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가를 들으며 바라본 '봉화산'의 철쭉

[포토에세이] 자생 철쭉과 인공 철쭉이 어우러져 만든 군락지

등록 2006.05.20 17:08수정 2006.05.2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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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봉화산의 철쭉

봉화산의 철쭉 ⓒ 김현

산행 며칠 전부터 우리 일행은 바래봉의 철쭉이냐, 봉화산의 철쭉이냐를 두고 분분한 의견을 나누었다.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로 유명한 바래봉은 몇 번 가본 적이 있지만, 봉화산은 일행 대부분이 처음이라 우리는 바래봉이 아닌 봉화산에 오르기로 했다. 또 일행 중 한 명이 봉화산 아래에 위치한 아영에 살고 있는데, 그의 봉화산의 철쭉 자랑에 모두 혹 했기 때문이다.

a 사람 키를 넘은 철쭉 길.

사람 키를 넘은 철쭉 길. ⓒ 김현

봉화산(해발 920m)은 흥부 마을로 유명한 전북 남원시 아영면에 위치해 있으면서 장수군과 경계를 이루고, 경남 함양군과도 맞닿은 산이기도 하다. 또한 봉화산은 백두대간의 본류를 이루는 산이기도 해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산이기도 하다.


봉화산에 아래에 도착하자 멀리 보이는 산등성이가 온통 붉은색이다. 그리 높지 않은 산 하나가 온통 철쭉으로 뒤덮여 있다. 그러나 멀리서 바라본 철쭉에 비해 가까이서 바라본 철쭉꽃은 일행에게 약간의 아쉬움을 가져다주었다.

좀 늦게 온 탓인지 철쭉들이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절정기엔 장관을 이루었을 법하게 온 산이 철쭉이라서 그 아쉬움은 더했다. 그 아쉬움을 못내 이기지 못한 송 형이 “아! 일주일만 빨리 왔으면 끝내줄 텐데…"란 말을 여러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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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여러 꽃들을 가만히 살펴보면, 필 때의 화려함에 비해 질 때 가지각색으로 짐을 볼 수 있다. 어떤 꽃은 아주 깨끗하게 지는데 비해 어떤 꽃은 그렇지 못하다. 일부는 낙화하기도 하지만 그냥 나뭇가지에 매달린 채 말라붙어 생명을 다하는 꽃이 있다. 바로 철쭉이다. 물론 목련이나 개나리도 질 때의 모습이 과히 괜찮다고 할 수는 없지만 철쭉 또한 비슷한 꽃인 진달래에 비해 지저분하다고 하다 할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산에 오르는데 오솔길도 나오고 아치형의 길도 나온다. 철쭉 오솔길은 어른 키보다 더 큰 철쭉이 만들어놓은 아치형의 길이다. 누군가가 그 길을 걸으며 “야! 여기서 숨바꼭질 하며 놀면 재미나겠네”라고 말하며 웃자, 일행인 듯한 한 아주머니가 “그럼 우리 한 번 해볼까?”라고 답하며 깔깔댄다. 그 모습이 참 정겹게 보인다.

@IMG14@봉화산의 철쭉은 자생 철쭉과 인공 철쭉이 어우러져 만든 군락지라는 말이 있다. 이유야 어떻든, 산 능선 하나가 다른 잡목은 거의 없고 철쭉으로만 되어있는 사실이 새롭다. 그리고 이곳의 철쭉은 동시에 피었다가 함께 지는 것 같았다. 바래봉의 철쭉이 능선 고지에 따라 시기적으로 다르게 피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a 봉화산에서 바라본 아영면 일대의 논들. 저 뒤의 골짜기 넘어가 함양 가는 길.

봉화산에서 바라본 아영면 일대의 논들. 저 뒤의 골짜기 넘어가 함양 가는 길. ⓒ 김현

철쭉 군락지 정상에 올랐다가 다시 능선을 타고 오던 길로 내려왔다. 봉화산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이다. 봉화산에는 철쭉 군락지가 두 군데로 나뉘어져 꽃이 핀다. 아영에서 오르는 길에 마주치는 작은 봉오리 능선과 봉화산 정상아래 두 군데에 집중적으로 피어 있다. 봉화산 정상 쪽에 핀 철쭉은 억새와 어우러져 새로운 맛을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억새 사이로 붉은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 철쭉꽃은 수줍은 새색시와 같다. 그 새색시 사이사이로 흔들리며 서걱거리는 억새는 화선지 위에 붓을 사선으로 그어놓은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a 정상에서 바라본 헬기장과 그 아래 펼쳐진 철쭉꽃

정상에서 바라본 헬기장과 그 아래 펼쳐진 철쭉꽃 ⓒ 김현

어릴 때부터 봉화산을 밥 먹듯이 오르내렸다는 봉태 형이 산의 특징을 이야기 해준다. 봉화산은 철쭉으로도 유명하지만 야생화와 산나물이 많이 나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설명을 해준다. 그러면서 한쪽 능선 쪽을 가리킨다.

