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과 문재인, 그리고 지방선거 이후

[뉴스가이드] 자강이냐, 자멸이냐

등록 2006.05.17 11:03수정 2006.05.1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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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동영과 문재인. 두 사람의 언행이 극명하게 갈린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 사람은 광주를 찾아 읍소를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부산에 가서 불만을 쏟아냈다.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광주를 찾아 "열린우리당의 선거 패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북길에 심대한 장애를 조성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지만,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부산에 가서 "대통령이 부산 출신인데 부산시민들은 왜 현 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안 받아들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정 의장이 선거 연설원으로 TV에 나와 "독선과 오만에 빠진 여당으로 국민께 비친 것이 사실"이라며 용서를 구했지만, 문 전 수석은 "이번 선거를 참여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라 할 수 없다"고 뻣댔다.

같은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정 의장은 광주에 가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문 전 수석은 부산에 가서 노무현 대통령을 거론했다. 지역정서에 기대려 한 것이다. 심각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두 사람 모두 '감성 정치', '지역 정치'에 시동을 건 게 문제다.

a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하지만 이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지방선거 이후'다. 문 전 수석이 부산에서 쏟아낸 말 중에 놓칠 수 없는 마디가 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거부 의사를 확실히 밝히고 있다면서도 지방선거 이후의 정국 주도권은 정당들이 가질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대단히 예민한 문제가 여기서 모습을 드러낸다.

정당들이 정국 주도권을 쥘 것이란 문 전 수석의 말에는 당의 자율성이 배가될 것이란 전망이 깔려 있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은 청와대가 뭐라 하건 제 살 길 찾으면 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정 의장이 대표 경선 내내 주장한 자강론은 사실상 파탄 일보 직전에 와 있다. 열린우리당 참패를 예상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자강론의 파탄은 정 의장 체제의 약화로 이어진다. 정 의장은 어제 TV연설에서 "우리들 내부의 주장을 놓고 서로 다툼을 벌인 것이 사실"이라고 반성했지만, 이런 모습이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처지라면 '다툼'이 비타협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은 더 커진다.


이 과정에서 문 전 수석의 한마디가 '다툼'의 성질을 양성에서 악성으로 변질시키는 발효제가 될 수 있다. '예민한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당·청 관계가 재정립 과정을 거칠 것이고, 이 과정에서 친노 대 반노의 구도가 형성될 것이란 전망은 일반적이다. 이런 분화 과정은 자연스럽다. 특히 이런 분화가 노 대통령의 국정운영과 개혁기조에 대한 평가의 틀 안에서 진행된다면 정 의장의 또 다른 반성항목, 즉 "개혁작업을 추진하면서 소리가 너무 요란하게 났던" 전력도 갈무리될 수 있다. '깡통 개혁'에서 '뚝배기 개혁'으로 넘어가기 위한 산통쯤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하지만 문 전 수석의 한마디가 이런 '양성 구도'를 흔들고 있다. 호남권 의원들이 가만있을 리 없다. 당장 호남권의 좌장인 염동연 사무총장이 "광주와 호남이 탄생시킨 참여정부를 부산정권으로 지칭한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반격했다.

재반격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이른바 '영남 공략'에 공을 들여온 이들로서는 "광주와 호남이 탄생시킨 참여정부"을 순순히 인정할 수 없다. 그 순간 '영남 공략'의 예봉이 무뎌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고 물리다보면 서로 상대의 입지를 앗아버리면서 호남과 영남의 '인질'로 만드는 결과를 빚는다. 정당 안에서 지역대결구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상황이 여기에까지 이르면 명료해진다. 미래의 가능성이 아니라 현재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강이 자멸로, 외연확장이 자진유폐로 귀결되는 현실이 확인된다.

살 길은 달리 없다. 자강을 할 힘이 없으면 의존해야 하고, 유폐에서 벗어나려면 외부의 힘을 빌려야 한다.

자기들끼리 치고받으면 엉뚱한 사람이 웃는다고 했다. 열린우리당이 치고받으면 제3자가 웃는다. 자신이 '외부의 힘'이 될 것이란 기대지수를 껑충 올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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