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복숭아 와인 맛은 어떨까?

[2주간의 터키여행] 아기자기한 시린제 마을

등록 2006.05.08 15:56수정 2006.05.0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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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축(Selçuk)의 숙소에서 먹을 수 있는 아침의 종류는 다양하다. 그 중 과일과 시리얼이 들어가 있는 요거트를 먹어보기로 했다. 처음에 요거트만 먹고 어떻게 배고파서 점심까지 기다리나 했는데 그릇을 보고는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큰 사발에 복숭아, 멜론, 수박, 포도가 들어가고 과자 시리얼이 아닌 씨앗 말린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 위에 집에서 만든 요거트를 듬뿍 넣었고 마지막에 꿀을 뿌려주었다.

'매일 이렇게 자연에서 나는 것과 사람의 정성으로 만들어 진 것으로 아침을 시작하면 얼마나 좋을까.'


오늘은 실질적인 여행의 마지막 날이다. 마음가짐이 달라진다. 아껴두었던 깨끗하고 예쁜 옷을 꺼내 입었다. 어제 몸이 좋지 않아 돌아보지 못했던 동네를 돌아보기로 했다. 좋은 음식으로 배를 채우니 기분은 더없이 좋다. 아침부터 '난 터키의 진짜 개그맨이랍니다'로 시작된 숙소 아저씨의 기분 좋은 유머로 더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웃지도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나를 웃기는 그 분이야말로 진정 터키의 개그맨이다.

셀축. 이 자그마한 동네에는 아르테미스 신전과 성요한의 바실리카가 자리 잡고 있다. 아르테미스 신전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그 규모가 컸다고 한다. 하지만 계속되는 지진에 남은 것은 기둥 하나와 무너진 터 그리고 물웅덩이가 전부다. 7번이나 재건을 했는데도 기둥 하나만 하늘을 향해 서있을 뿐이다. 이곳에 있던 지각변동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다른 것은 다 무너져버렸는데 혼자 버티고 서있는 저 기둥이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a 기적같이 하나 남은 기둥, 아르테미스 신전

기적같이 하나 남은 기둥, 아르테미스 신전 ⓒ 김동희

풀숲을 해치고 멀리 보이는 성 요한의 바실리카(St John's Basilica)로 향했다. 사도 요한은 말년에 이곳 에페스에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함께 왔다. 지금 바실리카가 있는 아야술룩(Ayasuluk) 언덕에서 복음서들을 집필했다고 한다. 이곳을 기리기 위해 교회가 지어졌지만 이 또한 지진에 의해 몇 번이나 무너졌고 다시 재건되었지만 마지막 승자는 지진이었다.

a 성요한의 바실리카로 들어가는 입구.

성요한의 바실리카로 들어가는 입구. ⓒ 김동희

사도 요한은 죽은 후 이곳에 묻히길 원했다고 한다. 바실리카 안에는 그의 무덤이 있다. 무덤 앞에 서니 경건함이 내 몸을 감싼다. 성경에서만 보던 인물들이 내가 걷고 있던 이곳을 다니고 내가 바라보는 그 곳을 바라보며 숨을 쉬며 살았다니 말이다. 1세기와 21세기가 통하는 느낌이다.

a 요한의 무덤.

요한의 무덤. ⓒ 김동희

셀축에서 시린제(Şirince)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돌무쉬(터키의 미니버스)를 탔다. 작은 돌무쉬가 산길을 가로질러 작은 마을 앞에 나를 내려다 주었다. 아주 작은 이 마을은 원래 그리스인이 살았지만 그리스와의 전쟁으로 1924년 그리스에 살던 터키인들이 주민 맞교환을 통해 이 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큰 볼거리보다는 작은 마을이 아기자기하게 예쁘다는 소문과 맛있는 와인이 즐비해 유명해진 곳이다.


