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길엔 한적한 즐거움이 있다

지방도로 동해를 다녀오며

등록 2006.06.09 09:53수정 2006.06.09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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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바다가 보고 싶을 때, 그리고 그 바다가 동해 바다일 경우, 내가 바다로 가는 길은 두 가지 중 하나이다. 하나는 중부고속도로를 타고 나가 호법에서 영동으로 갈아타고 그 길로 강릉까지 간 뒤에 속초로 올라가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팔당대교를 건너 양평으로 간 뒤 홍천과 인제를 거치고 한계령이나 미시령을 넘어 양양이나 속초로 가는 것이다.

그러나 가끔 나는 그 두 갈래의 큰 길을 버릴 때가 있다. 6월 6일 12시 집을 나선 아내의 차에 빌붙은 나는 홍천을 지나 화양강 휴게소에서 잠시 쉬고 난 뒤에 그녀에게 큰 길을 버리고 작은 길로 들어서자고 꼬셨다. 아내는 나의 꼬임에 넘어가 차의 길을 상남 방향으로 틀었다. 그 뒤로 우리는 내내 작은 길을 갔다.


큰길은 속도감이 있어 우리를 빠른 시간 안에 동해까지 데려다주지만 그 길은 오고가는 차량이 많아 번잡스럽다. 아울러 큰길에선 길이 풍경을 거느리고 있는 듯한 인상이 강하다. 그에 반하여 작은 길에선 속도를 낼 수가 없지만 차량이 뜸한 관계로 한적한 여유가 우리의 것이 된다. 아울러 작은 길에선 풍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우리를 반기는 느낌이 강하다. 우리는 그 작은 길로 한적함을 즐기면서 가다쉬다를 반복한 끝에 7시 30분쯤에 양양의 낙산해수욕장에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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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국도로 동해에 갈 때면 항상 화양강 휴게소에서 쉬곤 한다. 휴게소 아래쪽의 냇물에서 사람들이 골뱅이를 건지고 있었다. 골뱅이 살을 잔뜩 넣고 끓이는 올갱이국이 생각났다. 그때의 그 맛이 저 맑은 물에 씻기고 씻기면서 골뱅이 살에 배어든 맛이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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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화양강 휴게소를 떠난 뒤 곧바로 오른쪽으로 난 지방도를 따라 내촌 방향으로 접어들었고. 접어들자 마자 곧 고개를 하나 넘어야 했다. 그 뒤로도 간간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길을 갔다. 작은 길에선 그냥 아무 곳에서나 차를 세울 수 있다. 한쪽 차로를 모두 차지하고 서게 되지만 지나는 차량이 빵빵거리는 법이 없다. 그냥 옆차선으로 건너가 피해간다. 한적한 길의 매력이다. 또 길이 휘어져 있지만 가운데를 가로질러 곧게 펴면서 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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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가다 보면 길의 바로 옆으로 계곡이 함께 간다. 가끔 계곡 옆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곳에 차를 세우고 물가로 내려가면 범람하고 있는 물소리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물소리에 몸을 묻고 있다 보면 마치 물의 한가운데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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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바위는 한치의 빈틈도 없이 단단해 보이는데 그래도 여린 구석이 있는가 보다. 그러고 보면 물은 참 용한 측면이 있다. 그 여린 구석을 용케도 찾아내선 그곳으로 길을 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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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미산계곡의 풍경. 거의 내내 내린천 줄기를 따라갔다. 내린천 중간쯤에서 시작하여 점점 위로 올라가고 있는 셈이다. 물은 언제나 산을 돌아가며 질러가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렇게 물이 산을 돌아갈 때 풍경이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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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미선계곡을 가다가 어리소 쉼터란 곳에서 감자전을 하나 먹었다. 그 옆의 자그마한 계곡에선 맑은 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물도 맑지만 소리도 청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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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내촌과 상남을 지나 미선계곡을 거친 아내의 차는 구룡령을 눈앞에 두고 그 아랫자락에서 오대산 방향으로 난 숲길을 찾아 청도리로 들어섰다. 가는 길목에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소나무 두 그루를 만났다. 차가 뜸하고 인적도 드물어 심심하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두 그루이니 서로 지난해 가을녘의 풍경이나 여름철의 빗줄기를 떠올리며 얘기를 나누다 보면 하루해를 쉽게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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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앞쪽으로 넓게 감자밭을 펼쳐든 구룡령 아랫 자락의 어느 집 풍경. 저 집에선 밤마다 땅 속에서 감자가 동글동글 영그는 소리가 들리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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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원래는 구룡령 아랫자락에서 오대산의 월정사로 이어지는 산길을 타고 진부로 간 뒤, 그곳에서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강릉 바다를 보려고 했으나 오대산길은 7월 1일부터 개통한다고 했다. 그것도 오후 3시 이전에 와야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항상 가보고 싶었던 길이었지만 이번에도 그 꿈을 이루질 못했다. 예전에는 6월이면 다닐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 기간이 한달 늦추어져 있었다.

우리는 길을 돌아나와 구룡령을 넘었다. 그리고 드디어 양양 바다에 도착했다. 남대천과 동해바다가 맞닿은 곳이다. 바다는 밀려들고 남대천은 밀려나가면서 서로 뒤섞이고 있었다. 민물과 바닷물이 뒤섞이는 자리에서 그곳의 물결은 내게 한폭의 그림을 펼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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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동원

오색온천에서 묵고 6월 7일 새벽 4시 30분에 한계령을 넘어 서울로 향했다. 오는 길에 한계령 중턱에서 은비령 방향으로 차를 돌렸다. 필례약수터로 이어지는 그 길은 그림 같은 길이었다. 올라가는 길이 바빠 사진을 찍을 여유가 없었다. 내려가는 길에 쉬었던 화양강 휴게실에서 아침을 먹었다. 멀리 해가 떠 있었고 끝자락에 보이는 산은 안개가 흰색으로 분칠을 해놓고 있었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 동시에 게재했다. 김동원의 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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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갖고 돌아다니면 세상의 온갖 것들이 말을 걸어온다. 나는 그때마다 사진을 찍고 그들의 말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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