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마의 산지', 어승생악 정상에 남은 일제의 상처

[제주의 오름기행 ⑫] 한라산의 작은 동산 어승생악

등록 2006.05.07 10:50수정 2006.05.07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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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승생악 정상 산정호수입니다. 물이 고여 있지 않은 늪지대 입니다.
어승생악 정상 산정호수입니다. 물이 고여 있지 않은 늪지대 입니다.김강임
신선이 산다는 한라산. 누구나 한번쯤 한라산을 그리워 하지만, 산은 아무에게나 길을 내주지 않는다. 누구나 오를 수 있는 산, 남녀노소가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산, 그런 산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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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시에서 99번 도로를 타고 30분정도 올라가면 ‘한라산의 작은 동산’ 어승생악이 있다. 어승생악은 한라산국립공원 안에 존재하는 기생화산 중 가장 큰 화산체로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식물과 동물이 모두 존재한다.


때문에 사람들은 1.3km의 나지막한 오름을 올라놓고도 마치 한라산 정상에 오른 것처럼 환호성을 지른다. 아마 그 이유는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모든 생태계가 이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리라.

어승생악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어승생악은 기생화산이다.

기생화산은 한라산과 같은 주화산체의 산록상에서 분화활동을 한 독립된 소화산체로서 스코리아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 정상부는 분화구를 가지고 있다.

어승생악은 제주도에 분포되어 있는 368개의 기생화산 중에서 단일화산체로 가장 규모가 큰 기생화산이다. 직경이 1968m, 둘레가 5842m, 높이가 350m이며 정상부는 해발 1169m 이다.

정상부에는 산정화구호인 분화구가 있으며 예전에는 물이 고여 있었으나 분화구 바닥에만 약간의물이 고여 있는 늪지대이다.


(* 한라산국립공원 자료 참조)

제주시 해안동 산 220-12번지 어승생악. 어승생악에 오를 때에는 가능한 자동차 통행을 오름 입구까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 이유는 오름의 형태는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그 모양새와 느낌이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승생악 입구의 약수터에서 약수물을 마시니 한라산을 통째로 마시는 기분입니다.
어승생악 입구의 약수터에서 약수물을 마시니 한라산을 통째로 마시는 기분입니다.김강임
자동차를 99번 도로의 어리목 입구 주차장에 세우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통나무 길을 걷노라니 한라산의 진수가 한 몸에 느껴진다. 계곡에서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는 녹담만설의 물소리인가? 물소리만큼이나 시원한 어리목 광장 약수터는 산 좋고 물 맑은 한라의 정기가 한데 어우러진다. 약수터의 물 한 모금을 꿀꺽꿀꺽 마시자 마치 한라산을 통째로 마시는 기분이다.


키 작은 야생화가 정상까지 피어있더군요.
키 작은 야생화가 정상까지 피어있더군요.김강임
어승생악에 오를 때는 제주 오름의 매력에 빠져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곳에 서려있는 전설을 짊어지고 오름 탐방에 나서는 것도 또 하나의 의미가 있다.

어승생악은 임금이 타는 말이 이곳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이 있는 오름으로, 전설의 진원지는 “산꼭대기에 못이 있는데 100보나 된다. 이 오름 아래에서 임금이 타는 말이 태어났다”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한다.

명마(名馬)의 산지로 전해지는 어승생악의 전설을 기억하며 오름에 첫발을 딛는 순간, 제일먼저 눈을 맞추는 것은 조릿대 사이에서 초롱초롱 얼굴을 내미는 야생화들이다.

어승생악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등산로 표지판 사진입니다.
어승생악에서 살아가는 동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등산로 표지판 사진입니다.김강임
오름의 생태는 늘 약자와 강자가 함께 어우러져 산다. 약한 식물들은 늘 강한 식물들 틈새에 끼워져 살아도 식물은 영토싸움을 하지 않는걸 보면 신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하다.

그런데 동물들은 강자와 약자가 만나면 으르렁거리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어린이집 친구들도 제주오름 탐사에 나섰습니다.
어린이집 친구들도 제주오름 탐사에 나섰습니다.김강임
봄기운을 밟고 꼬불꼬불 이어지는 계단을 밟고 가노라니 봄 소풍 나온 새싹들의 재잘거림이 한라의 동산에 가득하다. 좀꽝꽝나무, 개서어나무, 고로쇠나무. 어린이들에게 이 나무들의 이름은 얼마나 생소할까? 그러나 앞서간 선생님의 선창에 따라 어린이들의 외침은 오름 속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야생화의 꽃잎처럼 아름답다.

해발 200-1700m에서 자란다는 고로쇠나무는 계단의 한켠에서 몸을 비비 꼬꼬 하늘을 향한다. 봄빛에 몸을 달굴 때로 달군 개서어나무도 이제 막 딱딱한 나무를 뚫고 이파리를 틔우고 있다.

