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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4월 29일 청와대 관저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조찬회동에서 한나라당 이재오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창기
확인되는 게 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의 사학법 갈등이 던져주는 힌트다. 두 가지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 진심으로 안정적 국정운영을 원한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에 사학법 양보를 권고하면서 "부동산마저 흔들릴 수 없다"는 절박감을 토로한 걸 보면 안다.
'내일'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패한다면 정국주도권은 한나라당에 넘어간다. 게다가 6월에 국회가 하반기 원 구성을 하게 된다. 최소한 5월과 6월을 허송세월해야 할 판이다.
둘째, 노 대통령은 안정적 국정운영을 원하지만 조건은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의 국정운영력은 여당의 지원에서 나온다. 하지만 여당의 지지율은 극히 낮다. 게다가 종종 청와대와 각을 세워왔다. 이번에도 대통령의 간곡한 권유를 딱 잘랐다.
노 대통령은 어떻게 해야 할까? 사학법도 있지만 한·미 FTA도 있고 양극화해소도 있다. 집권 하반기 주요 국정과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여당의 강력한 지원을 기대할 상황이 못 된다면 거리를 두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보면 노 대통령의 사학법 권고 장면 중에서 풀리지 않던 대목 하나가 해소된다. 왜 공개리에 양보를 권고했는가 하는 의문이다.
노 대통령의 권고는 여당을 향한 것이었다. 메시지가 이것이었다면 굳이 한나라당 원내대표까지 청와대로 부를 필요가 없었다. 여당 지도부와 직접 소통하는 게 메시지 전달력이나 압박의 효과 면에서 더 나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공개 석상을 택했고, 결과적으로 딱지 맞는 걸 자청했다.
경우의 수 #1 '짜고 치는 고스톱'
일부 언론은 '짜고 치는 고스톱'을 의심한다. 노 대통령이 양보를 권유하면 열린우리당이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당의 개혁 이미지를 국민에게 각인시키고 이를 지방선거 표로 연결한다는 계산을 했다는 것이다.
반론이 있다. <중앙일보>는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뒤통수를 쳤다고 보도했다. 사학법 문제가 풀리지 않자 노 대통령이 야당을 설득하기로 '작전'을 짰고, 그래서 지난 주 토요일에 회동을 했지만 노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야당이 아니라 여당을 설득했다는 것이다. 현재로선 확인되지 않은 보도이기에 신중을 기해 읽을 필요가 있다.
이건 분명하다.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짜고 치는 고스톱' 판을 벌였다 해서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이런 판단은 열린우리당의 저조한 지지율이 일시적 현상에 불과하고, 따라서 열린우리당의 정책행보에 따라 언제든지 지지율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전제를 깔아야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사학법은 '집토끼'마저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의 소산이지 '산토끼'를 잡기 위한 진군이 아니다.
달리 봐야 한다. 징검다리는 '레임덕'이다. 상당수 언론이 노 대통령의 레임덕을 전망했다. 사학법 권고를 계기로 노 대통령의 레임덕이 더욱 가속화하고 결국 탈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반적인 분석이다. 사학법 권고라는 새 요소가 추가됐을 뿐 이미 오래 전부터 거론돼 온 분석이다.
조금만 틀어보자. 대다수가 전망한 것처럼 열린우리당이 지방선거에서 패한다면 불똥이 청와대로 튈 것은 자명하다. 가만히 앉아 기다려도 당·청간의 끈은 느슨해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끊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왜 노 대통령은 사학법 양보를 권고해 화를 자초한 걸까?
이 질문은 제2차 질문으로 이어진다. 노 대통령이 탈당을 할 경우 그 탈당의 성격은 뭔가?
