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성비가 있는 곳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이예요. 비가 와도 흙이 쓸려내려가지 않도록 돌로 단을 쌓은 듯 단단하고 좋았어요. 물론 발걸음은 가볍고 좋았지요. 더욱이 푸른 숲길을 걷듯이 한결 아늑하고 좋았어요.권성권
하지만 세월이 흐른 오늘날에는 그 무엇보다도 유유자적(悠悠自適)함을 느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이 성을 낀 채 세 군데에서 흐르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그 어떤 바위나 바람에도 거칠 게 없기 때문이다. 바위가 막아서면 막힌 채로 돌아가면 되고, 바람이 막아서면 바람이 떠나기까지 기다리듯 찬찬히 흘러가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성벽 위에 서 있으면 마치 하늘 위에 떠 있는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이다. 그만큼 고요하고 아늑하다.
그러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삼국시대에는 그야말로 이곳이 격전지였다. 고구려의 영토이던 이 곳을 신라가 죽령을 넘어 쳐들어 올 정도였으니 얼마나 큰 싸움이 벌어졌겠는가. 그 때문에 진흥왕은 싸움에서 패한 이곳의 백성들을 안심시키고, 이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비석까지 세워주지 않았는가.
그 가운데 열 명의 공로자들에게 상을 주기도 했는데, 그 가운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 네 사람 등장한다. 이른바 '이사부(異斯夫)', '비차부', '김무력' 그리고 '야이치'가 그들이다. 앞선 세 사람은 장수로서 앞장서서 실전에 싸운 사람들이고, '야이치'는 적성 지역의 주민으로서 주민들의 민심과 지리적인 안내자로서 협조를 한 공이 크다.
그래서 진흥왕은 장수들에게는 응당 표창을 내렸던 것이고, 장수나 군졸 신분이 아닌 이 지역의 지역 주민이었던 '야이치'에게까지 크게 표창했던 것이다. 이른바 이곳 주민들의 민심을 얻겠다는 뜻이었고, 누구든지 이 지역 주민들과 한 마음이 되어 신라를 돕겠다면 그들까지도 다 받아 주겠다는 국가정책의 포고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