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과 불꽃놀이, 그리고 평택과 서울...

[현장] 집회와 축제로 쪼개진 7일 광화문의 밤

등록 2006.05.08 14:55수정 2006.05.08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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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평택지키기 위한 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
지난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평택지키기 위한 국민촛불문화제가 열렸다.오마이뉴스 김종철
"물러서라! 물러서…, 너무 밀지 말고…."

숨가쁜 목소리가 전해졌다. 고개를 돌려보니 어깨에 황금색 무궁화가 달린 계급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말소리 하나하나에 눈앞의 검은 헬멧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눈앞에서 갑자기 소화 분말가루가 터져 나왔다.

7일 밤 10시께 서울 종로구 광화문 네거리. 동아일보 빌딩 옆 보행자 도로는 아수라장을 방불케 했다. 한총련을 비롯해 노동자의 힘 등 대학생과 노동자, 시민사회단체 회원 1000여명은 "폭력경찰 물러가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경찰과 마주섰다.

곧 경찰과 밀고 당기는 몸싸움이 벌어졌다. 곳곳에서 소화기 분말가루가 날렸다. <동아일보> 쪽이 길가에 세워놓은 독일 월드컵 홍보물 일부가 부서져 나뒹굴었다. 이날 촛불문화제를 참가했던 집회 참가자와 경찰간의 실랑이는 2시간여만에 마무리됐다.

도로 위로 월드컵 홍보물과 '평택은 비상계엄' 라고 씌여진 종이들, '하이서울 페스티벌' 선전 포스터물이 뒤엉켜 있었다.

# 장면1 광화문서 다시 만난 검정헬멧과 깃발들

밤 9시 20분께. 청계광장 주변을 완전히 에워싼 경찰병력들이 옷을 추슬러 입었다. 자신을 말년이라고 밝힌 한 대원은 "차라리 이곳이 (평택보다) 낫다"면서 "이 짓거리도 곧 끝난다"고 말했다.


'요즘 힘들었겠다'고 묻자, 그는 "학교 다닐 땐 몰랐는데, 여기(전경부대)와서 많이 생각했다"면서 "(제대하고) 학교 가면 집회는 절대 안 나갈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김아무개 대원도 거들었다. 그는 자신은 군대에 가서 이것을 쓸 줄을 생각도 못했다고 말했다. 이것은 '검은 헬멧'이다. 김씨는 "법만 지키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면서 "집회를 막다보면,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대중을 선동하면서 싸움을 거는 경우를 숱하게 봤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아무개(22, H대)씨는 지난 4일 대추분교에서 연행됐다가 6일 풀려났다. 7일밤 광화문 촛불문화제에 나온 정씨는 "오늘도 잡히면 진짜 영창에 들어갈지 모른다"면서 "천천히 뒤에서 싸울까 한다"고 웃음을 짓기도 했다.

정씨는 "대추리를 가기 전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아무것도 몰랐다"면서 "솔직하게 지금도 답을 말하진 못하겠지만, 농사짓고 살고 싶다는 농민을 무조건 나가라는 식은 아닌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는 곧 다른 동료들과 깃발을 들고 앞으로 뛰쳐 나갔다.

# 장면2 땅에선 3천여 촛불 vs 하늘에선 수천여발의 불꽃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한 대학생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 청계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 참석한 한 대학생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오마이뉴스 김종철
저녁 8시 30분께. 청계 광장에 모인 촛불은 어림잡아 3000여개에 달했다. 지난 6일 밤의 1000여개보다 크게 늘었다. 문화제를 준비한 주최 쪽은 평택 대추리와 인터넷으로 연결해 양쪽 행사를 중계하는 민첩함도 보였다.

또 현대하이스코 비정규 노동자의 음성도 전화로 전했다. 그들은 일주일이 넘도록 서울 양재동의 현대자동차 본사 타워크레인에서 고공 농성을 벌이고 있다. 허영구 민주노총 부위원장을 비롯해 천영세 민주노동당 의원, 김종철 서울시장후보와 김용한 경기도지사 후보 등의 연설도 이어졌다.

