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운 맛이냐? 부드러운 맛이냐?

<음식사냥 맛사냥 75>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생아귀의 맛 '강릉아귀찜'

등록 2006.05.09 19:13수정 2006.05.10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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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맵지 않은 아귀찜 드셔보세요

맵지 않은 아귀찜 드셔보세요 ⓒ 이종찬

이 세상에서 얼굴이 꼭 같이 생긴 사람은 없다. 쌍둥이라 하더라도 찬찬히 살펴보면 생김새나 체격, 성격 등이 조금씩 다르게 마련이다. 그처럼 이 세살 사람들의 입맛도 저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이다. 매콤하고 짭쪼롬한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서부터 부드럽고 싱거운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까지.

하지만 음식은 저마다 고유한 맛이 있다. 맵거나 짜게 먹어야 할 음식이 있는가 하면 부드럽고 싱겁게 먹어야 할 음식이 있고, 달거나 쓰거나 시게 먹어야 할 음식도 있다. 실제 맵게 먹어야 할 음식을 부드럽고 맵지 않게 만든다거나 싱겁게 먹어야 할 음식을 짜게 만든다면 그 음식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맛을 잃게 만들기 십상이다.


그 중 경남 마산이 고향인 아귀찜은 예로부터 매운 맛을 으뜸으로 친다. 그렇다고 무조건 맵기만 한 것이 아니다. 반쯤 말린 아귀를 재료로 쓰는 마산 아귀찜은 혀끝을 톡 쏘는 매콤함 속에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숨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반쯤 말린 아귀살의 쫄깃쫄깃한 맛도 그만이다.

근데, 요즈음 들어 새롭게 생겨나는 아귀찜 전문점에 들어가 보면 마산 고유의 매콤한 아귀찜 맛과는 많이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아귀, 콩나물, 미나리, 미더덕 등 아귀찜에 들어가는 재료는 마산 아귀찜과 거의 비슷하다. 하지만 마산 아귀찜 특유의 매콤한 맛이 많이 사라진 것 같고, 아귀 또한 반쯤 말린 아귀를 쓰는 것이 아니라 부산 아귀찜처럼 생아귀를 쓰는 곳이 많다.

a 이 집 아귀찜은 빻은 마늘과 참기름을 많이 쓴다

이 집 아귀찜은 빻은 마늘과 참기름을 많이 쓴다 ⓒ 이종찬

a 푸짐하게 담긴 맛갈스런 아귀찜

푸짐하게 담긴 맛갈스런 아귀찜 ⓒ 이종찬

이는 요즈음 사람들이 건강을 생각해 너무 맵거나 딱딱한 음식을 의식적으로 피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인스턴트식품에 길들여진 청소년들은 맵거나 딱딱한 음식보다는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에 입맛이 길들여져 있다. 그 때문에 음식점들도 그들의 새로운 입맛을 따라 잡기 위해 새로운 아귀찜 조리법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저희집 아귀찜은 마산 아귀찜처럼 톡 쏘는 매운 맛은 없지만 부드럽고 달착지근한 맛이 특징이지요. 저희집 아귀찜을 먹은 손님들이 '마산 아귀찜은 엄청나게 맵고 뻣뻣하지만 이 집 아귀찜은 부드럽고 감칠맛이 있다고 그래요. 나름대로의 조리 비법이라면 콩나물과 아귀를 삶아 즉석에서 조리를 한다는 것이지요."

지난 달 28일(금) 저녁 7시, 시인 윤재걸, 방남수, 이승철 등과 함께 찾았던 신당동의 아귀찜 전문점 '강릉아구찜'. 이 집 또한 기존의 매콤한 아귀찜 조리법을 접어두고, 요즈음 젊은이들의 입맛에 발맞추어 부드럽고도 달착지근한 아귀찜을 새롭게 만들어내고 있는 집이다.


강원도 주문진이 고향이라는 이 집 주인 임미숙(39)씨는 "강릉에도 어쩌다 아귀가 한 마리씩 올라오긴 하지만 마산처럼 아귀찜을 전문으로 하는 집은 거의 없지요"라고 말한다. 임씨는 "어릴 때부터 아귀찜 조리에 관심이 많았다"라며 "그동안 맵지 않은 아귀찜을 만들기 위해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했다"고 귀띔한다.

a 이 집 아귀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가져온다

이 집 아귀는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가져온다 ⓒ 이종찬

a 시원한 복국도 먹을 만하다

시원한 복국도 먹을 만하다 ⓒ 이종찬

이 집에서 아귀찜을 만드는 방법은 마산의 아귀찜 만드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먼저 커다란 솥단지에 생아귀와 콩나물을 삶은 뒤 대파와 미나리, 미더덕, 적당히 매운고추, 고춧가루 등과 각종 양념을 넣어 중간불에서 살짝 데쳐주면 그만이다. 한 가지 특징은 매운 고추를 적게 쓰는 대신 빻은 마늘과 참기름을 듬뿍 넣는다는 점이다.


"저희 집은 매운 맛을 줄이기 위해 매운 고춧가루와 일반 고춧가루를 반반씩 섞어서 쓰지요. 아귀찜에 매운 맛이 하나도 나지 않는다면 그 또한 제 맛을 냈다고 할 수 없겠지요. 하여튼 저희 집 아귀찜을 먹어본 손님들 대부분이 그리 맵지도 않은 것이 적당한 감칠맛을 품고 있다고 그래요."

이 집 아귀찜(대 3만5천원, 소 2만5천원)은 마산 아귀찜과는 달리 그리 맵지 않으면서도 아귀찜 특유의 고유한 맛을 지니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그리고 푸짐하게 담긴 콩나물이 아사삭 아사삭 씹히는 맛과 부드러운 생아귀가 혀끝에 살살 녹아내리는 맛이 독특하다. 가끔 콩나물과 함께 씹히는 향긋한 미더덕 맛도 괜찮다.

윤재걸 시인은 "이 집 아귀찜은 마치 고향집 텃밭에서 금방 따낸 풋고추처럼 적당히 매우면서도 달착지근한 맛이 깃들어 있어서 참 좋다"며 "요즈음 한창 나이의 젊은이들은 새파란 청춘답게 톡 쏘는 매운 맛을 좋아할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 든 사람들의 입맛에는 이 맛이 꼭 들어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a 숙취해소에 그만인 복국 먹고 복 받으세요

숙취해소에 그만인 복국 먹고 복 받으세요 ⓒ 이종찬

a 이 집 아귀찜은 생아귀를 쓴다

이 집 아귀찜은 생아귀를 쓴다 ⓒ 이종찬

맵지 않은 아귀찜 예찬론자 방남수 시인은 "이 집 아귀찜은 일단 푸짐하게 나오는 데다, 맛이 담백해서 좋다"며 "밑반찬으로 산나물과 복껍데기무침, 동치미, 부추전 등이 있어 더 맛이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승철 시인은 "마산 아귀찜처럼 톡 쏘는 맛은 없어도 부드럽고 은은한 맛이 있다"며 "강원도 사람들의 부드러운 성격이나 입맛에 딱 들어맞는 것 같다, 이 걸 안주 삼아 술을 먹으니까 술이 잘 취하지 않는 것 같다, 마산 아귀찜이냐? 강릉아귀찜이냐? 서로 맛내기 경쟁을 한번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느냐?"라며 활짝 웃었다.

이 집에 가면 맵지 않은 독특한 맛의 아귀찜 외에도 숙취해소에 좋은 복국(7천원)과 생대구탕(7천원) 등도 맛 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골아이 고향>에도 보냅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시골아이 고향>에도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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