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4회

불행의 징조

등록 2006.05.25 17:55수정 2006.05.2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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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

솟은 동굴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눈을 뜨지 않은 채 옆을 더듬었다. 솟의 손에는 마른 풀만이 잡혔다.


-솟

수이는 동굴 밖에서 먹을거리를 차려놓고 있었다. 자그마한 열매와 버섯이 전부였지만 솟은 자신을 위해 먹을 것이 차려졌다는 데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솟은 열매와 버섯을 맛있게 먹고 부족한 배는 동굴 앞에서 샘솟아 오르는 물로 채웠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한번 사랑을 나누었다.

-가자 응?

해가 완전히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났을 때쯤, 어제의 일을 잊지 않은 수이는 다시 한번 솟에게 맛있는 과실이 있는 곳으로 가자고 졸라대었다. 솟은 한편으로 걱정이 되었다. 솟은 안탄부락이었지만 수이는 징요부락의 사람이었다. 두 부락의 사이는 긴밀했지만 사냥터에서 이탈해 다른 부락의 처녀를 하루 동안이나 잡아두고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솟의 평판은 나빠질지도 몰랐다. 심한 경우에는 징요부락 사람들이 만족할 때까지 사냥을 해서 가져다 바치거나 귀한 조개껍질 한 무더기를 갖다 바쳐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여지까지는 솟의 평판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기에 박하게 대우받을 것 같지는 않았다. 더구나 수이는 솟과 마찬가지로 금방 그 행방을 궁금해 할 가까운 가족이 없었다. 그렇다면 당장은 수이의 환심을 사 두는 게 솟에게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래, 가자.


솟과 수이는 손을 잡고서 노란 꽃밭을 지나 조금은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솟이 알기로 그쪽에는 맛있는 과실 따위는 없었지만 운이 좋다면 작은 열매가 가득 맺혀있는 수목이라도 발견 할지 모를 일이었다. 손을 잡고 가는 그들의 옆으로 영양 떼가 무심히 풀을 뜯고 있었다. 어제 사냥이 성공했다면 솟의 동료들은 맛난 영양고기로 배를 채우고 지금까지 잠이 들어 있으리라.

순간 솟은 멀리서 독수리 떼가 가득 모여 있는 광경을 보았다. 그것은 그곳에 죽은 짐승이 있다는 뜻이었다. 솟의 동료들이 사냥한 짐승이라면 저런 곳에 독수리 떼들이 뜯어먹도록 짐승의 사체를 방치하지는 않았을 터였다. 솟은 주위에서 돌멩이를 주워서는 독수리 떼가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수이는 다른 것에 신경을 쓰는 솟이 못마땅했지만 죽은 짐승의 고기나마 얻을 수 있다는 게 손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잠자코 솟을 따랐다. 솟에게는 다행히도 아직 거대한 하이에나 무리들은 몰려들지 않았고 독수리 떼만이 가득히 모여 굽은 부리로 사체의 살점을 헤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아아!

솟은 가득 모여든 독수리 떼를 쫓아내기 위해 마구소리를 지르며 달려 나갔다. 놀란 독수리 떼는 뒤뚱거리며 날아올랐고 죽은 짐승의 사체를 확인한 솟은 크게 놀랐다.

그것은 어제까지만 해도 기세등등하게 수이를 노렸던 검치호 이야이였다. 하지만 솟이 놀란 것은 단지 죽은 짐승이 이야이여서가 아니었다. 이야이는 허리가 깨끗이 두 동강난 채 죽어있었다. 솟이 아는 한 검치호가 두 동강나서 죽을 일은 없었고 그렇게 할 힘을 가진 짐승은 더더욱 없었다.

-이야이?

뒤따라온 수이도 그 모습을 지켜보고서는 두려움에 떨었다. 이야이를 이렇게 만든 무엇인가가 있다면 동료 사냥꾼들 역시 어떤 상황에 있을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솟은 손에 쥔 돌을 내려놓고서는 입가에 손을 모으고 근처 어디엔가 있을 동료들을 불렀다.

-야아아아아!

수이는 덮어놓고 소리를 치는 솟을 보며 사체를 노린 거대한 하이에나 떼들이 몰려들 것이 염려되긴 했지만 그라면 자신을 지켜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야아아아아아!

솟이 다섯 번 소리를 질렀을 때 멀리서 희미하게 사냥꾼들의 응답소리가 들려왔다.

-야-아!

동료들의 목소리에는 어딘지 모르게 절망감, 두려움, 상실감이 버무려져 있었다. 본능적으로 동료들에게도 일이 생겼다는 것을 직감한 솟은 수이의 손을 잡고 동료들이 응답한 방향으로 서둘러 뛰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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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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