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아, 이제는 인권으로 이야기하자

대안학교 원경고, 인권 교육 시행

등록 2006.05.15 14:25수정 2006.05.15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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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에 돋아난 잎사귀들이 산야를 덮으며 신록이 눈부신 5월, 밀 보리도 익어가고, 철쭉이 온 산을 장엄하게 꾸미는 5월, 느티나무 잎사귀들이 거대한 그늘을 만들어 푸른 바람을 일으키는 5월, 맑고 편안한 날씨 속에 가장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선사하는 5월, 더 이상의 찬사로도 부족한 5월은 참 붙잡고 싶은 계절입니다.

경남 합천 적중면에 있는 대안학교인 원경고등학교에서는 아름다운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면서, 사람과 사람, 가족과 사회, 개인과 관계에 대하여 고민하면서,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대안학교 내의 인권 의식을 고양시키고자 5월 12일,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이고, 원불교 인권위원회 사무총장이며, 사단법인 평화의 친구들 상임 이사를 맡고 있는 정상덕 교무를 모시고, 전교생과 전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한 인권 교육을 시행하였습니다.

a 인권을 강의하고 있는 정상덕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이제는 인권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인권을 강의하고 있는 정상덕 국가인권위원회 자문위원. 이제는 인권이 시대의 화두가 되어야 합니다. ⓒ 정일관

아이들에게 인권을 설파하기 위해 서울에서 한 달음에 달려온 정상덕 교무는, 이제는 인권으로 이야기해야 하며, 앞으로는 인권이 시대의 중요한 화두가 될 것임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어야 자유와 평등이 보장되고, 우리 사는 세상의 화합과 역동성을 이끌어낼 수 있으며, 그럴 때 진정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바탕이 마련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습니다.

a 인권의 메아리를 학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학생들. 한 편의 시 곳에 담긴 차별적인 표현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인권의 메아리를 학습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학생들. 한 편의 시 곳에 담긴 차별적인 표현들을 찾아내고 있습니다. ⓒ 정일관

아이들은 다소 생소하거나 낯선 주제인 인권에 대해 어리둥절하였지만 장애인들의 실태와 아픔, 그리고 장애인 인권을 보장받기 위해 힘쓰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시청하거나 ‘인권 감수성’을 측정하기 위해 인종과 지역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 담긴 시를 읽으며 그 속에 담긴 차별 의식을 찾아내는 과제나, 자신이 경찰관이나 구조대가 되어 벌금을 매기거나 구호활동을 할 때 어떻게 하면 차별하지 않는 집행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과제를 풀 때는 사뭇 진지해지기도 하였습니다.

a 내가 만약 경찰관이라면 과속한 차량의 운전자가 누구이든지 차별없이 공평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경찰관이라면 과속한 차량의 운전자가 누구이든지 차별없이 공평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을까? ⓒ 정일관

아이들은 미리 나누어 준 자료들을 가지고 이런 과제들을 자기 나름대로 해결하고는 발표하였는데, 아이들은 특히 장애인 동영상이 기억에 많이 남았다고 말하여 인권 교육에 필요한 동영상 자료의 필요성을 절감하였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 중에 인권을 말하면 싫어하는 부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위 권력을 가진 사람, 부유층, 사용자 등 우리 사회에 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런 경향이 있다는 것이죠. 그래서 정상덕 교무는 특별히 이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a 내가 만약 구호대라면 한정된 빵을 차별없이 잘 나눌 수 있을까?

내가 만약 구호대라면 한정된 빵을 차별없이 잘 나눌 수 있을까? ⓒ 정일관

“우리가 인권을 말할 때 그 인권이란 상대적으로 사회적인 약자의 인권을 말합니다. 상대적으로 힘 있는 사람들의 인권을 말하지 않습니다. 사회적인 약자, 즉 빈곤층이나, 장애인, 여성과 아이들과 노인의 인권을 우선 말하는 것입니다. 상대적이라 했으니, 학교 안에서도 관리자들에 비해 선생님들이, 선생님들에 비해 학생들이 더 인권적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시간 동안의 학생 강의를 마치고 이어서 전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인권 간담회를 가졌습니다. 정상덕 교무는 인권운동사랑방에서 발간한 <쉽게 풀어쓴 세계 인권 선언>과 <쉽게 풀어쓴 어린이 · 청소년 권리 조약>을 중심으로 하여, 인권 교육이 왜 필요한가? 선생님들의 인권의식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a 구호의 대상. 인권은 사회적인 약자을 먼저 배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호의 대상. 인권은 사회적인 약자을 먼저 배려하는 것을 말합니다. ⓒ 정일관

정상덕 교무는 인권 의식이 부재하기 때문에 폭력을 사용하게 되고, 모욕과 업신여김과 원한과 대립과 투쟁이 있는 것이며, 급기야 전쟁과 테러가 발생하는 것임을 깊이 인식하여, 우리 삶 속에 인권 의식이 녹아있어야 함을 힘주어 말했습니다.


a 벌금 매기기.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원근친소에 끌림이 없는 중도행을 요구하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인권은 서로 통합니다.

벌금 매기기. 법은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원근친소에 끌림이 없는 중도행을 요구하는 종교적인 가르침과 인권은 서로 통합니다. ⓒ 정일관

또한 선생님들은 평소에 무의식적으로 상대의 신체에 대해 말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상담할 때도 부모 직업에 대해서 묻기도 하는데, 이는 모두 인권 침해에 해당된다고 하였으며, 처음 보는 사람을 만날 때도, 결혼 여부, 나이, 직업, 대학, 배우자와 자식에 대해서 묻는 수가 많은데 이도 또한 인권 침해라는 것입니다. 혹시 그런 질문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독신자에게 결혼이나 배우자, 자녀에 대해 묻는 것이라든지, 대학에 떨어진 자녀가 있는 사람에게 어느 대학을 다니느냐고 묻는다든지, 부모의 직업에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아이에게 부모의 직업을, 그것도 구체적으로 말하라고 하는 것 등은 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인권 침해 사례들이라는 것입니다.

a 장애인 이동권 투쟁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말하는 동영상 자료가 더욱 많아지고 학교 안에서 인권 교육이 실질적으로 시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습니다. 인권을 말하는 동영상 자료가 더욱 많아지고 학교 안에서 인권 교육이 실질적으로 시행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정일관

그리고 아이들의 표현은 그것이 어떠한 표현일지라도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하지 일방적인 재단이나 어른들의 기준과 상식으로 비판받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뜨끔하였습니다. 아이들의 무응답도, 반항도, 냉소도, 어설픔도 다 아이들의 표현임을 이번 인권 간담회에서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이번 인권 간담회를 통해 새로운 인식에 눈을 뜨게 되었다면서 무의식적으로 대하던 학생들을 이제 인권적인 관점을 통해 만나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주는 세상은 언제 올 수 있을까요? 자본의 위력 앞엔 인권이란 지푸라기 같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지푸라기도 모으고 모아 새끼를 꼬면 튼튼한 밧줄이 되듯 인권으로 이야기하고 인권으로 만나고 인권으로 관계를 맺는다면 참 좋은 세상이 오리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사람뿐만이 아니라 만물도 존재하는 그 자체로 존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하겠지요.

인권(人權)의 꽃이 만발하고 더불어 만물권(萬物權)도 존중받는 아름다운 세상을 그리며, 5월의 아름다운 햇살이 곱게 부서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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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합천의 작은 대안고등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습니다. 시집 <느티나무 그늘 아래로>(내일을 여는 책), <너를 놓치다>(푸른사상사)을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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