“저그 저쪽이 다 고사리 취나물 천지여. 얼마나 많은가 하면, 대구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이 아침 6시에 차를 타고 와서 오전에 고사리와 취나물, 두릅을 꺾어가 오후엔 장사를 한다고.”
“그렇게 많이요?”
“4월 5월이면 아줌마들로 꽉 찬다니까. 꽃구경도 하고 나물도 캐고 뭐 일석이조지.”


봉태 형의 설명을 들으며 봉화산 정상을 향해 가는데, 어디서 오토바이 경기를 하는 듯한 요란한 소리가 산을 울린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알아보니 벌목하는 소리란다. 한참을 가보니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여기저기 잘리어 있다. 그 벌목하는 으르릉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걷다 보니 봉화산 푯말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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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정상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장수의 작은 마을과 아영이 한 눈에 들어온다. 봉태 형이 한 골짜기 방향을 가리키며 함양길이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산골짜기 사이에 넓은 논이 있다는 점이다.

'흥부전의 놀부가 저곳에서 부농을 이루며 살았을까?' '흥부는 형 놀부에게 쫓겨나면서 저 넓은 땅을 바라보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데, 일행 중 한 사람이 기념사진을 찍자고 한다. 봉화산 푯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뒤를 보니 백두대간의 줄기를 나타내는 지도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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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백두대간! 우리 민족의 시원지라 할 수 있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동쪽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쭉쭉 뻗어 내리다가 태백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 신경준의 <산경표>를 보면 우리나라의 산맥은 하나의 대간(大幹)과 열세 개의 정맥(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쓰여 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도 이런 대간과 정맥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지도라 한다. 그런데 일제 시대 때에 이런 대간과 정맥의 개념이 산맥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고 그렇게 배워왔다.

한국 땅이름협회의 명예회장이기도 한 배우리 선생은 그의 논문 '백두대간'에서 "우리 조상들은 산맥이 아닌 ‘산줄기’ ‘지맥(地脈)이란 말을 많이 써왔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덧붙여 배 선생은 "일제 때부터 ’산맥‘이란 말이 굳어져 지금껏 사용해왔다"며 "이젠 산맥이란 말 대신 대간, 정맥이란 말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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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

실제로 역사를 살펴보면 우리 민족은 뻗어나간 산줄기를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정하고 마을을 이루어 삶을 일구어 왔다. 그러나 일제는 산줄기의 개념을 지형(地形)의 개념이 아닌 지질(地質)의 개념으로 나누어 우리 생활과는 좀 거리가 있게 구역을 나누었다. 이제라도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하나하나 고쳐나갈 필요가 있다.

여러 생각 속에 백두대간의 큰 산줄기를 머리 속에 상상하며 밑을 바라보니, 갈대와 어우러진 철쭉이 선연한 빛을 띠고 관광객들에게 미소 짓고 있다. 그 위 헬기장에선 많은 사람들이 모여 점심을 먹고 있다. 산에 오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산에 올라 먹는 점심 맛은 진수성찬이 없더라도 그 맛은 무엇에도 비길 바가 못 된다.

간단하게 준비해온 음식을 나눠먹으며 광열이 형이 집에서 담근 복분자를 한 잔씩 마셨다. 마치 속세의 모든 것을 버려버리고 산과 더불어 사는 산사람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a 억세와 어울려 핀 철쭉

억세와 어울려 핀 철쭉 ⓒ 김현

하산 길에 얼큰하게 한 잔 걸친 봉태 형이 창가 한 소절을 뽑아낸다. 춘향이와 몽룡이 만나 사랑을 나누는 한 대목이다. 사랑가를 들으며 내려오는 길, 꿩 한 쌍이 사람의 눈을 피해 정답게 놀고 있다. 사랑은 그렇게 조용히 자연 품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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