키가 큰 것들과 키가 작은 것들의 조화. 제주오름 한가운데 서면 큰 것이 작은 것은 지배하는 것 같지만 자연의 생태계는 늘 질서가 잡혀져 있다. 자신의 영토를 조건 없이 내 주는 야생화는 키 큰 나무의 뿌리에 서식하기도 하니 말이다. 이것이 바로 어승생악에 존재하는 자연의 이치가 아닐까?

키가 큰 나무들은 하늘을 향해 쭉쭉 뻗어 가지만, 작은 나무들은 자꾸만 옆으로 자신의 종자를 번식해 나간다. 그러나 자신의 종을 키워나가는 것이 다 우리들에게 이로움을 주는 것만은 아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조릿대의 번식은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한라산에 자생하는 조릿대의 번식은 생태계의 교란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김강임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조릿대는 이제 생태계에 위험신호를 주는 것 같다. 대나무의 일종으로 줄기를 이용해 조리를 만들기도 하는 조릿대는 이제 한라산 국립공원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땅속 깊이 왕성하게 뿌리를 내리는 조릿대는 자칫 한라산에서 자생하는 모든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으니 은근히 걱정이 된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어리목광장과  Y계곡이 펼쳐졌습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니 어리목광장과 Y계곡이 펼쳐졌습니다.김강임
오름을 오를 때는 꼭 한번씩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라. 이것은 자신의 발자취를 회향하는 이유도 있겠지만, 어승생악에서 자신이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 보이는 것은 한라산의 자태뿐이다. 어리목의 Y자 계곡에는 운무가 춤을 추고, 능선에는 신록이 여물어 간다.

특히 어승생악을 오르다보면 서로 다른 화산물질로 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어승생악이 2회에 걸친 화산활동으로 어승생악 입구에서 3분의 2까지는 흙갈색 화산회토로 되어 있으며, 정상까지는 붉은 색으로 스코리아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1차는 다량의 현무암질 용암, 2차는 화산폐쇄물인 스코리아의 분출을 알려주는 것이라 한다.

정상은 강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입니다.
정상은 강풍으로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 입니다.김강임
이러한 화산분출의 역사를 밟고 정상에 오르면 정상은 시시각각 변화를 가져온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한라산의 웅장한 자태와 올망졸망 누워있는 제주오름과 구구곡의 계곡까지 한눈에 볼 수 있지만, 날씨가 궂은 날이면 한치 앞을 분간하기 어렵다.

정성의 표지석은 오르미의 희망입니다.
정성의 표지석은 오르미의 희망입니다.김강임
오름의 정상 해발 1169m. 정상은 늘 우리에게 희망이다. 그러나 제주오름의 정상에 서면 산 아래에서 품어왔던 희망보다는 제주오름의 역사와 아픔이 뒤따른다. 그리고 그 아픔은 늘 현실 속에 뒤엉켜 있다. 정상을 지키는 산정호수는 강풍 속에서도 봄빛이 여물고 있지만 이곳은 역사의 산증인이다.

그것이 바로 1945년 일제의 군사시설인 토치카. 해발 1169m 에 새겨진 표지판을 읽어 내려가는 순간, 아름답게 단장해야 할 자연 속에는 늘 아픈 역사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가슴 아플 뿐이다.

어승생악 해발 1169m. 명마가 태어난 곳, 산 좋고 물 맑은 오름 중 오름. 그 정상의 산정호수에서 호수를 말하려 했는데, 아픈 역사를 말하려 하니 갑자기 제주오름이 ‘무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토치카... 일제가 남긴 아픈 상처

▲ 해발 1169m에 잔재한 일제시대 군사시설 토치카
해발 1169m인 오름의 정상에는 1945년 당시 제주성 사람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일제의 군사시설인 토치카가 남아 있다.

1945년 4월 제주도 방어강화를 위해 신설 편성된 일본군 제 58군사령부는 전략상 해안선 방어에 한계가 있다고 판단, 한라산을 방어진지로 자구전을 펴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제 58군은 이에 따라 육상 전투시 지휘본부를 두기 위한 대단위 지하요새를 어승생악에 만들었다. 어승생악은 조천, 제주시, 애월, 한림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2개의 토치카는 30m 거리를 두고 하나는 동북쪽을 하나는 서북쪽을 감시하도록 만들었다. 5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토치카의 내부는 아직도 견고하며, 5~6명이 살 수 있을 정도의 넓이이다.

어승생악 허리의 지하요새와 통하게 되었으나 지금은 함몰되어 막혀 있다.

(* 한라산 국립공원 자료 참조)

덧붙이는 글 | ☞ 어승생악 찾아가는 길: 제주시- 노형로터리- 99번 도로( 1100도로)- 어승생 입구- 어리목광장- 어승생악으로, 등산 시간은 약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 된다.

덧붙이는 글 ☞ 어승생악 찾아가는 길: 제주시- 노형로터리- 99번 도로( 1100도로)- 어승생 입구- 어리목광장- 어승생악으로, 등산 시간은 약 1시간 10분 정도가 소요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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