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에게 친구가 되어준 도마뱀

텃밭에서 만난 도마뱀 친구가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등록 2006.05.23 07:50수정 2006.05.23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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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표정이 귀엽죠?

표정이 귀엽죠? ⓒ 김현


“아빠! 아빠! 빨리 와 봐요. 여기 도마뱀 있어요.”


아들 녀석이 부르는 요란한 소리에 가보니 아이들이 도마뱀을 앞에 두고 웅성거리고 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도마뱀 한 마리가 상추 위에 턱 허니 버티고 있습니다. 그런데 희한한 것은 아이들이 빤히 보고 있는데도 도망치지를 않고 있는 것입니다. ‘요 녀석 봐라. 왜 안 도망가지?’ 하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아이들이 잡아달라고 합니다.

a 잎에 따라 색깔도 변하는가?

잎에 따라 색깔도 변하는가? ⓒ 김현


“도마뱀 잡아줘요. 네.”
“이거 무는데, 물어도 괜찮아?”
“물으면 많이 아파요? 그럼 난 안 만질래.”
“아니, 많이는 안 아프고 조금 아플 거야. 쉿! 조용히 해봐. 아빠가 잡아줄게.”

가만히 팔을 뻗어 도마뱀을 잡으려 하니 솔직히 좀 꺼림칙합니다. 가끔 숲에서 몇 번 보기는 했지만 직접 만져본 적은 없거든요. 그리고 물지 안 물지도 모르고요. 손을 뻗어 잡으려 하니 녀석이 움칫 하더니 도망치려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건 도망치는 흉내만 낼뿐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겁니다. 별 녀석 다 보겠네 하며 도마뱀을 잡으니 가만히 있습니다. 도망치려 발버둥 하지도 않습니다.

그런 녀석을 다시 상추 위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들을 빤히 바라볼 뿐 역시 달아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녀석을 다시 잡아 손바닥에 올려놓으니 아이들이 자기도 만져보겠다며 달라고 합니다. 녀석의 정체를 파악한 아이들에게 녀석은 이제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a 어때요? 나 귀엽죠?

어때요? 나 귀엽죠? ⓒ 김현


처음엔 손가락으로 잡아보고 손바닥에 올려보고 하더니 팔뚝에 올려놓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아이들보다 도마뱀 녀석입니다. 아무런 두려움 없이 팔을 타고 천천히 어깨위로 기어가는 겁니다. 이미 녀석에게서 두려움을 벗어버린 아이들도 도마뱀이 목 근처까지 올라오자 짐짓 긴장을 합니다.


“아빠, 이 녀석 안 물지? 아빠가 무나 안 무나 잘 보고 있어야 돼. 알았죠?”
“걱정 마. 너하고 친구하고 싶은 가봐.”

친구라는 말에 개구쟁이 선빈이 녀석이 ‘나도 친구할래’ 하면서 도마뱀을 가져다 팔뚝 위에 올려놓고 키득거립니다. 이젠 서로 녀석을 가지고 놀겠다고 야단입니다. 그러더니 급기야 머리에까지 올려놓곤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합니다. 상추를 뜯으러 온 아내가 그런 모습을 보곤 기겁하며 소리칩니다.


“징그럽게 지금 뭐하는 거야. 애나 어른이나 하여튼 똑 같애. 너희들 빨리 놓아주고 방에 들어가.”
“헤헤 얘 안 물어요. 글고 이젠 우리하고 친구야 친구. 그치?”
“맞아. 얜 우리하고 친구야. 도마뱀 친구.”

아내의 성화에도 끄덕 없이 그렇게 한참을 놀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부추가 나있는 땅에 내려놓습니다.

“왜 땅에 내려 놔. 달아나면 어떡하려고?”
“응, 얘도 엄마나 친구가 있을 거 아냐. 집에서 기다릴까봐서.”
“그래. 생각이 기특하네.”

a 야! 니 갈길 가라구...

야! 니 갈길 가라구... ⓒ 김현


그런데 땅에 놓아줘도 녀석이 갈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가, 너희 집에 가라고.” 해도 조금만 움직일 뿐 갈 생각을 안 합니다. 그래서 내가 녀석을 잡아 마늘밭에 놓았습니다. 아무래도 텅 빈곳보다는 잘 안 보이는 곳에 놓으면 나을 것 같아서 입니다.

녀석은 그곳에서도 한참을 가지 않고 망설입니다. 아이들이 “친구야, 잘 가”, “안녕! 도마뱀 친구야. 잘 살아” 하고 손짓을 합니다. 그래도 끔쩍하지 않습니다.

“야, 우리가 가야 되겠다. 우리가 있으니 안 가는가 봐.”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방에 들어온 후 한참 후에 나가보니 녀석이 어디론가 갔는지 보이지 않습니다. 우연히 텃밭에 나타나 아이들과 친구가 되었다 떠난 녀석이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바람처럼 친구들과 함께 말입니다.

a 안녕! 잘 가거라. 진짜 친구들이랑 잘 살구...

안녕! 잘 가거라. 진짜 친구들이랑 잘 살구...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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