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3회

첫 만남

등록 2006.05.04 19:22수정 2006.05.04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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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더 이상의 인터뷰는 생략하겠다는 표시로 노트북을 닫았다. 기자가 판단하기에 남현수의 발언 중 상당부분은 최근 신도수를 늘여나가고 있는 UFO부흥회라는 종교집단을 자극하고 외계인과의 우호를 해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기사에 넣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기자는 아예 그런 말들은 편집해 버릴 작정이었다.

기자가 나간 후 남현수는 담배 한 개비를 꺼내들어 입에 물고서는 라이터를 찾았다. 금방 라이터가 눈이 뜨이지 않자 남현수는 책상을 열어 톱밥을 넣어둔 조그마한 철 상자와 부싯돌을 꺼내었다. 남현수가 능숙한 솜씨로 ‘탁탁’ 부싯돌을 부딪치자 톱밥에 불이 붙었고 남현수는 그 불에 담배를 가져다 대어 불을 붙였다.


부싯돌로 불을 붙이는 짓은 남현수가 무료함을 느낄 때마다 종종 행하고는 하는 장난질이었다. 철 상자의 뚜껑을 닫아 불을 끈 뒤 깊게 담배 한 모금을 빨아 당긴 남현수는 부싯돌을 바라보았다. 일반적으로 부싯돌은 예닐곱 번을 사용하면 그 수명을 다 했지만 7만 년 전의 누군가가 사용했을 그 부싯돌은 신기하게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불을 붙이는 데 손색이 없었다.

남현수가 그 부싯돌을 발견하기 전에는 7만 년 전에는 자연발화 된 불을 채집해 다루었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남현수는 그 부싯돌을 볼 때마다 옛 인류의 생활상에 대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던 방송국 PD가 원시인들이 불을 붙이는 방법에 대해 보여 달라고 했을 때가 떠올라 절로 쑥스러웠다. 부싯돌이야 원시인뿐만이 아닌 수 백 년 전에도 애용되어 왔던 도구였지만 현대인이 무작정 이를 다루어 불을 붙일 때는 불편함만이 느껴질 뿐이었다. 불꽃이 튀기는 하는 데 이를 옮겨 붙이는 데에서 요령이 서지를 않았다. 결국 방송국 PD는 그 장면을 넣지 못했다. 남현수는 문제의 부싯돌을 슬쩍 가져와 자신의 연구실 서랍 속에 넣어두고 불을 붙이려 노력해 보았고 이젠 아주 자연스럽게 불을 붙일 수 있게 되었다.

7만 년 전이라.’

남현수는 며칠 뒤 만날 외계인 ‘마르둑’이 처음 지구를 방문해 했던 말 중 하나를 잊을 수 없었다.

“......하쉬(외계인은 자신의 거주지 행성을 이렇게 불렀다.)의 생명이 소중하듯이 지구의 생명도 소중합니다. 7만 년 전 지구에 왔을 때 저지른 과오는 다시 되풀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마르둑은 그 뒤 이러한 말을 다시 하지 않았다. 어찌된 일인지 언론은 ‘외계인이 과거에도 지구를 방문했다.’는 말만을 잠깐 언급할 뿐이었고 ‘7만 년 전의 과오’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남현수는 7만 년 전, 외계인들을 마주했을지도 모르는 원시인들의 기술수준을 떠올렸다. 지금 남현수의 눈앞에 있는 부싯돌과 짐승의 뼈, 돌을 깨어 만든 조악한 석기도구, 그리고 지금은 남아있지 않지만 아마도 애용되었을 나무로 만든 도구가 원시인들이 보유한 기술의 전부였을 터였다. 지금은 지구상의 오지에 남아있는 어떤 인간도 이들보다는 나은 기술수준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7만 년 전의 인류는 현생인류와 사실 그다지 다른 점이 없었다. 7만 년 전의 인류를 데려다가 목욕을 시키고, 면도를 해준 뒤 정장을 입히면 현대인과 똑같은 모습일 것이었고, 심지어 자동차를 운전하는 법을 가르치더라도 이를 훌륭히 배울 것이었다.

‘7만 년 전의 과오란 외계인들이 인류에게 아무런 정신적 교훈이나 심지어는 기술 전파도 하지 않았다는 의미일까요? 그들은 사실 다른 의도를 가지고 7만 년 전에 온 것입니다.’


남현수는 이런 의문을 담아 ‘외계인과의 만남’에 참석할 의향을 담은 글을 적어 관계당국에 보내었고 이는 외계인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뜻밖에도 남현수는 당당히 외계인과의 만남에 초대받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질문에 대해 외계인에게서 얼마나 심도 깊은 대답이 나올지는 의문이었다. 남현수 말고도 아홉 명의 사람들이 각기 다른 주제로 세 시간 동안 외계인에게 질문을 할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단, 인류학자인 남현수가 뽑힌 이유는 그간 다른 나라를 돌며 외계인이 되풀이 하며 대답한 질문에 비해 ‘색다른 것’이기 때문이라는 답변이 있었기에 그는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었다.

‘전 한국의 고고인류학자 남현수라고 합니다. 인류와 그 문화의 기원, 특질을 연구하는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이지요. 저는 ’하쉬‘에서도 이러한 학문을 연구하고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하쉬‘에서는 하쉬인들의 기원과 문화의 발달상이 어떻게 연구되고 있는지 궁금하군요. 또한 7만 년 전의 지구 방문에 대해서도 듣고 싶습니다. 7만 년 전 지구를 방문했을 때 인류의 선조들을 만나본 적이 있으신지요? 그들의 생활상과 당시의 모습에 대해 기록이 남아있다면 도움을 주셨으면 합니다. 고고인류학자인 저로서는 그런 기록이 매우 소중한 것이고 기록의 소중함은 하쉬행성의 인류도 인지하고 있으리라 여깁니다.......’

남현수의 질문은 오락적이고 대중적인 요소가 가미된 외계인과의 토론 프로그램에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간 외계인 마르둑은 깊이 있는 주제에 대해서 유명 과학자와 석학과도 대담을 가진 바 있었다. 그렇기에 남현수는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오락적 요소가 다분한 이번 초빙이 무작정 달갑지만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종일 매달려서라도 그에 대한 답을 얻고 싶었지만 하루에 단 두 시간을 자면서 일정을 쪼개어 사람들을 만나러 돌아다니는 마르둑에게 남현수 개인이 그만한 시간을 얻어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인류가 저 외계인들을 만난 순간 과연 이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남현수의 속으로 자신의 생각에 피식 웃었다. 지금의 인류는 자신의 존재가 우주속의 작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외계인의 존재를 받아들이지만 남현수가 생각하기에 지구라는 세계에 대한 인식마저 없었던 당시의 인류는 외계인을 봤다손 치더라도 특이한 동물로 밖에 여기진 않았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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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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