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4회

첫 만남

등록 2006.05.08 17:38수정 2006.05.08 1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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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마르둑 초청 대담'



마르둑은 지구에 온 이후로 쉴 새 없이 기자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려야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마르둑의 허리에 찬 언어 번역기가 지나친 혹사로 고장이 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질문 하나하나에 정성을 드려 대답해 주었으며 곤란한 질문에도 재치 있게 넘어갔다.


"외계인도 성생활을 하나요? 지구의 인간들처럼 변태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도 있나요?"

마르둑이 프랑스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지구의 생물인 물고기처럼 체외수정을 하기 때문에 변태적인 성향이 있을 수 없지요."

질문자가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짓자 마르둑은 이렇게 덧붙였다.

"물론 농담입니다. 지구인들처럼 우리도 농담을 즐기지요."


외계인이 온지 거의 1년이 가까워지는 지금, 마르둑의 지구 순방으로 세계에는 외계인 열풍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마르둑 어록, 마르둑 패션이 유행했고 '허쉬 외계인의 생활사', '외계인의 경고' 같은 근거 없는 책들도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마르둑은 지구 정복을 위한 스파이다.', '외계인 출현, 과연 정부는 몰랐을까?' 하는 음모론들도 농담반 진담반으로 흘러나왔다. 인터넷에는 마르둑과 그의 행성 하쉬를 찬양하는 사이트가 생겨났고 그에 이어 안티 사이트도 생겨났다. 하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마르둑을 일방적으로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마르둑은 지구의 모든 생활상에 대해 금방 잘 이해하고 적응했다. 음식도 채식, 육식을 가리지 않았으며 러시아에서는 독한 보드카를 연이어 비우고서도 흐트러짐이 없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런 외계인의 신체내부구조에 대해 관심을 나타내는 학자는 많았지만 차마 결례되는 일을 부탁할 수 없어 곁으로 나타나는 신체특징에 대해서는 늘 사람들의 관찰 대상이 되고는 했다. 그러나 마르둑은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할 신체적인 특징을 보여준 적은 없었다.


이런 반면에 마르둑이 전혀 대답을 해주지 않는 주제도 있었다. 과학기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마르둑은 언제나 대답을 사양했다.

"저는 지구의 기술을 훔치거나 기술을 전파하는 입장에 있지 않습니다. 지구인의 것은 지구인의 것이고 하쉬행성인의 것은 하쉬행성인의 것입니다. 다만 저는 이 넓은 우주에서 다른 생명체를 만나 교류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 싶을 따름입니다."

마르둑에게 뭔가 심오한 대답을 기대한 질문에는 짧고 무난한 대답이 나왔다.

"당신들은 신을 믿습니까?"

"저희도 믿음이 있습니다. 단지 '믿음이 신'이지 신 그 자체를 믿지는 않습니다."

이런 마르둑이 지구에 도착한 지 11개월 만에 한국에 왔을 때 더 이상 그에게 물어볼 것이 남아 있을지 조차 의문이었다. 대담이 있기 전 사흘 동안 마르둑은 여러 관광 명승지를 돌아보고 색다른 음식을 먹었으며 유쾌한 태도로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다. 그리고 수많은 시청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토론 프로그램인 '외계인과의 만남'의 방영일이 다가왔다. 남현수와 더불어 초빙된 사람들은 정치인, 의사, 학자, 기업가, 시민대표, 예술가, 연예인 등등이었고 가볍고 경쾌한 분위기로 토론의 막이 올랐다. 사회자는 하쉬 외계인의 언어로 안녕하세요라는 뜻인 '나르디다'라는 인사말을 건넸다. 인간은 음역이 다른 하쉬 행성인의 발음을 제대로 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비슷한 말로 옮긴 말이었다. 마르둑은 허리에 찬 언어 통역기를 사용해 억양 없는 어조로 인사말에 대답했다.

"안녕하십니까."

그의 통역기는 인간세계의 모든 언어를 통력하고 말할 수 있게 하는 놀라운 것이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기계의 원리에 대해서 마르둑은 함구하고 있었다.

"외계인도 점(占)같은 것을 보나요?"

내용은 달랐지만 대다수의 질문은 거의 이런 '지구인은 이러이러한데 외계인은 어떤가?'라는 식이었다. 마르둑은 그런 질문에 농담을 섞어가며 성심껏 대답했다. 한 시간 동안 첫 인사말을 제외하고는 차례가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한마디도 못한 남현수는 질문할 자료를 앞에 쌓아 둔 채 좀이 쑤실 지경이었다. 예전에 했던 질문에 대해 전에 들었던 답변을 재탕하는 마르둑의 샛노란 눈동자가 왠지 밉살스러워 보였다.

"다음은 고고인류학자인 남현수 박사님이 질문해 주시죠."

마침내 차례가 오자 남현수는 준비한 질문지의 첫 문장을 보고서 재빨리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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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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