 시간을 끌기 위해서인가.
"변론은 공소장에 기재된 자기의 범죄에 대해 방어해야 하는 것인데, 밀로셰비치 입장에서는 생방송이 되니까, 그것을 활용하려 했다. 즉 미국이 NATO를 통해 세르비아를 폭격했다, 보스니아-크로아티아 전쟁은 먼저 보스니아-크로아티아가 불법 독립하고 먼저 공격했다는 데 초점을 맞추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클린턴과 블레어를 증인으로 신청한 것이다. 그러나 법률적 관점에서 볼 때는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해서 인정을 안 한 것이다."

- 지난 3월 11일 밀로셰비치가 갑자기 사망해 자살설, 독살설 등이 난무했는데 최종 사망원인은 무엇으로 밝혀졌는지.
"공식적인 최종 사망결과는 아직 안 나왔지만 '자연사'라는 것은 확정이 되었다. 피고인은 '좌심실 비대증'으로 혈압(140-220)이 굉장히 높았다. 언제라도 죽을 수 있는 고혈압 환자였다. 게다가 담배도 많이 피우고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직접 재판준비를 하느라 육체적·심리적 부담이 컸다. 재판부에서 변호사를 선임해주었지만 그는 '존재하지 않는 법원을 위해 왜 변호사를 선임하냐'면서 혼자서 모든 것을 준비했다. 피고인이 아프면 재판을 중단할 수밖에 없는데 협압 상승 등으로 날짜로는 66일, 개월 수로는 서너달을 아파서 재판을 못했다. 그런데도 피고인이 재판 준비하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니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해 재판소가 연기를 안 해줬다.

알다시피 혈압은 약을 규칙적으로 먹으면 관리가 된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하면 혈압약이 피속에 남아야 하는데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의심스러워 사망 직전에 검사를 다시 했는데 나병이나 결핵에 쓰이는 강력한 항생제가 발견되었다. 피고인에게 설명하는 취지로 검사결과를 보냈는데 그 며칠 후에 밀로셰비치가 주(駐)화란 러시아 대사에게 '나는 그런 약을 먹은 적이 없는데 내 피에서 이런 게 발견 됐다고 하니 독살하려고 하는가 보다' 이런 식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독살설'이 나왔는데 공교롭게 며칠 뒤에 밀로셰비치가 죽은 것이다. 죽은 뒤의 피검사에서는 그런 약이 발견되지 않았다. 그래서 심근경색으로 인한 자연사로 죽었다고 발표했다."

- 교도소는 어디에서 누가 관할하는가.
"구속된 피고인은 재판 도중에는 헤이그의 스헤이비닝엔(Scheviningen) 바닷가에 위치한 유엔 구치소에 있게 된다. 이는 유엔에서 네덜란드 교도소의 일부를 빌려 개조한 것으로 외곽경비는 네덜란드 당국이 하지만 내부는 유엔이 직접 관할한다."

- 텔레비전 시청이나 흡연 모두 가능하나.
"그렇다. 책상, 침대, 화장실, 샤워시설을 갖춘 독방에 수용되고, 일과시간 중에는 같은 층에 있는 다른 재소자들과 어울리거나 운동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피고인이 희망하는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부부간의 합방을 위한 방문이 허용되어 교도소 구속기간 중 자식을 낳은 사람이 두 사람 있다. 변호인과의 교통, 접견에는 비밀이 보장된다. 특히 변호인 없이 스스로 방어를 한 밀로셰비치의 경우, 구치소 내에 증인 접견 및 신문 준비를 위한 별도의 사무실까지 제공되었다."

- 구속자 등 현재의 개략적인 재판 진행상황은 어떤가.
"2006년 4월 11일 현재까지의 사건 진행상황을 보면, 총 기소된 인원은 161명으로 그 중 130명이 재판소에 출두했고, 그중 준비절차(pre-trial procedure)가 진행 중에 있는 피고인이 46명, 1심 재판이 진행 중인 피고인이 6명, 2심 재판 진행 중인 피고인이 11명, 유죄 확정된 피고인이 42명, 무죄 확정된 피고인이 5명, 구(舊) 유고슬라비아 국내 법원으로 회부된 피고인이 9명, 그밖에 공소취소 5명, 사망 6명이다. 현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있는 인원은 47명이고, 보석으로 석방 중인 인원은 24명이다."

