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들, 선거 모의고사 치르다

중증장애인의 모의투표... "투표절차 복잡하지만 실전 잘할래요"

등록 2006.05.10 10:32수정 2006.05.10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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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기표를 끝낸 참석자가 투표함에 용지를 넣고 있다.

기표를 끝낸 참석자가 투표함에 용지를 넣고 있다. ⓒ 조경모


"투표를 하기 위해서는 본인 확인을 가장 먼저 해야겠죠? 자,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께 신분증을 보여 주세요."

5·31 지방선거를 3주가량 앞둔 지난 9일, 광주광역시 문흥동 우리들교회에서는 특별한 선거가 시행됐다. 중증장애인들을 위한 '모의투표'가 전국 최초로 열린 것. 이날 오후 1시부터 4시간 동안 진행된 모의투표는 실제 투표와 똑같은 절차로 진행됐다.

50여명 참가자 대부분이 거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인 만큼 투표를 마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들의 표정은 밝아 보였다.

지체장애인 정지영(여·24)씨는 "처음 해보는 투표가 어렵기도 하고 떨리지만 오늘 모의투표로 자신감이 생겼다"며 "실제 선거일에도 소중한 한 표를 꼭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강지선(여·25)씨 역시 "투표 절차가 의외로 복잡해 솔직히 당황했다"며 어려움을 토로하면서도 "오늘 이렇게 모의고사를 치렀으니 실전은 괜찮을 것 같다"며 은근히 자신감을 내비쳤다.

이날 장애인들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힘겹게 투표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10여명의 비장애인들도 "그동안 장애인 투표에 얼마나 무관심했었는지 깨닫게 됐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활동보조인 자원봉사자 김인자(여·48)씨는 "장애인들이 투표하는 것이 이렇게 힘든 일인지 몰랐다"며 "손발이 부자연스러워 투표가 어려운 장애인들을 돕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광주 선거관리위원회 홍보과 고경화씨는 "장애인이 투표하는 모습을 실제로 보니 어떤 점을 개선해야 할지 금방 알 수 있었다"면서 "투표소를 1층에 설치하고 투표소 내에 턱을 없애는 등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좀더 세밀한 지원이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a 광주 선관위 김태연 홍보과장이 장애인들에게 투표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광주 선관위 김태연 홍보과장이 장애인들에게 투표방법을 설명하고 있다. ⓒ 조경모

선거인 명부 대조를 맡았던 김랑 열린문 장애인자립생활센터소장(50)은 "활동보조인 수가 지금보다 훨씬 많아야 하고 이들이 장애인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에 더욱 힘써야 할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확충돼야 하고 청각장애인과 시각장애인을 위한 방안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모의투표에 함께 참여한 김태연 광주시 선관위 홍보과장(49)은 "장애인들이 투표장까지 쉽게 이동할 수 있게끔 119, 콜택시협회와 협의중"이라고 밝히고 "보완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은 재점검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투표, 우리에겐 많은 것을 의미한다"
투표사무원 역할 맡은 중증장애인 마동훈씨

투표사무원 역할을 맡은 마동훈(38)씨는 모의투표가 진행되는 내내 투표를 마친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의 얘기를 꼼꼼히 기록하고 있었다.

- 전국 최초로 장애인 대상 모의투표가 열렸는데.
"장애인도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시장을 뽑고, 시의원을 뽑아야 한다. 몸이 불편해 투표를 하고 싶어도 포기해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장애인 중에는 투표를 한 번도 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모의투표를 통해 투표에 대해 간접적이나마 체험해 볼 수 있는 뜻깊은 행사라고 생각한다."

- 오늘 참석률은 어느 정도인가?
"모의투표 시작 2시간 만에 등록자 87명 중 43명이 찾아왔다. 사실 10~20명 정도 올 거라고 기대했는데 예상보다 훨씬 많이 온 것이다. 그만큼 장애인들의 투표 관심이 높은 것이다. 31일 지방선거 당일에도 많은 장애인이 자신의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기를 바란다."

- 실제 투표와 똑같은 상황으로 모의투표가 진행됐는데, 잘 되고 있는 점과 개선돼야 할 점은 무엇인가?
"기표소 테이블이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테이블로 바뀐 것은 매우 좋다. 하지만 오늘 현장에서 보듯 아주 작은 문턱에도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란 쉽지 않다. 선관위가 투표소를 1층으로 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긴 하지만 작은 곳까지 세심하게 배려해 줬으면 한다. 또 투표용지가 작아 손이 부자연스러운 사람들은 투표용지를 집고, 접는 것이 힘들다. 투표용지를 조금 더 확대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앞으로 바라는 점은?
"비장애인들에게는 쉬운 투표가 우리에게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투표방법을 모르거나 또는 누구를 뽑아야 할지 몰라 투표를 망설이거나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앞으로 오늘과 같은 기회가 더욱 늘어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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