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발언은 정략이다"에 숨겨진 역정략

[김종배의 뉴스가이드]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공감대'

등록 2006.05.11 10:40수정 2006.05.1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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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7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몽골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몽골에서 '전제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 뜻을 표했다.

지난 7일 오후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몽골의 칭기즈칸 국제공항에 도착, 공항을 빠져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은 몽골에서 '전제조건 없는 남북정상회담' 뜻을 표했다. ⓒ 연합뉴스 백승렬


야당과 보수언론의 목소리 톤이 올라가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몽골 발언'에 담긴 단어 하나하나에 주석을 달면서 맹렬히 비판하고 있다.

비판의 가짓수는 다양하지만 갈래는 두 개, '퍼주기'와 '정략'이다. "조건 없이 제도적·물질적 지원을 하겠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전형적인 퍼주기이자 구걸에 해당한다는 것이고, 지방선거 직전에 '몽골 발언'을 한 데에는 전통적 지지층을 끌어모으려는 정략이 담겼다는 것이다.

일단 퍼주기론

'퍼주기' 비판이 정당한 지 여부를 가리는 건 어렵다.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조건 없는 제도적·물질적 지원'이 '적극적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며 새로운 대북 중대제안은 없다고 설명했지만, 잔 맛이 있다. 그렇다면 노 대통령은 왜 '제도적 지원'이란 새 개념을 운위했을까 하는 궁금증은 가시지 않는다.

언론은 '제도적 지원'이 국보법 폐지, 한미합동군사훈련 중지, 북한 참관지 제한 철폐 등을 뜻하는 것 아니냐고 분석하고 있지만, 현재로선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다. 이종석 장관조차 노 대통령의 진의 확인 필요성을 언급했을 정도다.

일단 미루자. 노 대통령이 귀국해 제도적 지원책을 소상히 밝힌 뒤에 시시비비를 가려도 늦지 않다.


정략론

a 노 대통령의 '몽골발언'에 대해 소위 '정략론'적인 접근이 야당과 보수언론을 통해 거세게 나오고 있다.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일보> 11일자 A4면.

노 대통령의 '몽골발언'에 대해 소위 '정략론'적인 접근이 야당과 보수언론을 통해 거세게 나오고 있다. 그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동아일보> 11일자 A4면. ⓒ 동아 PDF

논의를 '정략'에 집중하자. 어차피 이 문제는 누가 확인해줄 사안이 아니다. 노 대통령 귀국을 기다린다고 해서 상황이 또렷해지는 건 아니다. 지금의 지방선거 판세와 정국흐름을 고려해 유추하는 게 낫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의심하는 '정략'은 <동아일보>에 자세히 정리돼 있다. "여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내세워 5.31 지방선거에서 약세를 면치 못하는 열린우리당을 측면지원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이런 '정략'의 증좌로 두가지를 제시했다. 열린우리당 정동영 의장과 강금실 서울시장 후보 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방문한 뒤 '몽골 발언'이 나온 점, 그리고 광주를 방문한 정동영 의장이 "열린우리당의 선거 패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길에 심대한 장애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하고 다닌 점이다.

정동영 의장이 그렇게까지 말하고 다닌다는 데에야 무작정 '정략'이 아니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 4억 공천 헌금 사건으로 광주의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선 틈을 타 호남 지지를 끌어내고 이를 수도권에까지 연결시키겠다는 열린우리당의 선거전략도 여러 차례 보도를 탄 바 있다.

논의의 각을 잡기 위해 질문을 이렇게 바꾸자. '정략'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정략'은 성공할까?

정략 있다고 치자, 그러면 성공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다. 경험과 자료가 이런 단언의 근거다.

2000년 4월 총선이 있기 사흘 전 당시 국민의 정부는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발표했다가 되레 역풍을 맞았다. 민족문제를 정략에 이용하는 데 대한 국민의 비판의식을 포착하지 못한 결과였다. 더구나 '몽골 발언'은 6년 전의 남북 정상회담 개최에 비해 흥행성이 떨어진다. 쉽게 휘둘릴 만큼 민도가 낮지 않다.

논의 범위를 '국민' 일반에서 '호남민'으로 좁혀도 결론은 비슷하게 나온다. 호남정서가 노 대통령에서 멀어진 시작점이자 결절점은 '대북송금 특검 수용'이었다. 야당의 공세에 휘말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대 업적을 훼손한 데 대한 반발이었다.

그랬던 노 대통령이 이제 와서 '몽골 발언'을 내놓는다고 해서 호남 정서가 180도 바뀔까? 아니다. 오히려 "버릴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지느냐"는 반응이 나올 공산이 크다.

자료도 있다. <중앙일보>는 지난 9일, 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독도 강경대응 등으로 상승하는데도 열린우리당이 그 '음덕'을 입기는 커녕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는 사실을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들어 증명한 뒤 "여론은 대통령과 여당을 별개로 본다"고 진단했다. 국민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과거의 노 대통령'과 '현재의 노 대통령'에 대한 비교에서 찾는 데 반해, 열린우리당에 대해서는 대선이 다가올수록 한나라당과 비교한다는 것이다.

<중앙일보>의 이 분석을 그대로 차용하면 흥미로운 결론이 나온다. 첫째, 호남민이 '과거의 노 대통령'과 '현재의 노 대통령'을 비교하면 어떤 점수를 줄까? 이에 대한 대답은 바로 앞에서 한 바 있으니까 생략하자. 둘째, 설령 노 대통령의 '몽골 발언'이 호남 정서를 움직인다 해도 그것이 곧 열린우리당 지지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 없다.

<중앙일보>와 다른 분석틀도 있다. <내일신문>이 8일 보도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각종 개혁적 법안과 제도를 추진하는데도 불구하고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올라가지 않는 까닭'에 대해 응답자의 31.5%가 '국정 운영의 무능함이 드러나서'를, 27.3%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식이나 철학에 공감하지 않아서'를 꼽았다. 상당수 국민이 아직도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동격체로 보고 있다는 얘기다.

<중앙일보>와는 다른 이 틀을 그대로 차용해도 결론은 마찬가지다. '몽골 발언'으로 '국정운영의 무능'이 일거에 면책될 수 없고, '몽골 발언' 하나로 '노 대통령의 대북정책 방식이나 철학'을 전폭 지지할 수는 없다. 그러기엔 쌓인 게 너무 많다.

경험과 자료만 있는 게 아니다. 어쩌면 더 중요한 요인이 하나 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태도다. 여권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긴밀한 관계를 내세워 호남 표심을 움직이려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 떡을 줘야 한다. 그래야 열린우리당이 김칫국물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응은 이랬다.

"현직 대통령의 말에 대해 논평할 위치에 있지 않다."

지금 필요한 건 정략론이 아니라 공감대다

야당과 보수언론이 '정략'을 운위할수록 '역정략' 논리도 세를 얻는다. 여권의 '정략'을 부각해 반DJ, 반북의 전통 보수층 결집을 노린다는 주장 말이다.

어느 모로 보나 정략을 둘러싼 시비는 바람직하지 않다. 나눠서 보고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게 필요하다.

지금 절실한 건 공감대다. 갈수록 엄중해지는 한반도 정세에 비춰볼 때 '몽골 발언'이 적절했고, '몽골 발언'을 실천하는 게 긴요하다는 공감대 말이다. 노 대통령이 이제라도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면, 나머지 문제는 긴 호흡으로 차차 따져도 늦지 않다. 그럴 기회는 반드시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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