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영장 청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판도라의 상자, 현대차 비자금

등록 2006.04.28 09:45수정 2006.04.28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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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심각한 현대·기아차...  27일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 검찰이 정몽구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현대·기아차 본사 직원들이 TV 앞으로 몰려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심각한 현대·기아차... 27일 현대차그룹 비자금 사건과 관련, 검찰이 정몽구 회장에 대해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가운데 현대·기아차 본사 직원들이 TV 앞으로 몰려 방송을 지켜보고 있다. ⓒ 연합뉴스 성연재

뇌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에 대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핵폭탄급 보도가 나오고 있다. 1천억 원이 넘는 비자금의 용처와 관련된 보도다.

<조선일보>는 현대차가 2002년 대선 때 비자금 200억 원을 집중 지출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동아일보>는 현대차가 노조 관리비로 비자금 500억 원을 썼다는 관련자 진술을 검찰이 확보했다고 전했다.

뇌관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강도 차이가 있다. <동아일보>의 보도는 '전언'이다. "알려졌다"로 기사 문장을 끝맺고 있다. 그래서 확인이 필요하다. 더구나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내용이다. 검찰이 캐낸 현대차 비자금은 지난 5년간 조성한 것이다. 환산하면 매년 100억 원을 노조 관리비로 썼다는 얘기다. 상식선에서 받아들이기엔 액수가 너무 크다.

<동아일보>가 전한 노조 관리비 내역은 격려비와 회식비다. 주지육림식 회식을 하지 않는 이상, 뇌물성 격려를 하지 않는 이상 매달 10억 원 가량을 노조 관리비로 쓴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

그래도 여지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노조 관리비가 500억 원이 아니라 50억, 5억 원이라 해도 노조의 도덕성은 훼손된다. 검찰의 2단계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동아일보> 보도보다 더 큰 관심을 끄는 건 <조선일보> 보도다. 상당히 구체적이다. 다른 신문이 '1천억 원이 넘는 비자금', '3천억 원 가량의 회사 손실'을 보도할 때 <조선일보>는 '1300억 원 비자금'과 '3900억 원의 회사 손실'이라고 보도했다. 액수가 구체적이다.


그뿐이 아니다. 글로비스의 연도별 비밀금고 입출금 내역과 현대차 본사의 연도별 비자금 내역을 표로 만들어 제시했다. 검찰의 구속영장에 상당히 근접했다는 얘기다.

충격적인 건 <조선일보>의 이런 발 빠른 취재력이 아니다. 그런 취재 결과 내놓은 보도내용이다. 요약하면 이렇다.


현대차는 2002년 대선 직전 약 200억 원의 비자금을 집중 집행했다. 9월 24일 21억 원, 10월 22일 31억 원, 11월 11일 52억 원이 글로비스 비밀 금고에서 빠져나갔고, 12월 12일에도 20억 원이 인출됐다. 이렇게 2002년 9월부터 12월까지 약 170억 원이 집행됐고 8월분 집행액까지 합치면 200억 원 가량 된다. 아울러 2002년 지방선거 직전에도 60억 원이 집행됐다.

'나머지 100억'은 어디갔을까

<조선일보>가 이 보도를 통해 제기하고자 하는 건 '나머지 100억 원'이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에서 밝혀진 현대차 불법대선자금은 106억6천만 원, 차떼기로 한나라당에 100억 원을 제공했고, 노무현 캠프에 6억6천만 원을 제공한 사실이 밝혀졌다(재판과정에서 현대차 임직원 명의로 15억 원 가량의 돈이 더 전달된 사실이 나왔지만 논외로 하자). 하지만 2002년 8월부터 12월까지 집행된 비자금은 약 200억 원이다. 그럼 100억 원은 어디로 갔을까? 이게 문제라는 것이다.

더 있다. 2004년 대선자금 수사 결과 밝혀낸 '차떼기 100억 원'은 현대캐피탈 지하금고에 보관돼 있던 돈이다. 하지만 <조선일보>가 보도한 비자금은 글로비스 비밀 금고에 있던 돈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2002년 대선 때 집행한 비자금이 '약 200억 원'이 아니라 '최소한 300억 원'이 될 수도 있다.

검찰의 2단계 수사 결과에 따라 엄청난 폭풍이 불 수 있다. 거의 '쓰나미급'이 될 것이다. <조선일보>는 "검찰이 정 회장이나 정의선 기아차 사장, 그리고 현대차그룹 임원들에 대한 수사에서 '비자금 용처를 대라'고 계속 추궁했다는 것은 앞으로 수사 방향과 관련한 의미 있는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했다. 검찰의 용처 추궁 의지가 세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의지와 성과는 별개일 수 있다. 차떼기 수법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비자금은 현금으로 전달됐을 것이다. 관련자 진술 외에 검찰이 다른 방법으로 용처를 캐낼 방법은 거의 없다. 핵심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정 회장, 그리고 2004년 대선자금 수사 결과 정 회장 대신 법정에 선 김동진 부회장 정도일 것이다. 이들이 과연 순순히 고백할까?

'약 200억 원' 또는 '최소한 300억 원'의 용처가 정말로 정치권이라면 '후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돈의 상당 부분이 한나라당이 아니라 '노무현 캠프'로 전달됐다면 고백의 부담은 더 클 것이다. 한나라당으로 흘러갔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대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만약'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 회장이 검찰과 흥정을 할 이유도 거의 없다. 어떻게든 구속영장 청구는 막으려 했지만 불발로 그쳐버렸다. 상황이 이 지경에까지 왔다면 마지막 남은 것 하나, 바로 회사의 장래라도 챙겨야 한다. 이렇게 보면 정 회장의 '우선협상대상자'는 검찰이 아니라 정치권과 고위 경제관료들이다.

정몽구 회장의 '입'과 시험대 오른 검찰

a 입이 열릴까... 지난 25일 새벽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조사를 마친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귀가하고 있다.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금, 관심의 초점은 비자금 사용처로 옮겨가고 있다.

입이 열릴까... 지난 25일 새벽 대검찰청 중수부에서 조사를 마친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이 귀가하고 있다.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지금, 관심의 초점은 비자금 사용처로 옮겨가고 있다. ⓒ 연합뉴스 전수영

정 회장이야 '묵언고행'으로 일관하면 부담을 피해갈 수 있지만 검찰은 그렇지 않다. 재계의 빗발치는 선처 호소에도 불구하고 '사법 정의'를 실현했다. 이전 재벌 수사에 견줘보면 대단한 성과라 할 만하다.

이 여세를 이어가야 한다. 그러려면 마무리를 잘 해야 한다. 비자금의 용처를 낱낱이 밝혀야 한다. 지방선거를 의식해 용처 수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내용 조절이다. 이럴 경우엔 '1차 사법 정의' 구현의 성과마저 바랜다.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이 아무리 수사 의지를 갈고 닦아도 정 회장이 '묵언고행'으로 일관하면 뾰족수가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의도적인 연출로 평가돼 비판 받을 수도 있다.

완충 장치로 로비 실상을 적나라하게 캐는 방법을 쓸 수 있다. 그래서 애초에 제기됐던 전·현직 고위 경제관료를 단죄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여의치 않아 보인다.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김재록씨다. 하지만 김씨는 열쇠를 내밀기는커녕 입에 자물쇠를 채웠다고 한다.

검찰은 이제야 시험대에 섰다. 정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평가는 그래서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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