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단양적성에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딸아이와 함께 '단양신라적성비' 보며 산 교육 했답니다.

등록 2006.05.12 21:01수정 2006.05.12 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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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단양군 적성면 기동리에 가면 국보 198호인 '단양신라적성비'(丹陽新羅赤城碑)가 있다. 그곳은 중앙고속도로에서 오르막길 한 쪽에 자리를 잡고 있는 단양휴게소 둘레에 있다. 단양휴게소에서 뒤쪽 산을 향해 조금만 걸어가면 그 비석이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보통 휴게소는 뒤를 꽝꽝 막아 놓기 위해 철조망으로 된 망들을 쳐 놓는다. 하지만 그곳은 망 한쪽에다 작은 문구멍을 뚫어 놓았다. 이른바 그곳에 들린 사람들을 위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비석을 볼 수 있도록 문을 열어 놓은 것이다. 그 문을 열고 5분 정도 걸어가면 그 비석과 비석에 새겨진 비문을 볼 수 있다.


단양 적성의 성곽 모습입니다. 이 곳이 중간쯤 되니, 얼마나 긴지 알 수 있겠죠. 이 돌 하나 하나에 역사가 살아 숨쉬는 듯 했어요. 저 멀리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학생과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함께 이곳으로 나들이를 왔어요. 참 보기 좋은 교육 장소 같았어요.
단양 적성의 성곽 모습입니다. 이 곳이 중간쯤 되니, 얼마나 긴지 알 수 있겠죠. 이 돌 하나 하나에 역사가 살아 숨쉬는 듯 했어요. 저 멀리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학생과 그리고 그의 가족들이 함께 이곳으로 나들이를 왔어요. 참 보기 좋은 교육 장소 같았어요.권성권
물론 그 적성비는 큰 성곽(城郭) 안에 평온하게 똬리를 틀고 있다. 깊고 아늑한 산 속의 암자라고 해야 할까? 그 성곽이란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적성(赤城)을 일컫는 것이다. 그 성곽은 신라 진흥왕(545-551년경) 때에 쌓은 것인데, 둘레만 해도 900m 정도는 된다고 한다.

물론 그 당시를 지나 지금에 이르기까지 많이 무너지고 돌들도 하나 둘 없어진 듯 하다. 그래서 국보 보존차원에서 나라에서는 성곽의 북동쪽 부분만이라도 옛날에 기초하여 새로운 돌로 다시금 쌓고 있다. 그런데 그것마저도 쉽지 않는 듯 하다. 큰물과 큰 바람 때문인지 그 성벽 가운데 두 곳이나 허물어졌기 때문이다.

성벽 위에 서서 저 멀리 남한강을 바라보는 학생과 삼촌인가 봐요. 그리고 성 아래에는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까지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요. 이 곳에 서서 먼 곳을 보면 사방이 환하게 다 보여요. 그리고 삼면이 물을 이루고 있어서 얼마나 아늑하고 고요한지 모른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말로 큰 격전지였을테지만 말예요....
성벽 위에 서서 저 멀리 남한강을 바라보는 학생과 삼촌인가 봐요. 그리고 성 아래에는 엄마와 아빠, 할아버지까지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지요. 이 곳에 서서 먼 곳을 보면 사방이 환하게 다 보여요. 그리고 삼면이 물을 이루고 있어서 얼마나 아늑하고 고요한지 모른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정말로 큰 격전지였을테지만 말예요....권성권
그 성 위에 올라가면 저 멀리 온달산성도 볼 수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남한강이 흐르고 있고, 동쪽으로는 죽령천이, 그리고 서쪽으로는 단양천이 흐르고 있다. 그야말로 삼면이 온통 물줄기에 젖어 있는 느낌이다. 옛날에는 이 보다 더 좋은 천연요새나 교통의 요충지도 없었을 듯 하다. 그만큼 이 성이 사방으로부터 막아주기도 하고, 그만큼 훤히 꿰뚫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성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예요. 비가 와도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돌로 단을 쌓은 듯 단단하고 좋았어요. 물론 발걸음은 가볍고 좋았지요. 더욱이 푸른 숲길을 걷듯이 한결 아늑하고 좋았어요.
적성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예요. 비가 와도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돌로 단을 쌓은 듯 단단하고 좋았어요. 물론 발걸음은 가볍고 좋았지요. 더욱이 푸른 숲길을 걷듯이 한결 아늑하고 좋았어요.권성권
하지만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그 무엇보다도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 성을 낀 채 세 군데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그 어떤 바위나 바람에도 거칠 게 없기 때문이다. 바위가 막아서면 막힌 채로 돌아가면 되고, 바람이 막아서면 바람이 떠나기까지 기다리듯 찬찬히 흘러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성벽 위에 서 있으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만큼 고요하고 아늑하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는 그야말로 이곳이 격전지였다. 고구려의 영토이던 이 곳을 신라가 죽령을 넘어 쳐들어 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싸움이 벌어졌겠는가. 그 때문에 진흥왕은 싸움에서 패한 이곳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비석까지 세워주지 않았는가.


