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람을 삼키다

생활 곳곳에 파고든 휴대폰... 기계에 먹힌 생활

등록 2006.05.24 08:14수정 2006.05.24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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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배터리는 분리해주세요. 휴대폰 부정행위로 적발된 거 아시죠? 배터리는 가지고 계시고 휴대폰만 저에게 주세요."

지난 4월 23일 TOEIC 시험 감독관이 응시생들에게 한 말이다.

이것뿐이랴. 얼마 전 흥행에 성공한 <달콤 살벌한 연인> 에는 선생님(박용우)과 학생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습이 나온다. 학생은 선생님이 수업하는데도 당당히 웃으며 문자를 보낸다. 선생님이 이미나(최강희)와 사랑에 빠지면서 이제는 선생님이 수업시간에 웃으며 문자를 보낸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께 집중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이제 옛말이 된 듯하다.

지난 월요일(22일) 아침 수업시간. 여기저기서 문자메시지가 오는 진동소리가 요란하게 울려댄다. '드르르, 덜덜덜' 진동소리에 이어 '톡 토도독 톡톡' 문자를 보내는 소리가 들린다. 문자를 보내는 친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선생님을 피해 책상 밑으로 문자를 보내는 학생, 친구 등을 방어막으로 삼아 문자를 쓰는 학생, 당당히 보내는 학생 등 다양한 행태로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교수님이 강의를 하시는 도중 이번에는 어디선가 슈베르트의 '숭어' 선율이 들려온다. 교수님은 "빨리 받아봐. 알람이야? 하하" 웃으시며 다시 강의를 시작하신다.

강의가 거의 다 끝나갈 때 즈음, 이번엔 교수님의 휴대폰이 울려댄다. 당황하신 교수님은 휴대폰을 꺼내어 종료버튼을 누르며, "OOO 교수님이시네요, 허허." 이렇게 50분의 강의시간이 끝났다.

과연 이 수업 시간에만 유난히 그런 것일까? 다른 강의시간을 살펴보았다.


화요일(23일) 오전 수업. 앞서 교수님은 3월 강의 첫 시간에 휴대폰 사용에 관한 경고를 주셨다.

"나는 휴대폰 울리는 거 싫어합니다. 강의 도중에 울리면 강의 흐름을 방해하잖아요. 될 수 있으면 전원을 끄고, 정 필요하다면 진동으로 해놓으세요."


이후 단 한번 벨소리가 울린 것 빼고는 그 외에 휴대폰이 울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눈이 휘둥그레지는 일이 있었다.

교수님이 바로 앞에서 침을 마구마구 튀기시며 열심히 강의하시는데, 맨 앞줄에 앉아 있던 한 학생이 휴대폰을 책상 앞에 내놓고 당당히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다다다닥 다다다닥 닥닥' 손가락은 순식간에 움직였다. 교수님의 눈은 순간 그 학생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진행되는 설명을 끊으실 수 없기에 계속 수업진행을 하셨다. 거기다 "수업 시작하려 하니, 이따 전화할게"라는 어디선가 들리는 통화소리.

학생들은 강의를 받으러 다른 건물로 이동하는 중간에도 문자를 보내고, 전화를 하느라 지나가는 사람과 부딪치는 일은 허다하다. 도서관에서도 진동소리는 끊이지 않는다. 평균적으로 20분 간격으로, 좀 잦을 때는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분명 도서관은 휴대폰 사용금지라는 팻말이 붙어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휴대폰을 버젓이 사용한다. 복도 앞에 붙여진 사용금지의 단어를 보며 통화한다.

a 도서관 복도 벽면에 붙어 있는 휴대폰 사용금지 안내문.

도서관 복도 벽면에 붙어 있는 휴대폰 사용금지 안내문. ⓒ 권예지

a 도서관 입구 계단 앞에 마련된 안내 푯말.

도서관 입구 계단 앞에 마련된 안내 푯말. ⓒ 권예지

휴대폰과 떨어질 수 없는 이들에게 단순한 '금지'는 현실적이지 못한 대안이기도 하다. 학생들은 통화할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만들자고 하지만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 복도 벽에는 '사용금지', 입구 통과 계단에는 '진동모드로 바꿔주세요'라는 모순이 존재할 뿐이다.

이미 휴대폰과 친숙한 세대는 몸의 일부라 생각하고 중독 아닌 중독에 빠졌다. 실제로 주머니에 넣어놓은 휴대폰의 진동이 느껴지는 것 같아 보면 문자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자꾸 전화가 오는 것 같고, 문자가 오는 것 같아 진동이 느껴지는 것은 이미 휴대폰이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중독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학생들은 학교 내 휴대폰 사용의 남용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우선 학생들이 사용하는 학교 게시판을 살펴보았다. 강의 에티켓에 관한 푸념, 불만, 실망감들이 적힌 글을 찾을 수 있었다. 그 중 도서관과 강의실에서의 휴대폰 사용에 관한 글을 찾을 수 있었다.

a 학교 게시판 글 목록.

학교 게시판 글 목록. ⓒ 권예지

'한글사랑'이라는 아이디를 쓰시는 분은 마지막 학기를 남겨둔 학생이라고 밝히면서 "기본 예의를 지키자"고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ordinally'님은 휴대폰을 책상 위에 두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진동으로 해놓은 채 책상 위에 놓아두면 진동해놓은 것과 벨소리로 해놓은 것과 다른 점이 없다"며 "매너 있게 행동하자"고 언급했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왜 수업시간에 휴대폰의 전원을 꺼놓지 않는 걸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그냥, 궁금하니까'였다.

방규권 학생은 "혹시나 문자나 전화가 오지 않을까, 만약 온다면 누구에게 어떤 내용이 왔을까 궁금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한 학생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이 밖에 "휴대폰을 시계 대용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물론 시간을 꼭 보지 않아도 되지만, 그냥 보게 된다. 솔직히 끄고 켜고 하기 귀찮다. 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다.

며칠 뒤 이렇게 말한 학생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았다. 아이러니하게도 학생의 왼쪽 손목에는 시계가, 오른쪽 손에는 휴대폰이 쥐어져 있었다.

전공 시험시간, 여전히 휴대폰은 진동소리와 벨소리는 울려댔다. 이제는 울리는 휴대폰을 인정해주고 이해해 줘야하는 시대가 오는 것인가. 휴대폰 주인을 탓해야하는 것인가, 울리는 휴대폰을 탓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이 시대 분위기를 문제삼아야 하는 것인가.

"휴대폰이 항상 불을 밝힌다고 행복하진 않아요. 수업시간에 울리는 휴대폰 때문에 순간 갈등해요. 문자를 볼까말까. 문자를 보고 답장을 보내면 교수님께 죄송스러워요. 휴대폰에 얽매여 있는 것 같기도 하구요. 때로는 휴대폰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마치 중독성이 강한 마약과 같은 것 같아요. 물론 휴대폰이 생활의 즐거움도 주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잖아요. 자다가도 문자 소리에 깨는 모습을 발견했을 때에는 마치 휴대폰이 내 주인 같았어요."

인터뷰에 응했던 사람들 모두 휴대폰에 종속되어 가는 자신을 걱정하면서도 외면하려 했다. 휴대폰이 사람을 끌어들이는 것은 사람과 조금이라도 가까워 질 수 있다는 것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덧붙이는 글 | 뉴스메이커 공모했던 기사를 줄인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뉴스메이커 공모했던 기사를 줄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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