"재판 중요내용 밀실서 결정된다는 인식 불식시켜야"

- 한국의 형사재판 제도를 국제재판소의 형사재판 제도와 비교해 우리나라 사법개혁에 대한 시사점을 얘기해 달라.
"국제형사법은 그 실체법의 면에서나 절차법의 면에서 아직도 형성 과정중에 있다. 밀로셰비치 재판에 대해서도 영미식 직접주의가 강조되어 재판이 지연되었다는 반성에서 대륙법 제도를 받아들여야 하지 않느냐 하는 논의가 있다. 이에 비추어 우리나라 형사재판제도는 완전 대륙식도 아니고 영미법 요소를 많이 받아들인 효율성 있는 좋은 제도다.

그러나 이처럼 외형적으로 좋은 제도를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인 나머지 공정한 재판을 위한 무죄추정의 원칙, 판사의 독립성과 공평성, 무기 대응의 원칙(equality of arms) 등을 제대로 실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특히 공정한 재판 및 피고인의 권리 보호에 관하여 국제적으로 널리 인정되고 있는 기준에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 이러한 부분을 국제적 기준에 합당하게 개혁하는 것이 한국 형사사법 선진화의 전제조건이 될 것이다."

-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해 달라.
"이를테면 무죄추정의 원칙만 봐도, 지금은 잘 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피의자-피고인의 묵비권에 인색하고 자백 안 한다고 잠 안 재우고 추궁하고 변호사 접견권을 귀찮아 한다. 또 재판 전의 미결 구금, 구속 수사, 구속 재판 등을 사실상의 처벌로 본다든지, 도망갈 우려가 없으면 보석해주는 것인데 보석을 하면 왜 범죄인을 풀어주느냐는 의식이 남아 있다.

또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본다면 피고인이 유죄 판결을 받게 되면 왜 유죄인지를 알아야 하고, 항소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우리는 무죄 판결은 (이유를) 자세히 쓰지만 유죄 판결은 간단해서 피고측의 증거는 왜 안받아들였는지, 또 예를 들어 양형이 왜 5년이고, 집행유예가 왜 안되고, 보석 결정은 왜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해서는 서술 안한다. 이런 점도 개선해야 한다.

무기 대등의 원칙은 공정한 재판 이념의 구체적인 표현으로, 피고인이 검찰과의 관계에 있어서 절차상으로 심각하게 불리한 위치에 처해져서는 안된다는 개념이다. 피고는 자기에 대한 혐의와 증거가 어떻다는 것을 미리 알 권리가 있지만, 검찰은 재판 직전에 보여주면서 그것이 '공판 중심주의'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법원과의 관계에서 적용되는 것이지 피고와의 관계에서는 재판 전에 다 주는 것이 검찰의 기본적 의무이자 피고의 권리이다."

- 유고 전범재판소에서 재판의 공평성은 어떻게 구현되나.
"유고 전범재판소 건물은 재판부, 검찰, 사무국 직원 및 변호인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전자 칩이 내장된 각자의 출입증이 있어 검찰 및 변호인은 판사실에의 출입이 아예 봉쇄되어 있다. 우리는 법관 면담절차라는 이름으로 종종 변호사가 판사실에 와서 사건 이야기를 하고 설명하고 사건 기록을 잘 봐달라고 하는데 꼭 만나야 될 사유가 있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법정이 아닌 공개되지 않은 자리에서 일방 당사자랑 얘기하는 것은 그것이 예우했건 안했건간에 '전관예우' 한 것으로 비치게 한다. 재판의 중요한 내용이 밀실에서, 로비 또는 청탁에 의해 결정되고 있다는 일반의 인식을 불식시킬 수 있어야 한다. 1920년대 영국의 판례에서처럼 '정의는 행해져야 할 뿐만 아니라 행해지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Justice must not only be done but also be seen to be done)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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