그 가운데 열 명의 공로자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네 사람 등장한다. 이른바 '이사부(異斯夫)', '비차부', '김무력' 그리고 '야이치'가 그들이다. 앞선 세 사람은 장수로서 앞장서서 실전에 싸운 사람들이고, '야이치'는 적성 지역의 주민으로서 주민들의 민심과 지리적인 안내자로서 협조를 한 공이 크다.

그래서 진흥왕은 장수들에게는 응당 표창을 내렸던 것이고, 장수나 군졸 신분이 아닌 이 지역의 지역 주민이었던 '야이치'에게까지 크게 표창했던 것이다. 이른바 이곳 주민들의 민심을 얻겠다는 뜻이었고, 누구든지 이 지역 주민들과 한 마음이 되어 신라를 돕겠다면 그들까지도 다 받아 주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이기도 했다.


이것이 바로 '단양신라적성비'예요. 그저 볼품 없는 비석 같지만 저 안을 들여다 보면 정말로 가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물론 한자로 된 글이라 그리고 옛 글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 비석과 비문이 나름대로 크나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니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어요.
이것이 바로 '단양신라적성비'예요. 그저 볼품 없는 비석 같지만 저 안을 들여다 보면 정말로 가치 있는 글이 새겨져 있답니다. 물론 한자로 된 글이라 그리고 옛 글이라 잘 모르겠지만, 이 비석과 비문이 나름대로 크나큰 역사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니 얼마나 보람된 일이겠어요.권성권
그 가운데서도 나는 '아사부'(異斯夫)를 깊이 생각해 보았다. 왜냐하면 지금 이 성곽과 비석 앞에서 4살 된 나의 딸아이와 함게 서 있었기 때문이다. 4살 된 딸아이가 비록 깊은 뜻을 헤아리진 못한다할지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한 몸을 바쳤던 위대한 장수에 대해서 알려주는 것쯤은 좋겠다는 생각에서였다.

적성비 비문이예요. 옛 한자로 되어 있어서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그 옛날 독도를 점령한 '이사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어요. 자녀들과 함께 꼭 한 번 이 곳에 들러 보세요.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
적성비 비문이예요. 옛 한자로 되어 있어서 어떤 뜻을 담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여기에 그 옛날 독도를 점령한 '이사부'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니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어요. 자녀들과 함께 꼭 한 번 이 곳에 들러 보세요. 뜻깊은 여행이 되지 않을까요?권성권
'아사부'는 신라 내물왕의 4대 손으로서, 지증왕과 법흥왕, 그리고 진흥왕에 걸쳐 크게 활약한 명장이다. 505년에 그는 지금의 삼척인 실질국과 지금의 강릉인 아슬라주 지역을 다스리는 지방군주로 임명되었다.

