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처럼, 부부는 땅에 같이 묻혔다

[보도 그후] 아내 안락사시킨 남편, 사랑하는 아내 곁으로

등록 2006.05.23 08:44수정 2006.05.23 12:05
0
원고료로 응원
a 달라스 카운티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두 경관의 부축을 받아 나오는 제임스의 생전 모습.

달라스 카운티 법원의 보석 결정으로 두 경관의 부축을 받아 나오는 제임스의 생전 모습. ⓒ 달라스모닝뉴스



관련
기사
- [첫 보도] 아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 남편

#1. [이어진 이야기]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기억하시는가? 제임스 로버슨과 메리 로버슨. 미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죽음을 앞둔 남편이 병든 아내를 '안락사'시킨 비극적 사건으로 인해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던 이야기를.

올해 83세의 동갑내기 노인으로 60년을 같이 지내며 서로 사랑했던 그들은 모두 이제 이 하늘 아래 없다. 제임스 로버슨는 지난 18일 새벽, 세상을 떠났다. 자신의 아내를 향해 방아쇠를 당긴지 23일만의 일이다.

"그는 편안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사랑했던 여인을 만날 준비가 된 것처럼 평화로워 보였다."

그의 죽음을 처음 발견한 딸 샐리의 말이다.

#2. [남겨진 이야기] 메리는 마지막까지 남편의 암을 몰랐을 지도


15년에 걸쳐 중풍을 앓던 아내 메리는 마지막까지 남편의 암 발병과 투병 사실을 알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

오랜 세월동안 두 번이나 들이닥친 중풍은 메리를 무능력하게 만들었고 심지어는 말조차 하지 못했다고 한다. 제임스는 올해 들어 폐암이 뇌로 전이되면서 상태가 악화되고 통증이 심해졌으나, 아내가 아는 것을 원치 않았다고 한다.


사건 당일 의료 도우미가 출입문에서 발견한 제임스의 쪽지는 딸에게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쪽지를 발견하게 되면 경찰을 부르고 지역 장의사에 연락하라는 등의 내용과 함께 집 안쪽에서 자신들의 시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제임스가 아내에게 사용한 후 고장난 권총은 그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골동품이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탓이었는지 메리를 관통한 탄환은 더 이상 발사되지 않았다. 제임스가 자신에게 사용한 듯 격침을 시도한 흔적이 남아 있는 탄환들은 모두 불발탄들이었다고 한다. 메리에게 발사된 한 발을 제외하고는.

사건 직후 샐리가 아버지 제임스를 찾아왔을 때, 제임스는 딸에게 권총을 고쳐달라고 했지만, 샐리는 이를 거절했다고 한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이 쇠진해져가던 제임스는 아마도 최후까지 고민을 하다 더 이상 기력이 없어지기 전에 최후의 계획을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날(사건 당일), 샐리는 아버지 제임스가 오른손을 사용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면서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 기다리셨다"고 했다.

#3. [들려준 이야기]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에서 보기 어려운 사랑을 했다"

a 메리와 제임스의 생전 모습.

메리와 제임스의 생전 모습. ⓒ 달라스모닝뉴스

사건 이후 제임스는 자신의 죄 때문에 죽은 후 메리를 같은 곳에서 만날 수 없게 될 것을 염려했던 것 같다. 그가 다녔던 세인트 폴 성공회 성당의 윌리엄 쉴 신부의 말이다.

"제임스는 자신이 한 일 때문에 '이제는 메리와 함께 할 수 없다'고 걱정했다. 나는 그에게 신약성서에 따르면 용서받지 못하는 유일한 죄는 성령을 훼방하는 죄뿐이며 다른 모든 죄는 사함을 받는다고 전했다. 또한 다른 신부 한 명도 그가 용서받을 수 있음을 확인시켜 주었다."

쉴 신부는 단 한 번도 제임스에게서 불평을 들은 적이 없다고 회상했다. 심지어는 "이렇지 않았으면 좋겠다"거나 "아내가 나았으면 좋겠다"는 등의 말도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저 그는 아내를 위해 충심으로 그리고 사랑을 다해 모든 일을 했다고 전했다.

딸 샐리 역시 같은 이야기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에서 발견하기 어려운 그런 사랑을 나누셨다. 그들은 서로 정말 열렬히 사랑했다. 그런 가정에서 자란 나는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

제임스는 보석으로 풀려난 후, 마지막 순간까지 딸 샐리의 집에서 보냈다. 그의 사건이 보도를 통해 알려지게 되면서 친구들이나 이웃은 물론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서조차 엄청난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그녀의 집으로 친구들이 들러주었고 제임스는 그들에게 작별인사를 건넸다고 한다.

#4. [전해진 이야기] 두 사람을 위한 장례식

보석 이후 샐리의 집에 머물던 제임스는 폐에서 뇌로 전이된 암세포로 인해 고통스러워했고 진통제로 인해 겨우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와중에도 딸과 아버지는 매일 묵상의 시간을 갖곤 했는데, 지난 일요일에는 제임스가 샐리에게 "나는 준비됐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다음날인 월요일부터는 제임스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었고, 화요일에는 그를 일으키기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수요일에는 혼수상태로 들어가게 되었다. 샐리가 수요일 밤 10시 45분경에 그가 숨쉬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후 다시 들어가 보니 제임스가 숨져 있었다고 한다. 그녀의 말을 빌리자면, "아주 평화로운 죽음"이었다.

최종적으로는 자정이 지난 후 얼마 되지 않은 목요일 새벽, 달라스 카운티 검시관에 의해 사망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장례식 일정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쉴 신부는 제임스와 메리의 장례식이 함께 진행될 예정이라고 했다. 제임스의 건강이 악화된 후 두 사람의 장례를 함께 치르기 위해 메리의 장례식을 미루기로 모두 동의했다는 것이다. 빠르면 이번 주 초에 '두 사람'을 위한 '한 번의 장례식'이 치러질 예정이다.

아내와 함께 하고 싶은 그의 소원대로, 최소한 장례식에서는 이 땅의 삶을 함께 마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5. [마지막 이야기] 눈 맑은 독자들에게

이 글은 의무감에서 쓴다. 처음 로버슨 부부의 소식을 전하면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 나 역시-지난 기사의 댓글에 누군가 달아놓았듯- 그의 선택을 보며 인생에 대해, 부부에 대해,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보석 이후, 그의 소식이 궁금했다. 그리고 지난 금요일 그의 부음을 들었다. "평화로운 죽음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으며, 가슴이 먹먹했고, 무엇인가에서 해방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지나치려 했다. 기억 속 어딘가 깊은 곳에 묻어두고 돌아서려 하는 찰나, 독자들이 떠올랐다.

같은 느낌으로 같은 생각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했을 눈 맑은 모든 독자들께 늦은 소식을 알린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경남, 박근혜 탄핵 이후 최대 집회 "윤석열 퇴진"
  2. 2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V1, V2 윤건희 정권 퇴진하라" 숭례문~용산 행진
  3. 3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집안일 시킨다고 나만 학교 안 보냈어요, 얼마나 속상하던지"
  4. 4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한국 의사들의 수준, 고작 이 정도였나요?
  5. 5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윤 대통령 답없다" 부산 도심 '퇴진 갈매기' 합창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