특히 대추리 현지에서 올라온 방효태(70) 할아버지의 음성은 많은 시민들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방 할아버지는 "팽성 대추리는 지금 너무 착잡하다"면서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노인네들만이 남아서 밭갈고 사는데 이제 와서 나가라면 어디로 가야하나"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우린 돈을 많이 달라는 것이 아니다"면서 "그냥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이대로 농사를 짓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뿐"이라고 말하자, 행사장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물론 다른 이야기도 있었다. 화곡동에서 왔다는 정인영(68) 할아버지. 그는 7살 난 손자를 이끌고 청계천을 찾았다. 정 할아버지는 "도대체 그동안 뭐하고 있다가 이제와서 여기까지와서 저러는지 모르겠다"고 고개를 저었다.

간단하게 주민들의 노력과 평택집회 사진 등을 보여드리자, 그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 할아버지는 "정부에서 웬만큼 생각해서 했을 것인데, 너무 반대만 하니까…"라며 "경찰애들도 많이 맞았다고 하는데 왜 그런 사진은 없냐"고 묻기도 했다.

정 할아버지의 인터뷰 중간에 시청 쪽 밤하늘에는 수천여발의 불꽃이 터졌다. 그는 곧 손자와 함께 자리를 떴다. 무대 위 사회자는 "언젠가 대추리에 가서 저보다 멋진 불꽃놀이를 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 장면3 '농민가' 와 '너나 잘하세요' 그리고 외국인이 본 평택

7일 오후 광화문일대에선 하이서울페스티벌 마지막날 행사가 이어졌다. 사진은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언더밴드 공연의 일부.
7일 오후 광화문일대에선 하이서울페스티벌 마지막날 행사가 이어졌다. 사진은 청계광장에서 진행된 언더밴드 공연의 일부.오마이뉴스 김종철
저녁 7시 30분께. 평택을지키기위한국민촛불문화제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당초 예정된 시간을 30분 넘긴 시각이었다.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 청년위원회, 일부 대학 등에서 나온 학생과 노동자 500여명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행사장 맞은편에선 이미 '하이서울 페스티벌'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인 언더밴드 공연이 진행되고 있었다. 500여 좌석은 이미 가득 찼고, 많은 시민들이 공연장 주변에서 공연을 즐겼다.

청계천이 시작되는 갑을빌딩 입구 쪽에선 양 행사 쪽에서 마련한 대형 스피커가 마주 놓여 있었다. 한쪽에선 강력한 비트의 록음악이, 다른 한쪽에선 '농민가' 등 민중가요가 흘러나오며 충돌했다.

3인조 보컬그룹인 C 그룹은 촛불행사장을 의식한 듯, "이 세상 살아가면서, 남들 걱정은 그만해"라며 "다음 곡은 '너나 걱정하세요'"라고 말하자 무대아래 젊은이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정아무개(20, 여)씨는 "엊그제 TV를 통해서 본 것 말고는 평택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한다"면서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라며 무관심한 표정을 보였다. TV를 본 소감에 대해선 "무서웠다.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라는 말이 돌아왔다.

영국에서 온 피터슨(43, 학원강사)씨는 행사장에 내걸린 경찰 진압 사진 등에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사진 등을 보면서 "Is it true?(사실이냐)"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비쳤다. 그는 또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들은 대부분 (평택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며 영어로 된 자료를 찾기도 했다.

지난 4일 평택 대추리에서의 '평택'과 7일 밤 서울에서의 '평택'은 분명 차이가 있었다. 국민들의 단순한 무관심은 별개였다. 80년 광주와 비교해 놓은 사진은 섬뜩했지만, 호소력은 약한 듯 했다. '그들'만의 싸움이 아닌 '우리'의 싸움으로 가져가야할 지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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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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