레임덕 이후의 탈당 시나리오가 뜻하는 건 '마지못한 탈당'이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경우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좀 다르다. 밀려서 탈당하는 게 아니라 자청해서 탈당하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공세에 못 이겨 탈당하는 모습을 띠더라도 성격이 좀 다르다. 열린우리당의 공세거리를 자진해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 #2 '계산된 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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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 대통령 관저 인수문 앞을 걸어나오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과 김한길 열린우리당 원내대표, 이재오 한나라당 원내대표. 이들은 인수문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그래서 '계산된 탈당'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관심사는 '계산'의 함수다. 노 대통령이 탈당 후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꾸고 있을 수도 있다.
한 때 유력하게 점쳐졌던 시나리오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가능성이 약화되고 있다. 노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꾼다면 열린우리당의 분화를 촉발해야 한다. 당에 논란과 갈등거리를 던져주되 양론 모두 일정하게 정당성을 갖는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하지만 아니다. 사학법 권고만 놓고 보자.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에 '아니오'라고 대답한 의원들 중에는 이른바 친노 직계로 불리는 의원들도 포함돼 있다. 노사모 대표 또한 사학법 재개정은 안 된다고 일찌감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열린우리당이 너나 할 것 없이 사학법 양보 불가를 천명한 이유는 자명하다. 한 의원의 말대로 "집토끼마저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의 실상은 이렇다.
이런 상황은 또 하나의 부정 근거를 낳는다. 노 대통령이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꿈꾼다면 개혁 여론을 거스를 수 없다. 오히려 여론을 타면서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명분을 축적하는 게 맞다. 그런데도 노 대통령은 거꾸로 가고 있다.
그래서 탈당 후 독자적 정치세력화의 가능성을 점치는 건 쉽지 않다. 그럼 뭘까?
경우의 수 #3 '장렬한 퇴장'
배제할 수 없는 '계산'이 하나 더 있다. '장렬한 퇴장'이다. 가정해 보자. 노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의 지방선거 패배를 기정사실로 간주하고 있다면?
노 대통령이 챙길 수 있는 건 국정과 대선이다. 문제는 주요 국정과제가 중산층·서민과 각을 세울 여지가 다분한 것이라는 점이다. 한·미 FTA의 여파가 중산층과 서민에 직접 미친다는 건 공지의 사실이다. 양극화 해소의 경우 얼핏 봐선 서민을 위한 정책 같지만 방향이 이상하게 잡힐 수 있다. 얼마 전의 세금 논쟁이 그 예다.
그렇다고 주요 국정과제를 추진하지 않을 수도 없다. 걱정거리는 그것이 대선에 미칠 여파다.
방법이 있다. 노 대통령이 '총대'를 메는 것이다. 여야를 넘나들면서 주요 국정과제를 직접 챙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열린우리당과 각을 세운다. 이렇게 되면 부담은 노대통령이 더 크게 짊어진다. 비판 여론을 '반노'로 집중시킴으로써 '반열린우리당'으로 확산되는 걸 차단할 수 있다.
사학법 재개정 비난여론이 김한길 원내대표 등 열린우리당 원내 지도부에 쏠리다가 노 대통령의 양보 권고 한마디에 청와대 비판으로 옮아간 경우를 봐도 그렇다. 덕분에 열린우리당은 사학법 수호 정당이 됐다.
물론 '반노'와 '반열린우리당'이 현실 정치에서 명확히 구분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두 정서가 혼재돼 '반여'를 형성한다. 그러나 이건 평상시의 얘기다. 정국이 대선 국면으로 전환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노 대통령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력 대선주자가 나타날 경우 여권은 두 개의 실체를 가진 집단이 된다. 바로 이때 노 대통령이 '반노' 정서를 모두 끌어안고 장렬히 퇴장한다면 여권의 실체는 '새로운 하나'가 된다.
노 대통령이 이런 '계산'을 하고 있다면 탈당 시점은 뒤로 미뤄질 것이다. 유력 대선주자가 나오지도 않은 상태에서 그렇게 하는 건 소득이 별로 없다. 수정란이 병아리가 되어 알 껍질을 깰 때까지 기다리는 게 좋다. '장렬한 퇴장'은 노 대통령 스스로 알 껍질이 될 때 가장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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