시린제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흥겨운 음악소리가 나서 근원지를 찾아 골목으로 들어섰다. 방송국 취재가 있는지 마을 사람들은 연신 카메라 앞에서 악기를 두드리고 춤을 추고 있다. 처음에는 몇 명이 춤을 추더니 골목을 지나 넓은 공터로 가더니만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서 춤을 춘다. 그 춤을 추는 모양새가 우리나라 관광버스 춤과 다를 바 없어 웃음이 나온다. 세상 어디나 막 춤은 비슷한가 보다.

a 막춤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막춤은 세계 어디나 비슷하다. ⓒ 김동희

배는 고프지 않지만 쉬기 위해 식당을 하나 찾았다. 실외에 나무 의자가 놓여져 있고 화덕이 두 개나 있는 집이었다. 멋들어지게 꾸며놓은 집은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멋이 있는 식당이었다. 너무나 소박한 모습의 아주머니와 할머니 두 분이 화덕에 불을 지피기 시작한다. 바닥에는 화덕에 넣을 빵들이 준비되어 있다. 한 쪽 화덕에는 빵 틀에 담겨진 빵들을 넣기 시작하고 다른 한 쪽 화덕에는 꼬치구이 케밥이 구워진다. 바깥에 있는 화덕에서 음식이 구워지고 있으니 더 맛이 좋을 것 같다. 게다가 음식을 만드시는 아주머니와 할머니의 모습이 우리네 시골 사람들과 닮아있어 더 푸근하게 느껴진다.


a 화덕앞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미소가 싱그럽다.

화덕앞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의 미소가 싱그럽다. ⓒ 김동희

a 화덕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빵들.

화덕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빵들. ⓒ 김동희

아기자기한 이 마을에 특별히 멋지게 장식해 놓은 집들이 있는 것은 아니다. 작은 골목들이 잘 정돈되어 있고 그 옆으로 집들이 있다. 집 앞이나 창문 옆에는 꼭 화분이 있다. 작지만 예쁜 꽃들이 가득하다. 흰 벽에 창문은 녹색이나 파란색으로 포인트를 주었다. 사람의 작은 정성 하나하나가 만들어놓은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가득하다.

골목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교회 하나가 나온다. 이 곳은 세례 요한의 교회이다. 교회라고 해서 표지를 따라 들어가니 그 모습이 역시 정겹다. 교회 마당에는 그 주변 집에서 나온 물건들이 널려있고 꽃 화분들이 여기저기 다른 꽃을 피우고 있다. 구석에서는 고추장과 비슷해 보이는 것을 발효하고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초르바(터키식 스프)를 만들 때 넣는 재료를 발효시키고 있다. 오래된 유적지라고 그 앞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미명아래 황량하게 만들고 매표소를 만들어 놓는 것보다 더 보기 좋고 정겹다. 오래 전에 죽은 건물이 아니라 아직까지도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건물인 것 같아 더 푸근하다.

시린제 마을을 유명하게 만든 것 중 하나가 와인이다. 이 주변에 포도밭, 복숭아 밭 그리고 메론 밭이 많아 그 열매로 와인을 만든다고 한다. 그 소문대로 마을 안에는 와인 가게가 아주 많다. 한 가게로 들어가 와인 시음을 해보았다.

a 여러 종류의 와인들. 하나하나 시음하다가는 취하고 만다.

여러 종류의 와인들. 하나하나 시음하다가는 취하고 만다. ⓒ 김동희

우리가 쉽게 접하는 포도 맛은 물론이고 복숭아 맛, 딸기 맛, 메론 맛, 블루베리 맛, 블랙베리 맛까지 그 종류도 다양하다. 맛만 보기 위해 조금씩 먹어만 봐도 취할 판이다. 포도 맛 이외의 맛은 상상을 안 해봐서 그 맛이 궁금했다. 먹어보니 특이하고 맛도 좋다. 특히 나에게 복숭아맛과 딸기맛 와인은 특이하면서도 맛도 좋아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값싸고 독특해 선물용으로 더 사고 싶었지만 무게가 만만치 않다. 욕심의 대가는 배낭의 무게를 더해 내 어깨를 짓누를 것이 분명하다.

시린제 마을의 와인처럼 너무나 다양한 맛을 보여준 터키 여행이 끝나 가고 있다. 그 맛도 중독성이 있어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스탄불로 향하는 버스의 창가에 풍경이 스치고 지나가듯 짧은 여행의 시간들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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