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이드] 혀 빼물고 죽은 새만금 생명들아

갯벌도 울고, 생합도 울고, 어민들도 울었다

등록 2006.05.09 18:08수정 2006.05.1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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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
"아침에 나오니까 뻘겋드라고."
"생합이 올라와 누워 있는 거요."
"엄마들 모두 울었어요."

계화도에 사는 이순덕씨 그레질을 마치고 나오면서 하는 말이다. 순덕씨는 오늘만(7일) 세 번째 다. 동이 트기가 무섭게 아침 6시에 갯벌에 나와 보니 생합들이 펄 위로 기어 나와 온통 붉은 색을 칠해 놓았다. 지난 며칠간 초여름 날씨가 계속되면서 펄 위에 소금 꽃이 하얗게 피더니, 비가 오니까 생합들이 물이 먹고 싶어 올라왔던 모양이다.


valign=top혀 빼물고 죽은 새만금 생명들아

바닷물로 알고 나왔더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울컥 눈물이 났다. 아침 일찍 갯벌에 나온 엄마들 모두 울었다. 생합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방조제가 막힌 후 배수갑문으로만 해수가 유통되면서 드러나는 갯벌이 늘어가기 시작하자, 고막, 죽합 등 이제나 저제나 바닷물을 기다리던 갯벌생물들이 비가 오자 모두 갯벌 위로 올라온 것이다. 햇볕에 드러난 소금 꽃과 빗물이 섞인 물을 오랜만에 보는 바닷물로 착각한 모양이다.

갯벌 위로 몸을 던진 작은 생합들이 몸을 세우고 필사적으로 다시 펄로 들어가려고 용을 쓰지만 이미 말라버린 갯벌에 조갯살을 내밀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빗물을 바닷물로 알고 갯벌 위로 기어 나온 어린 생합은 한나절을 헤매다 끝내 바닷물을 만나지 못하자 작은 흔적을 남기고 지쳐버렸다. 다시 바닷물이 오기를 기다려야 하지만 바닷물은 방조제에 막혀 물거품을 만들고 주저앉는다. 동죽과 죽합 등 갯벌생물들도 여기저기 입을 벌리고 바닷물을 달라고 아우성이다.

양지포구에는 큰 수족관을 실을 차가 막 잡아온 숭어를 옮겨 싣느라 바쁘다. 막혀버린 방조제에서 지금 잡히는 고기는 숭어가 전부다. 간혹 전어도 올라오지만 9월이나 되어야 어민들에게 돈벌이가 될 성 싶다. 숭어도 한참 철은 지나서 큰 돈벌이는 아니지만 나오는 양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어민들의 이야기이다. 2.7km라도 열려 있을 때는 아무리 작은 배라도 1톤은 족히 그물질을 해왔지만 지금은 많아야 800kg, 적을 때는 400kg에 그치고 있다. 방조제가 막히면서 바다에 있어야 할 많은 배들이 포구 위에 올라와 서성이고 있다.

배수갑문으로 바닷물이 오가면서 동진강과 만경강 상류에서부터 갯벌생물들이 죽고 있다. 바닷물은 상류까지 올라가지 못하고, 강물이 내려오면서 갯벌생물은 썩어가고 있다. 지금은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어민들의 이야기이다.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수천 년의 '생태시간'(물때)이 무너지다

이러한 변화들은 어민들에게 바로 영향을 주고 있다. 물때에 따라 나가던 갯일을 동이 트면서 시작해 해가 질 무렵이면 돌아오고 있다. 부지런한 사람들은 하루에 세 번씩도 그레질을 한다. 평생을 달과 바람이 만들어준 '생태시간', '물때'에 맞춰 살아온 어민들은 육지 것들의 고정된 시간인 '시계'에 맞추기 시작하고 있다.


계절에 따라 물때에 따라 모래등, 갯골, 물속을 오가며 그레질을 하던 갯벌도 이제 막보기로 긁어 대고 있다. 갯벌에 널 부러진 생합들 중 운 좋게 갯벌을 파고 들어가지 못하면 그대로 말라 죽는다. 깊은 뻘 속에 머무르는 생합과 갯골에 있는 생합, 그리고 물속에 있는 생합들이 이제 마지막 남은 것들이다. 이들도 장마철로 새만금 방조제 안의 염도가 많이 낮아지면 모두 입을 벌리고 썩을 것이다.

갯벌에 들어온 사람들은 어민들만 아닌 것 같다. 그레와 구럭을 갖춘 자동차도 들어와 있다. 전날 비가 많이 왔지만 갯벌은 벌써 운동장처럼 딱딱하게 말라 있고, 경운기가 지나간 자리에는 물을 먹으려고 기어 나온 갯벌생물들의 시체가 뒹군다.

벌써 다섯 해를 드나드는 갯벌이고, 시화호와 화흥호를 비롯해 간척지는 제법 다녀봤지만 직접 눈으로 죽어가는 생물들과 안타까워 하는 어민들을 보면서 가슴속에서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올라왔다. 나도 모르게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새만금 갯벌이 썪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제 어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생합이 썩기 전에 잡아내는 일이다. 숭어도 전어도 마찬가지이다. 새만금 갯벌이 주는 마지막 선물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게재됩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라도닷컴-섬섬玉섬'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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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동안 섬과 갯벌을 기웃거리다 바다의 시간에 빠졌다. 그는 매일 바다로 가는 꿈을 꾼다. 해양문화 전문가이자 그들의 삶을 기록하는 사진작가이기도 한 그는 갯사람들의 삶을 통해 ‘오래된 미래’와 대안을 찾고 있다. 현재 전남발전연구원 해양관광팀 연구위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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