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조문익님이 썼던 글을 옮겨 적은 추모 휘장전희식
내가 비운 깡통맥주가 맥없이 쭈그러져 대형 비닐봉투로 들어갔다. 음식을 진열했던 밥상위의 비닐보가 쉴 새 없이 남은 음식물과 함께 뭉뚱그려져서 쓰레기봉투로 직행했다. 삶에 바빠 죽음을 모르고 사는 내 무지와 어리석음이 보였다. 한 사람의 죽음에 저토록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내는 꼴을 보고 조문익은 입을 다물 사람이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종이쪽지를 꺼내 내 유언장을 만들어봤다. 죽음을 준비 할 시간이 조문익에게 있었다면 분명 이런 식의 장례식장은 해당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눈깔 하나 콩팥 하나도 그냥 불태우지 말고 그것이 없어 절망하는 이들에게 고이 넘겨달라고 썼다. 사는 동안 간 한 조각 창자 한 토막도 함부로 막 쓸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내 장례에 대해서도 썼다.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말고 1년 기일에나 그때도 나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으면 모일 수 있도록 썼다.
조문익의 목숨을 앗아 간 제설차가 떠올랐다. 눈 덮인 도로의 안전을 위해 나선 제설차가, 도로의 평화와 생명을 위해 나섰던 그 자동차가 도리어 조문익을 죽였다는 사실은 생각 할수록 그런 이율배반이 없었다.
조문익의 죽음에서 나는 <길 위의 생명평화 - '이름 있는 자동차'>를 생각했다. 그때의 생각을 가다듬어 카페를 만들었다. '다음'에 만든 카페는 '이름있는자동차'다. 이와 관련된 글은 이곳 <오마이뉴스>에도 쓴 적이 있다.
49재. 임종의 순간 최초의 투명한 빛에 이끌려 이 세상과 저세상의 틈새인 '바르도'(중음)의 세계에서 일곱 개의 등급 각각의 일곱 단계를 거쳐 조문익은 새 생명으로 세상에 날 것이다. 그 조문익은 세상 만물이다. 조문익을 우리 다시 죽일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유언장과 '이름있는자동차'운동을 통해 생전의 조문익처럼 세상과 인민을 위로하고자한다.
덧붙이는 글 | <열린전북> 3월호에 실린 20매의 원고를 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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