그 뒤 512년에는 원정군을 이끌고 당시 우산국으로 불리던 울릉도까지 쳐들어가서 신라의 영토에 편입시켰다. 아울러 우산국의 부속 섬인 독도까지도 얻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그는 우리나라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킨 인물이었다.

그래서 549년이 되어, 한강 유역의 일대뿐 아니라 낙동강 하류까지 완전 장악한 그를 기리기 위해, 그의 공적을 담은 비를 이곳 적성에 세운 것이다. 물론 이 적성비는 '아사부' 한 사람만을 위한 비석과 비문이 아니다. 그런데도 다른 사람들보다도 그를 더욱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일본과의 암묵적인 영토 싸움이 지금 한창이기 때문이다.

구름이 닿을 듯이 높이 쏫아 있는 성문이에요. 저 성문 사이로 사람들이 파발을 띄우기 위해 오갔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저 문은 말도 통과할 수 있도록 조금은 넓게 만들어 진 듯 해요. 아무튼 돌 하나 하나에 정말로 숨은 역사의 숨결을 맛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
구름이 닿을 듯이 높이 쏫아 있는 성문이에요. 저 성문 사이로 사람들이 파발을 띄우기 위해 오갔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저 문은 말도 통과할 수 있도록 조금은 넓게 만들어 진 듯 해요. 아무튼 돌 하나 하나에 정말로 숨은 역사의 숨결을 맛볼 수 있지 않나 싶어요.권성권
이러한 때에 우리의 자녀들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알려 줄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그건 다른 게 아닐 것이다. 그 옛날 '아사부'와 같은 훌륭한 장수가 있었기에,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일게다. 그것을 나의 자녀에게, 우리의 후손들에게 똑똑하고 분명하게 밝히 말해 주는 것보다 더욱 좋은 가르침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오늘 이 시대에 이르러 가장 큰 자랑거리일 것이다.

한 가지 더 분명하게 일러 주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일본의 주장이 잘못된 것으로서, 일본에서는 우리나라의 경덕왕 이전에는 호적이 없다고 했다 한다. 하지만 이 적령비에 새겨 있는 비문의 판독으로 인해 그 당시에 이미 호적제도가 시행되고 있음이 밝혀졌다고 하다. 그 또한 우리나라의 가장 큰 자랑거리요, 이 적성비의 자랑거리가 아닐까 싶다. 그런 것 까지 구석구석 나의 자녀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새겨줘야 하지 않겠나 싶다.

저 두 곳이 허물어 진 곳이예요. 저 곳만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그래도 성이 완벽하게 재건되었을텐데, 저 곳 때문에 맘이 무척이나 상했어요. 언제쯤 저 곳이 보수가 되어 훌륭한 유산으로 간직하게 될지, 하루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두 곳이 허물어 진 곳이예요. 저 곳만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그래도 성이 완벽하게 재건되었을텐데, 저 곳 때문에 맘이 무척이나 상했어요. 언제쯤 저 곳이 보수가 되어 훌륭한 유산으로 간직하게 될지, 하루속이 되었으면 좋겠어요.권성권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이곳 적성비에 4살 된 딸아이와 함께 올라 왔다. 내 딸아이가 아직은 무엇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말은 알아듣기에 이것저것 내가 아는 수준에서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 물론 그런 이야기들은 이 곳 적성비에 관련된 자료들을 들추어본 뒤에 일러준 것들이다.

그래도 살아 있는 실물을 보며, 그 앞에서 이야기해 줬다는 것보다 더욱 큰 산교육은 없을 듯싶어 그 또한 기쁨이 컸다. 뭐든 살아 있는 실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가장 값진 교육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안타까운 점도 없지 않았다. 이곳 성벽을 재건하는데 두 곳이나 허물어 졌기 때문이다. 하루속이 더욱 튼튼하고 단단하게 보수 공사를 하여, 우리의 자녀들과 우리의 후손들에게 멋진 유산을 물려주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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