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리사건, 흐지부지되는가?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 앞길이 어둡다

등록 2006.05.02 10:00수정 2006.05.0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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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앞 검찰 깃발.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앞 검찰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정상명 검찰총장이 말했다. "지방선거가 끝나기 전까지 국가경제와 선거에 영향을 미칠 만한 대형 경제사건에 대한 기획수사를 자제하라."

무슨 말일까? 좀 더 들어보자. "현대차 수사로 인해 우리 경제에 상당한 충격이 있을 것이라는 걱정과 수사가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것이라는 염려가 일부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정총장이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수사상 시급을 요하거나 사안이 중차대한 것을 제외하고는 선거를 마칠 때까지 기획수사를 자제하는 게 바람직하다."

있을 법한 얘기다. 정 총장 스스로 말한 것처럼 유가와 환율 등 경제 외적환경이 갈수록 나빠지는 상황에서 굳이 경제계를 들쑤실 필요가 있겠느냐는 주장은 옳고 그름을 떠나 현실적이다. 주장엔 굳이 토를 달지 말자. 하나만 빼고….

검찰 수사, 자제가 아니라 자포자기해야할 판

그럼 이미 불거진 사안은 어떻게 할 것인가? 현대차 비리사건 말이다. 범위를 좀 더 좁히자. 현대차 비리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포착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의혹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것마저 수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얘기인가?

그럴 가능성이 적지 않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공소시효가 3년이다. 현대차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 글로비스 비자금 200억원이 집중 집행된 시점은 2002년 8월부터 12월까지이니까 지난해 말로 공소시효는 끝났다. 검찰이 자제를 하고 말고 할 여지도 없다. 자제가 아니라 자포자기해야 할 상황이다.


물론 검찰은 아니라고 말한다. 채동욱 대검 수사기획관은 "공소시효가 지났는지는 비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조사한 뒤 판단할 문제"라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정치인들을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했다.

그게 정말 가능할까? <조선일보>가 지난달 28일 상세히 보도한 글로비스 비자금의 집행내역은 구속영장에 기재돼 있던 내용이다. 검찰 스스로 구속영장이 유출됐음을 시인했다. 따라서 <조선일보>가 보도한 내역은 검찰이 지금까지 확보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이다. 그 결과는 2002년 달력을 가리키고 있다. "비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좀 더 면밀히 조사하는 건 검찰의 권한이자 의무이지만 대세는 이미 잡혔다.


정치인들을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철저히 수사하겠다는 방침도 검찰의 일방적 의지로 끝날 공산이 크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면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정치인들을 피의자 신분으로 부를 수 없다. 잘 해야 참고인 신분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정치인의 검찰 출두를 강제할 권한이 없다. 참고인에 대해서도 구인장을 발부할 수는 있지만 한계는 뚜렷하다. 불러도 어차피 '참고 사항'을 듣는 데 그칠 뿐이다.

이왕 얘기가 나왔으니까 '참고 사항' 하나만 전달하자. 검찰은 X파일로 불거진 삼성의 불법 정치자금 전달 의혹에 대해 무혐의 처리하면서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공소시효 만료를 들었다. 그래서였는지 삼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하지 않았고, 이건희 회장에 대해서는 서면 조사 한 번 하고 조사를 마무리했다.

이랬던 검찰이 공소시효와 무관하게 불법 정치자금 내역을 캐겠다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너무 삐딱해질 필요는 없다. 삼성은 삼성이고, 현대차는 현대차다. 현재는 진보한 과거일 수 있다. 검찰의 태도가 진일보했다고 볼 수도 있다.

a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특정경제범죄처벌법상 횡령ㆍ배임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지난달 28일 밤 대검찰청을 나서면서 기자들의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은 채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대형 경제사건'일까

검찰이 단행한 글로비스와 현대차 본사에 대한 압수수색에서 어떤 자료가 확보됐는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건 없다. 혹여 현대차 문서더미에 불법 정치자금 목록이 끼어 있었다면 공소시효와는 무관하게 진실을 밝힐 수 있다.

그래서 일말의 기대를 가져보지만 정 총장의 말이 무겁게 다가온다. 정 총장이 "지방선거 전까지"라는 시한을 정해 수사 자제를 당부한 "대형 경제사건"에 불법 정치자금 수수는 포함될까, 안 될까? 불법 정치자금을 준 당사자가 재계라면 이 또한 "대형 경제사건"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정 총장이 '예외'로 인정한 경우, 즉 "수사상 시급을 요하거나 사안이 중차대한 것"은 지방선거 전이라도 얼마든지 수사할 수 있다. 하지만 공소시효가 만료된 것이라면 시급하지도, 중차대하지도 않다고 주장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다.

정 총장의 말 외에도 검찰의 진실 공표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더 있다. 공소시효가 만료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공표할 수 있을까?

그럴 경우 정치권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사법처리와는 무관한 불법 정치자금 수수 사건을 공표하는 행위는 정치 개입이라는 역공에 검찰이 휘말릴 공산이 매우 크다. 더구나 그 시점이 '지방선거 이후'라면 정치권이 대선 체제로 전환하는 시점이다.

이래저래 검찰의 불법 정치자금 수사 전도는 밝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현대차 비리사건에 대한 언론 보도는 작아질 것이고, 그에 비례해서 국민의 관심도 줄어들 것이다. 그렇게 시류를 타고 가다보면 불법 정치자금 수수 의혹도 수평선 너머로 사라질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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