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지금 당장 격돌한다면?

지역강국과 세계강국의 대결은 '총동원' 대 '일부 동원'

등록 2006.05.19 14:41수정 2006.05.19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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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북측 지도부는 미국이 결국에는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고 외교관계를 정상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자국과 미국 간에 물리적 충돌이 발생하더라도 얼마든지 자국의 주권을 지킬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언뜻 듣기에는 황당한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핵무기가 있다 하더라도 북한은 기껏해야 지역강국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나라인 반면, 미국은 아직까지는 엄연히 세계 최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미국과의 승부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수구적인 사람들은 ‘김정일의 모험주의’니 ‘김정일의 과대망상’이니 하면서 이를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아버지만큼의 카리스마도 갖지 못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지난 12년간 미국의 강도 높은 공세를 견디면서 경제를 되살려 온 점을 본다면, 그에게 ‘남다른’ 뭔가가 있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고도의 정치·군사·경제적 안목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주변 국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의 전략가적 기질을 보다 새로운 각도에서 조명해 볼 필요가 있다. 김 위원장은 다른 국가의 원수들처럼 일반적인 정치인이나 기술관료 혹은 법률가 출신이 아니다. 그의 성장 배경이 색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는 혁명가 출신의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고 공부했으며 또한 상당한 예술적 기질을 가진 인물이다.

‘혁명’이나 ‘예술’에서 드러나는 공통점은 일종의 ‘창조력’이다. 김 위원장의 정치적 지도력 속에는 일정 부분 ‘예술적 창조력’이 자연스럽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 정세와 판도를 인식하는 방법 역시 주변국 지도자들과 다르다는 점도 유의해야 할 것이다.

합리주의가 강조되는 국가의 지도자들은 흔히 좌뇌(左腦)만을 사용하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혁명가나 예술가 기질이 있는 지도자들은 우뇌(右腦)를 사용하는 비중이 높다는 점은 결코 간과되어서는 안 될 요소일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지 않고 김 위원장의 대미전략을 인식하면, 그저 ‘김정일은 과대망상의 모험가’라는 결론밖에 도출할 수 없는 것이다.


위에서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대결에 상당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정말로 현실성 있는 판단일까? 서두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김 위원장은 미국이 결국에는 북한을 인정하게 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동시에 그는 물리적 충돌의 경우도 대비하고 있다. 세계 최강 미국과 대결을 치르고도 북한이 자주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김 위원장의 판단은 과연 타당성을 갖는 것일까?

물론 그도 북한과 미국의 국력이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이 북한에 비해 월등히 압도적인 국력을 갖고 있음을 잘 안다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은 분명 북한을 능가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과 미국이 실제로 충돌하게 되었을 경우에 미국이 과연 북한을 제압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실제로 충돌하게 되었을 경우에 양국이 동원할 수 있는 국력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이 점과 관련하여 반드시 인식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미국은 세계강국이고 북한은 지역강국이라는 점이다. 세계강국과 지역강국이 충돌할 경우에는, 어떤 무대에서 대결하느냐에 따라 판도가 달라진다.

만약 세계강국과 지역강국이 세계적 무대에서 대결을 펼치는 경우에는 당연히 세계강국이 승리할 수밖에 없다. 이 경우에는 양국의 국력이 총체적으로 동원될 것이기 때문에, 전체 국력에서 뒤지는 지역강국이 세계강국을 꺾기는 힘들 것이다. 북한이 세계적 범위에서 미국과 대결하는 경우에 필패(必敗)할 것임은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세계강국과 지역강국이 특정 지역에서만 대결을 벌이는 경우에는 판도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지역강국은 자국의 주권을 지키기 위해 전체 국력을 총동원할 것이다. 하지만, 세계강국은 국지적 범주의 전쟁을 위해 전체 국력을 총동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연한 말이지만, 세계강국은 전 세계적 범주에서 국력을 골고루 안배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세계강국이 특정 지역에 국력 전체를 쏟아 부을 경우에는, 설사 지역전쟁에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 후 얼마 안 가서 세계 패권을 잃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세계강국이 특정 지역에 국력을 총동원한 틈을 타서 다른 지역의 라이벌들이 파워를 강화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전쟁에 임하는 세계강국은 국력의 일정 부분만을 할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계강국은 지역전쟁에 전력을 총동원할 수 없다

전통적으로 한반도가 중국의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지킬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전체 국력을 총동원했다면, 중국은 얼마든지 한반도를 장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은 동이·서융·남로·북적을 동시에 견제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와 전쟁을 벌일 경우, 중국이 동원하는 국력은 전체 국력이 아니라 그 국력의 일부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세 시대에 중원의 패권자였던 북위(386~534년)가 지역강국에 불과한 고구려를 우대하지 않을 수 없던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분명 최강국은 북위 자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고구려와 대결을 벌이는 경우에는 자국의 국력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구려와 어떻게든지 우호적이 되는 게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가 절대적인 국력에서는 중국보다 훨씬 열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대항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한반도에 투입할 수 있는 역량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와 동시에, 자주성을 향한 한민족의 열의가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다시 말하면, 한반도는 중국과의 전쟁에서 전체 국력을 총동원할 수 있었던 데 비해 중국은 국력의 일부밖에 사용할 수 없었다는 전략적 요인이 한반도의 자주성을 보존하는 데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던 것이다.

이런 경우 중국이 전체 국력을 동원할 수도 있었겠지만, 실제로 그렇게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국가 멸망을 초래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수나라의 멸망은 한족 국가들에게 두고두고 좋은 교훈이 되었던 것이다. 한족 국가들이 당나라 고종 이래로 한반도 침략을 자제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전략적 상황에 대한 뼈저린 경험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 한반도를 침략한 세력들은 이러한 상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한 다른 민족들이었던 것이다.

한-중 대결서 중국, 전체 국력 총동원 못했다

이러한 점들은 오늘날 북한과 미국의 관계에도 일정 정도 적용된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의 중립을 확보한 조건 하에서는 미국과의 대결에 나서도 승산이 있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것은 북한 전 국민이 김정일 위원장을 중심으로 단결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미국이 북한과의 전쟁에 전 국력을 총동원할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 사실상 미국 하나만을 겨냥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미국은 북한 하나만을 겨냥하기가 힘들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물론 유럽·중동에 대해서도 항상 ‘군사적 에너지’를 재충전해야 한다. 그리고 앞마당인 남미의 상황도 날로 위험해지고 있다.

그리고 아시아·태평양 미군이 주일미군을 중심으로 재편된다고 하지만, 그 아시아·태평양 미군의 전체가 북한 하나만을 겨냥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아시아·태평양 미군은 동북아는 물론 동남아와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전반적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주일미군의 전체 전력을 북한에 투입할 수도 있는 것도 아니다. 주일미군은 북한뿐만 아니라 양안과 중국 본토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미 대결에는 미국 국력의 일부밖에 동원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러한 점들을 고려한다면, 미국이 실제로 북한을 상대로 동원할 수 있는 전력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미국이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전력을 동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미국의 세계패권을 와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 하나를 목표로 전 국력을 총동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동북아 소재 미군 전력의 일부밖에 동원할 수 없다는 점은, 북측 지도부로 하여금 대미 성전(聖戰)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는 한 요인인 것이다.

간략히 말하면, 지역강국인 북한은 전력을 ‘총동원’할 수 있지만, 세계강국인 미국은 전력을 ‘일부 동원’할 수밖에 없다. ‘총동원’ 대 ‘일부 동원’로 구도로 전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북한 지도부는 미국과의 대결에 자신감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동시에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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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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