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소설] 머나먼 별을 보거든 - 15회

불행의 징조

등록 2006.05.26 16:59수정 2006.05.26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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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과 수이, 이락과 오시는 여기저기에서 토막이 난 채 처참하게 뒹구는 동료들의 시체를 모아 매장해 주었다. 아홉 명의 사냥꾼 중 죽은 이는 여섯이었고, 한명은 심한 충격으로 완전히 정신이 나가 있었다. 온전한 이는 이락과 그의 아들 오시가 다였다. 솟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물어보았다.

-불을 두려워하지 않는 짐승, 불로 사냥을 하는 짐승.


이락이 아는 것이라고는 그 뿐이었다. 더구나 그 짐승은 동료들을 해친 후 그 고기를 취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 괴물들이 이곳에 나타났다면 이젠 사냥은커녕 종족의 안위마저도 위태로울 것이었다. 솟은 반 토막이 나서 죽은 검치호 이야이에 대해 얘기했다. 이락과 오시는 두려움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놈들은 몇 마리였지?

이락은 둘 내지 셋 정도였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오시는 손가락을 모두 합한 이상이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것도 분명한 정보는 없었다. 여섯 명의 장정을 잃었다는 건 두 부락모두에게 큰 타격이었다. 이락이 생각하기에 이런 무서운 적에 대해 남은 선택이 있다면 다른 곳으로 도주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다. 두 부락뿐만이 아니라 이 일대에 살고 있는 모든 인간과 짐승들이 모조리 다른 곳으로 떠나야 할지 몰랐다. 이락의 두려움에 솟은 고개를 저었다.

-사냥거리가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 사냥감을 쫓아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 짐승도 마찬가지다.

솟은 그 짐승과 한번 맞닥트려 볼 작정이었다. 간밤에 검치호를 죽이고 동료들까지 죽인 것으로 봐서는 그 짐승들을 만나려면 밤에 불을 피우고 기다리면 올 것이라 솟은 짐작할 수 있었다. 이락은 그런 솟을 말렸다.


-네가 아무리 힘이 세고 빠르다고는 하나 그 짐승은 이야이까지 반 토막 내어 죽일 수 있을 정도지 않나?

솟은 고집을 부리며 소리쳤다.


-그란과 과하도 내가 잡았다!

그란과 과하는 예전에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은 두 마리의 거대한 형제 표범이었다. 이락은 그 일을 떠올려 보았다.

그란과 과하는 이야이가 나타나기 전,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포식자로서 군림할 수 있었다. 그란과 과하가 처음부터 사람들을 노린 것은 아니었다. 그 형제 표범이 사람들과 처음으로 맞닥트리게 된 것은 사냥터에서였다.

사냥꾼들이 힘겹게 잡은 거대한 들소하나를 그란이 가로채려 하는 것에서 싸움은 시작되었다. 사냥꾼들은 언제나 그랬듯이 돌팔매질과 위협적인 소리를 질러서 반갑지 않은 짐승을 쫓아내려고 했다. 그란은 으르렁거리며 쫓겨 나갔지만 사냥꾼들의 옆으로 성난 과하가 과감하게 덮쳐왔다. 사냥꾼들은 한 명의 동료를 잃고 허둥지둥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그란과 과하는 사냥감을 갈취할 수 있었지만 곧 흐느적거리며 몰려든 하이에나 무리들에게 쫓겨 갈 수밖에 없었다. 그란과 과하는 아쉬운 데로 사람의 시체를 끌고 나무위로 몸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들은 사냥감으로 인간을 노리기 시작했다.

두 표범에게 사람은 구미에 딱 맞는 사냥감이었다. 먼저 표범이 꺼려하는 하이에나들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잘 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하이에나 무리들에게 적극적으로 대항했고 손해 보는 사냥을 하기 싫은 하이에나들은 경쟁을 기피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표범은 달랐다. 하이에나처럼 떼로 몰려 다녀서 인간들의 주의를 끌지 않고 은밀히 나무 위나 풀숲에 숨어서는 일행에서 따로 떨어진 인간을 노렸다. 특히 어둠이 깔리면 상대적으로 시야가 좋지 않은 인간들은 표범의 습격에 아무런 대비도 하지 못하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란과 과하는 상대가 건장한 남자라도 거리낌이 없었다. 두 표범의 습격에 사람들은 달이 차고 이지러지기를 열여섯 번 되풀이 하는 동안 남자둘, 여자 하나, 아이 둘을 잃었다. 이락은 이웃 부락과 더불어 표범을 잡으려 했지만 모두가 허사였고 표범의 습격은 점점 더 대담해졌다. 마침내 사람들은 표범을 피해 다른 곳으로 옮겨갈 것을 결정했다. 그 때 솟이 나서서 자신의 방식으로 표범을 잡겠다며 고집을 부린 바가 있었다.

-이건 그때의 표범 따위와는 다르다.

-다를 건 없다.

솟과 이락은 서로 마주보며 노려보았다. 이락은 서열상으로 한참은 위인 자신에게 사사건건이 대드는 솟이 못마땅했다. 힘뿐이 아니라 무리를 이끄는 지혜까지 솟은 이락을 은근히 넘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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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고주몽', '홍경래의 난' '처용'을 내 놓은 작가로서 현재도 꾸준한 집필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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