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호산 정상.김연옥
출발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비탈진 길을 계속 오르기가 좀 힘들었지만, 싱그러운 초록으로 하늘을 가린 숲길은 시원해서 좋았다. 11시 50분쯤 나는 각호산(角虎山, 1176m) 정상에 이르렀다.
뿔 달린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을 지닌 각호산. 무엇보다 시야가 탁 트여 기분이 상쾌하다. 그곳에 서면 민주지산의 봉우리가 그윽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벌써 내 마음은 민주지산을 찾아 여름 숲속으로 종종걸음 치고 있었다.
나는 각호산 정상에서 내려와 능선을 타고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내 몸에 서걱서걱 부딪치는 풀잎 하나 하나에서도 이제 여름이 느껴진다. 숲속은 겉으로는 고요가 흐르는 듯하나, 살랑살랑 부는 바람결 따라 여름 향기 묻어나는 풀꽃들이 내게 자꾸 속삭속삭한다.
온통 초록으로 물든 숲속은 풍요 그 자체다. 새들의 아름다운 소리에 뿌리 깊은 나무들도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숲속. 등산객들의 둔탁한 발소리와 이야기 나누는 소리에 숲속의 평화가 깨져 버리는 듯하다. 그래서 나는 산행을 할 때 되도록 침묵한다. 그리고 홀로 존재하면서도 여럿이 어우러져 지내는 법을 숲속에서 배우게 된다.