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 깜짝 놀라게 한 공부하는 워킹맘

[워킹맘 프로젝트] 박사과정 밟는 엄마의 육아일기

등록 2006.04.27 11:55수정 2006.04.27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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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일·공부·아이돌보랴 하루가 빠듯…스스로에 “힘내자” 주문 걸어
하고픈 일 성취욕 대단 자신감 쑥쑥…“가족 모두 자랑스러워하죠”



오화영(39)씨는 딸 세연(7)이와 직장인 남편과 함께 단란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워킹맘이다.
현재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 대학에서 사회학과 여성학 강의를 하고 있다. 결혼 후 32세에 박사과정을 시작해 7년째 육아와 공부를 병행중에 있다.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딸과함께.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딸과함께.우먼타임스
올해 서른아홉, 결혼 11년차 주부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파트타임 주부, 파트타임 엄마, 파트타임 학생, 파트타임 선생(대학 강사)이다.

전공은 사회학. 여자가 인문학도 아니고 사회과학을, 그것도 박사과정을 한다고 하니 주위에서는 대단하다고들 한다. 그러나 인생의 동반자인 남편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마치 자신의 헌신과 희생 덕이라는 듯 자찬이 굉장하다. 오늘 아침에도 “내가 꾹 참고 사는 거 알지? 어디 논문 끝나면 보자구~”라며 한마디 하고 나갔다.

다 큰 딸아이를 보면 갓난아기를 옆에 끼고 어떻게 박사과정을 수료했나 싶다.
나이 서른 넘어 겁도 없이 시작한 박사과정. 결혼 5년 만에 얻은 귀한 딸 때문에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잠시였다.

요즘 어머니들, 절대로 손자 안 본다고 하지만 “애 봐줄 테니 걱정 말고 공부해라” 하시는 시어머니의 배려와 근처에 사는 친정언니한테 빌붙어, 매일 나가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일주일에 세 번 학교 수업만 겨우 받으러 나갔다.

수업 받는 3시간, 등하교 시간 2시간, 하루 5시간 동안의 외출이었으나 그 외출을 위해 집에서 해놓고 가야 될 일은 너무너무 많았다. 연못 위에 우아한 자태로 떠 있기 위해 물 밑에서는 안간힘을 쓰는 백조를 생각하면 될 것이다.


시어머니가 오시니 집안 정리정돈은 기본이다. “며느리가 공부한다고 청소도 안하고 집안 엉망으로 해놓고 밖에 나갔다”고 하실까봐 미리 조바심이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어머님 점심은 물론 저녁식사 준비까지 했고, 아이 먹을 간식도 챙겨놓아야 했다. 아이 일과표와 주의사항도 꼼꼼하게 적어 놓았고.

무엇보다도 학생으로서 가장 힘들었던 건 공부할 시간이 ‘절대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아이가 깨어 있을 때는 책을 들여다보거나 컴퓨터 작업을 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평소 새벽형 인간이라 자부하던 나는 딸아이 옆에 누워 일찍부터 잠자리에 들고 새벽에 일어나 책을 보는 방법을 선택했다. 그러나 너무 일찍 선잠에서 깬 날은 하루 종일 머리가 멍했고 젖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그러던 중 나처럼 애 키우며 공부하는 남자 선배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하루 주어진 24시간을 온전히 자신만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미혼 후배들을 무척이나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선배는 아내가 살림하며 직장 다니고, 본인은 애들만 챙기면 된다고 했다.

난 애 키우면서, 공부하고, 살림까지 더불어 맡아야 되는 입장이다 보니 어깨가 훨씬 더 무겁다는 결론이었다. 게다가 일찍 잠자리에 든 아이가 옆이 허전해서인지 자다가 나를 따라 나오면 그날은 완전히 공치는 날이었다. 한번 깬 잠이 다시 올 리 만무한 아이는 내 옆에서 뒹굴면서 놀다 어린이집에 가서는 점심시간 전부터 꾸벅꾸벅 졸았던 적이 여러 번이다. 요즘도 가끔 새벽에 일어나 바쁜 내 옆에서 “심심해”를 연발하고 있다. 같이 놀아주지 못하는 미안함이란...

공부하는 엄마에 대해 주변에서는 흔히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 하나는 “참 대단하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애가 너무 불쌍하다”는 반응이다. 친정에서는 내가 공부하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이가 너무 일찍 사회생활에 노출되어 있다고 모일 때마다 성토를 한다.

아이는 만 23개월부터 집 근처 어린이집에 5년째 다니고 있다. “5년째 같은 곳을 다니면 얼마나 지겹겠냐”며 “교육 차원에서 유치원을 보내봐라” 혹은 “너 방학 때니까 어린이집 보내지 말고 애 좀 집에 데리고 있거라” 하는 반응이다.

이것은 방학 때 집에 있어도 절대 애를 볼 수 없는, 학생이자 선생이라는 엄연한 내 사회적 위치를 잊어버리고 하는 발언들이다.

게다가 벌써부터 주변에서는 걱정들이 대단하다. 내년에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면 어떻게 할 거냐고.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박사과정 한 학기를 마치고 출산을 한 뒤 다시 복학해서 여기까지 오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래도 왔다. 물론 주변의 시선도 곱지만은 않았고 상황이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말하고 싶은 건 “미리 겁내지 말라”는 것이다.

닥치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한쪽 문이 잠겨 있을 때는 다른 문이 열려 있다는 것. 단, 열려 있는 통로를 찾는 것은 분명 자신의 몫이다.

고맙게도 딸아이는 엄마가 다른 엄마들과 달리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러워 한다. 엄마를 자랑스러워 하는 딸을 두었다는 것, 그것이 요즘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오화영(여성학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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