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 외국군대 때문에 담이 떨립니다"

<독립신문>에 나타난 대한제국 관료들의 자주의식

등록 2006.05.20 15:47수정 2006.05.20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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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898년 3월 22일자 <독립신문>.

1898년 3월 22일자 <독립신문>. ⓒ 김종성

일부 한국인들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한국 안보에 필수 불가결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자주성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그저 '철없는 아이'들의 투정쯤으로 치부하고 있다.

구한말 조선 및 대한제국의 관료들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들도 한때는 이이제이(以夷制夷)의 방법으로 외세를 활용하는 것이 나라를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고 특정 외국군대를 국내에 주둔시키면 다른 외국군대가 쳐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다.

고종이 외국 군대에 의존하기 시작한 1882년 임오군란이래 조선의 주류적 관료들은 외국 군대의 힘을 빌려 내우외환을 타개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당시 상당수의 관료들은 외국 군대에 대한 의존보다 자주적 방향으로 갈 것을 호소했던 것으로 <독립신문>을 통해 나타났다.

외세를 이용해 국난을 해결하려던 고종의 대외정책이 결국에는 청일전쟁(1894년)과 을미사변(1895년)이라는 재앙을 초래했던 뼈저린 경험이 이들 관료들을 움직이게 한 심리적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고종의 외교노선이 청일전쟁·을미사변 등 초래

1898년 3월 22일자 <독립신문>에 실린 상소문을 통해 대한제국 관료들이 어떤 이유로 외국군대를 반대했는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상소문은 현재의 문체로 바꾸었음을 밝혀 둔다.

1898년 3월 대한제국 일부 관료들이 일반 국민들과 함께 충훈부에 모여 고종 황제에게 전달할 상소문을 채택하였다. 상소문의 주요 내용은 ▲군사 및 재정의 자주 ▲한성 주둔 외국군대의 철수 ▲한러은행 철폐 ▲외국인 고문관 철폐 ▲외국 공사의 내정간섭 금지 ▲절영도 조차 반대 등이었다.


이 기사는 "대한제국 대소 신민(臣民)이 충훈부에 모여 논의를 하고 진언하여 상소한 글을 다음과 같이 기재한다"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이에 따르면, 관료와 민간인들이 공동으로 상소를 올렸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민간인이 아닌 관료들까지 나서서 외국군대의 철수를 요구하였다는 점이다.

당시의 대한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에 관하여 관료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우리나라가 지금 대국이 되었기 때문에, 마땅히 스스로 주장하는 정치를 하여 억만년 무강한 아름다움을 쌓아야 할 터이(다)"

대한제국이 나아가야 할 길은 '스스로 주장하는 정치' 즉 자주적 노선이라고 했다. 외세를 이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민족 내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방식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관료들이 대한제국을 '대국'이라고 칭한 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한제국 선포와 칭제로 상징되듯이, 비록 제한적이고 일시적이나마 그 당시에는 자주의식이 상당히 고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삼국간섭(1895년) 이후 러시아-일본간의 세력균형으로 인해 어느 특정 국가가 한반도를 충분히 장악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당시의 대한제국 사람들은 자주성 회복에 대해 상당히 큰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대한제국 관료들의 자주적 인식 중시할 때

자주성 회복을 갈망하는 대한제국 사람들에게 우려와 두려움을 준 요인은 다음과 같다.

"근일 형세를 보니, 거꾸로 칼을 잡아 자루를 남에게 주는 것과 같아서 스스로 주장을 못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남의 통제를 받으니, 신들은 담이 떨리고 가슴이 차서 소리를 빨리 하여 오래 부르짖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기서 '칼을 잡아 자루를 남에게 준다'는 것은 당시 대한제국에 러시아·일본 군대가 주둔하고 있었던 점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로 인해 대한제국의 자주성이 외세에 의해 억압되고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무릇 군대라 하는 것은 사람 몸의 손톱과 어금니 같은지라. 손톱과 어금니를 능히 스스로 쓰지 못하고 남이 부리는 바가 되었으니 스스로 호위하기를 바라기 어려운지라."

당시 그들은 군대를 인체의 손톱과 어금니에 비유했다. 대한제국이 몸은 자신의 것을 사용하면서도 손톱과 어금니는 외국군대(러·일)의 것을 사용하고 있다고 지적하였다. 외국 군대가 대한제국의 손톱과 어금니가 되어 있기 때문에 대한제국이 스스로 호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 외국군 군대가 주둔하지 않았더라면 을미사변(1895년) 같은 사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개탄한다. 대한제국이 성립한 이후인 1898년 시점까지도 외국군대가 여전히 주둔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 우려와 공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담이 떨리고 가슴이 차다'고까지 표현했던 것이다.

주한미군 주둔 및 기지이전 문제가 논란이 된 오늘날, 외국군 주둔에 대한 대한제국 관료들의 인식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고종이 1882년이래 외교적 방법으로 조선을 구하기 위해 외국군대를 이용해 보았지만, 결국 조선이 경험한 것은 청일전쟁·을미사변 등의 민족적 비극뿐이었다.

<독립신문>에 실린 이 상소문은 외세를 이용하여 국가를 유지한다는 것이 얼마나 허망하고 어리석은 시도인가를 잘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인도 아닌 정부 관료들까지 나서서 외국군대 철수를 요구한 것을 볼 때, 청일전쟁·을미사변 이후의 대한제국 사람들이 외국군대를 얼마나 혐오하였는지를 잘 알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 615>에도 함께 실리는 글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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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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